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길 맹목적으로 태어납니다. 

선험적으로 사람은 의지의 맹목성 때문에, 살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됩니다.

 갓태어난 아기는 결핍(배고픔, 고통, 고독함 등)을 채우려고 몸짓과 소리로 그 결핍을 알립니다.

즉, 맹목성의 기저는 결핍입니다. 

여기서 행복과 결핍이란 단어는 땔 수 없는 존재입니다.

결핍이 충족되면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소망(결핍)하고, 충족시킨다면 이는 곧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불행은 어떻게 정의가 되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이 또한 결핍과 땔 수 없는 존재로, 결핍이 언제 채워질지 모르는 상황 그 자체가 ‘불행’입니다.

예시로 배고픔을 언제 채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갈증 등으로 인해 무언가의 결핍이 생긴 상황 등 이러한 ‘불확실성에 의한 불행’이 제가 정의하는 불행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기원이 결핍인 것을 알았으니, 이를 전회하여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결핍의 증가는 불행의 증가일 수도 있지만, 행복의 증가도 될 수 있다”라는 역설이 탄생합니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불확실한 결핍의 증가가 아니라면 이는 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인식’을 통해 결핍을 인지하고, 이를 해소하려는 본능을 지닌 존재입니다. 

즉, 사람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삶의 원동력으로 쓰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행복따위가 삶의 이유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맹목적 본능에 순응하는 것으로, 자유로운 삶이라고 보기에는 모순점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사람은 자유로워야 삶의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본디 본능에 순응하는 것이 삶의 이유라면, 순응하지 않는 것은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유와 의미는 다릅니다. 이유가 있어야 의미가 생깁니다. 

즉, 사람이 맹목적이라면 살아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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