제가 정의하는 세상은 크게 2가지로, 작게 4가지로 나뉩니다.

1. 세계의 가장 큰 범주로는 내(内)세계와 외(外)세계로의 나눔입니다.

2. 내세계는 자(自)세계와 타(他)세계로 나뉩니다.

3. 외세계는 피(被)세계와 간섭(干渉)세계로 나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세계는 인간의 세계입니다. 외세계는 인간 외의 것, 즉 어떠한 명제 및 사물 등이 이에 속합니다.

자세계는 나의 세계이고,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에 따라 흘러가는 세계입니다. 

타세계는 나 외의 다른 대상들의 세계입니다. 다른 대상은, 자신의 자세계가 타세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피세계는, 나한테 직접적으로(물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물 혹은 운동, 동물(inhuman-animal)입니다. 

간섭세계는 실물로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명제나 논리, 혹은 생각의 집합입니다.


내세계는 외세계로부터 간섭을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결코 세계가 둘이 섞이는 일은 없습니다. 예시로 자세계의 사람이 간섭세계로 갈 수 없으며,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자세계는 타세계가 될 수 없습니다. 즉 ’나‘는 세계입니다.

이러한 나눔의 틀은, 인간의 존재를 도식화하여, 그 대상이 어떠한 세계의 간섭을 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시로서, 인간의 결핍은 간섭세계에 위치해있습니다. 이러한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서 자세계는 외세계에 있는 결핍을 해소하기 위하여 자세계에서 움직입니다. 이는 간섭을 주고받았음을 의미하게 됩니다. 또한 간섭세계는 외세계의 산하에 있기에 가치나 행복등을 외세계에 둡니다. 

사람이 삶을 사는 이유는, 다른 세계에 그 가치나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계의 행동이 타세계를 위한 행동이면, 이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가치나 행복은 외세계에 있는데, 인간이 인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것은 칸트의 인식론적 해석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인간은 대상을 물자체가 사람의 오감을 촉발시켜 표상으로서 받아드립니다. 이 물자체의 가치는 외세계이기 때문에 이는 즉 간섭세계의 영향임을 말합니다.

이는 그러면 타세계는 외세계의 촉발의 대상이냐? 라는 질문에는, 이 질문이 사변성에 대한 도전이기에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렇기에 내 세상의 한계는 존재의 한계이며 세상의 한계이고,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 가치중립적입니다. 이 법칙은 ‘나‘의 존재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나‘의 존재는 세상과 같습니다. 세상은 선험적이지만, 선험적 존재와 후험적인 존재들의 집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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