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길 맹목적으로 태어납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맹목성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맹목성과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맹목성의 기저는 ’결핍’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자신이 행하는 행동의 기저는 결핍 해소의 욕구입니다.
유아기 때 아무 것도 모르는 태아는 맹목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행동과 소리로 자신이 어떠한 결핍상태에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는 살고자 하는 욕구, 즉 맹목성입니다.
제가 말 하고자 하는 것이 세상속 존재의 맹목성입니다.
즉, 사람(대상)은 태어나길 맹목적,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 본능에 충실한 의지의 객관된 표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지금 자유로운 나라 혹은 세상에서 살고있다면, ’나는 자유롭다’라고 근본을 다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유’의 정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유란 즉, 맹목성에서 벗어난 주체, 즉 자신의 맹목성을 ‘인지’하여 본능에 상관 없이 행동을 하는 주체를 뜻합니다.
다시말해, 인간은 맹목적이지만, 이 맹목성을 인지하면 ‘자유’에 닿을 수 있는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라는 말은 어찌보면 모순이 됩니다.
다른 말로 해석하면, ’맹목성의 자의성‘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의지의 자의성을 인정하나, 이를 의지의 자유 혹은 자유의지라고 말 하는 것은 적어도 제가 제시하는 의지의 맥락에서는 조금 모순된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유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부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예시로 저는 ‘자살’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 맹목적 욕망의 거부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즉, 인간은 맹목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인간의 자의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유란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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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약간 취한 채로 써서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 dc App
굿굿
그래 뭔말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대충 맞는말같다 개추
잉 교펜하우우 모르면 조금 어려울지도 - dc App
@사상가(58.29) 쇼펜하우어임 - dc App
@사상가(58.29) 어렵다고해서 그게 맞는말이란 보장이 없음...
@ㅇㅇ(223.39) 그걸 비판하는 것이 안된다는 것은, 이해의 부재라고 생삭합이다. - dc App
@사상가(58.29) 그렇구나
글 좋다ㅋㅋ 자유를 맹목성의 관점에서 분석한부분 매우 동의함 나는 자유를 한 개체가 다른 개체에 관철 시키는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맹목성의 관점에서 보니 일맥상통 하네.. 자연(야생)에서 여러 개체들의 먹이활동은 맹목적으로 보이나 사실 낮은 수준의 자유를 관철 시키는 행위라고 봤고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으로서 그 어떤 종 보다 높은 수준의 자유를 획득했다 봄
적어도 맹목성을 깨닫고 거부하면 그것이 자유 아닐까요? - dc App
맹목성 그 자체를 인식하고 이에 반하는 선택의 직접 실행이 자유라면 이미 인과성이라는 이름의 표상의 법칙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고있는 인류는 이미 물자체로부터 객관화된 현상을 지성으로서 인식한다는건데 결국 맹목성에 종속되어있는 인간에게 물자체가 존재하는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는 현상은 가능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