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1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관찰합니다. 예로 들어,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명재를 받아들인 것 자체로 그 사람은 그 차원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가끔은 약간의 관찰자 시점에서 자신을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너무 큰 차원의 도약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 한 단계만 높여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고통에 휘둘리는 존재다“를 인식하고 나면, 약간의 관찰자 시점에서 이 고통을 어떻게 최소화 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즉, 저는 요즘 이 관찰자 시점에서 세상을 보고자 합니다.
저의 주관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1인칭적 명재에서 아직 벗어나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철학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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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함 나도 요즘 1인칭 시점이 아닌 관찰자 시점으로 구조를 바라보려 노력함
허무주의에서 붕괴하느니 차원 올려서 회의주의자가 되는게 낫지
그리고 허무는 착각이라 생각함
@철갤러1(116.35) 하지만, 삶의 이유의 부재에 의한 회의적 시각은 없앨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dc App
@철갤러1(116.35) 허무주의와 여러 사상들을 비교할 때 무엇이 더 효율적이냐, 무엇이 더 괜찮냐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함. 마치 차량에 부품을 장착할 때 '이 부품이 더 효율적이니 이 부품을 끼우는 것이 좋다'와 비슷한데, 인간의 사상은 그렇게 따지면 안 된다고 생각함.
그리고 그 착각이 심해지면 결국 무지의 피난처로 도피하게 되고 신을 찾고 하는 거지 뭐
@철갤러1(116.35) 허무는 착각이라는 주장은 신선한데 왜 그렇게 생각함?
@유다(210.204) 저는 살아야할 이유를 찾고있기 때문입니다. - dc App
@사상가(58.29) 허무주의가 왜 착각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건 116.35에게 물어본 건데, 너도 허무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그렇게 생각함?
@사상가(58.29) 동의함 목적과 본질 없음은 그 자체로 생존 메커니즘에 위협이니깐 머리로는 이해해도 정서상 충격이겠제
@유다(210.204) 왜 착각인지 내주장을 하려면 존재론을 말해야하는디..
@사상가(58.29) 허무=착각이라는 답에 대해서 공식을 물어본 건데, 사상가님이 말한 건 허무=착각이라는 답의 동기를 답하신 거임.
@유다(210.204) 착각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세계와 대상이라는 글에서 말한 바 있지만, 가치는 사변적이기에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자신의 가치의 부재성으로 인한 허무일 것이거나 인생에서의 중요한 것의 부재로 인한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즉, 허무란 착각이라는 시선을 배제할 수 없는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dc App
@유다(210.204) 상자에 이름표를 붙이고 상자가 아닌 이름표를 상자라고 착각하는 것 근데 이름표를 떼니 상자는 여전히 있는데 상자가 없어졌다는 허무함의 착각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함
@철갤러1(116.35) @사상가(58.29) 우선 가치는 사변적 이면서 실증적일 수도 있기도 함. 또한 내가 생각하는 허무는, 모든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끝이 정해져 있고 이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사라진다면 자연스럽게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도 사라지거나 잊힐 텐데 '무엇이 의미가 있냐'라는 게 허무주의라고 생각함. 116.35 님 말대로 '허무=착각'이라고 확실하게 말한다면, 반대로 허무를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조차도 착각일 수 있다고 생각함.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무언가의 가치(주관적, 실증적, 구체적) 착각에 빠져 실증적으로 가치를 부여해, 이것은 가치가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생각함. 다만 허무=착각이라는 이 시점도 맞을수도 있다 라는 말은 동의함
@유다(210.204) 오 그렇네요 상자가 실제로 있었는지조차도 결국 이름표일 수가 있겠네요 하지만 그 이름표를 붙이고 떼는 사건은 실재하는 거됴(오타나서 수정함)
@사상가(58.29) 사변적인 가치조차도 실증적인 것에 비롯해 가치가 주어진다고 생각함.
1 . 기술의 발전 가속화는 신자유주의 폐기로 이어지고 세계경제는 양분화 되면서 각 진영에 속하는 경제성장은 신자유주의 시절과 다르게 저성장을 하게 되면서 고성장 시절에는 감당 할수 있었던 불합리한 경제 성장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저성장이 고착화 될수록 기존의 불합리한 경제 성장은 더 큰 부담이 되어간다.
2 . 이국종 교수가 외상치료 센터를 만들고 운영하기 위하여 병원의 막대한 적자를 감내하며 닥터헬기를 운영하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외상치료 센터를 운영 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한국인의 민원 이었다 산에서 사고가 생겨 닥터 헬기가 환자를 이동 시킬때 산에 놀러온 한국인의 민원은 자신이 포장해온 김밥에 닥터헬기의 프로펠러 바람으로 인해 모래가 들어가
먹을수 없다는 민원 이었다 또한 병원에서 출발 하거나 도착 할때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한 병원 주변 생활권에 사는 한국인들의 시끄럽다는 민원과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의 민원으로 닥터헬기의 운영을 중단 한다.
3 . 일련의 사건들은 자격을 질문한다 한국인이 과연 불의의 사고시 엄청난 적자를 감당하며 치료를 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 이국종 교수의 의지는 한국인에 대한 희망 이었지만 신자유주의를 폐기한 세계 경제가 바라볼때 이국종 교수의 한국인에 대한 희망이 견딜 이유를 한국인 스스로 폐기한다 세계가 왜 한국인을 특별대우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할 자격이 없는
민족이 되었다 오늘도 보았듯 원숭이들의 난립은 원숭이를 치료 하지 않기로 하였다.
4 . 트럼프 행정부의 미네소타주의 반이민정책의 ICE 행동대원의 절차들로 반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자들 중에 미국시민이 총격에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2번이나 생긴다
한국은 자유진영에 속한 국가이며 지금 일어나는 미국의 정책은 반드시 한국도 수행해야 하는 정책들이다 한국은 반이민정책으로 이민자를 쫒아내지 않는다 한국인중 인간과 원숭이를 구별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