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성선설 혹은 성악설을 얘기할 때 나는 언제나 이러한 의문이 들었다.
선과 악은 무엇인가? 대체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가?
과거에는 악이라 여겨지는 것이 현재에는 선이라 여겨지는 사례들이 많지 않은가?
동일한 손가락 모양이 어떤 국가에서는 칭찬이고 어떤 국가에서는 욕이지 않은가?
심지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여도 상황의 맥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가?
더 나아가 같은 행동이라도 사람에 따라 선과 악의 평가가 달라지지 않던가?
이러한 생각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선과 악이란 시대와 환경 등등에 의해 쉽게 변하는 '해석의 기준'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은 왜 존재하는가?
이토록 제멋대로인 평가는 왜 우리를 괴롭히는가?
나는 선과 악의 존재 이유를 생존과 연결했다.
인간은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가?
높은 지능? 물론 중요하다.
지능을 통해 환경, 적으로부터 정보를 파악하고 도구를 만들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등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혼자서 침팬치와 싸워 이기기는 힘들다.
여기서 추가된 것이 사회성이다.
높은 지능과 사회성은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언어를 통해서 단순한 울음소리로 전달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타인과 공유한다.
판단과 판단이 결합되어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인간 100명과 침팬치 100명의 싸움은 싸움이 아닌 학살이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것이 인간이 생존을 넘어 다른 개체들을 지배한 이유라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성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육체적 죽음보다 사회적 죽음을 더 두려워할 정도로. (그래서 자살을 택한다.)
인간은 집단에 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성이 아닌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그럼 인간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내가 집단에 어울리는지 판단할 수 있는가?
그 도구가 바로 선과 악이다.
선은 곧 내가 집단에 속하기 위해 해야하는 것 혹은 잘 어울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해석이다.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선이라 여겨진다.
그것이 집단에서의 평가를 높이기 때문이다.
반면 살인은 악이라 여겨진다.
누군가를 살해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를 해할 수 있고 이는 곧 집단의 위협이기 때문이다.
반면 적을 살해한다면?
그자는 집단의 영웅이 된다.
우리는 타인이 존재할 때와 존재하지 않을 때의 행동이 다르다.
아무도 없는 밤에 무단행단을 하는 것과 쓰레기를 버리는 것.
그것을 낮에 사람이 많을 때도 동일하게 할 수 있는가?
마음의 무게가 같던가?
사실 물리적인 타인의 존재 유무도 딱히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보지 않을 때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악감을 느낄 때가 있지 않던가?
이미 오랫동안 속한 집단의 기준에 자기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던가?
자신의 행동을 타인의 것으로 보고 평가하는 초자아의 역할을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이런 사고를 거치고 나니 선과 악이 가벼워 보였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첫 번째는 유연하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며
두 번째는 우리는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본질을 꺠닫고 나면 지금의 기준이 정말 옳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사랑 또한 상대적인 가치라 생각하지만,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이뤄지는 것들이 선과 어느정도 동일시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더 높은 사랑혹은 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고통이라는 기준이 없다면 사랑이라는 개념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아기마법사 의견을 존중합니다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그 어떠한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랑'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다고 봅니다.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 고통의 존재인 것이죠. 말씀하신게 본능에 각인된 사랑을 얘기하시는 것이라면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본능보다 더 깊은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가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건 뭐 당연한거지 데미안만 읽어도 알게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