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당장 20층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죽기직전이면.
죽게되면.
죽으면.
죽기직전엔 내가 나야?
죽게되면 내가 죽기전에 나는 나야?
죽으면 죽게되기전의 내가 죽게 된 내가 죽은 나야?
죽으면 내가 어떻게 돼?
죽으면 지금 살고있는 나는 뭐야?
내가 지금 당장 20층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죽기직전이면.
죽게되면.
죽으면.
죽기직전엔 내가 나야?
죽게되면 내가 죽기전에 나는 나야?
죽으면 죽게되기전의 내가 죽게 된 내가 죽은 나야?
죽으면 내가 어떻게 돼?
죽으면 지금 살고있는 나는 뭐야?
답은 모르겠지만 이게 거의 유일한 '제대로 된 형태' 의 철학적 질문임
그 질문은 본인에게 물어야함. INTERSUBJECTIVTY를 폐기시키는 질문이라
@rfi(59.7) 저 영어가 뭔데
인간은 타인을 볼때 사실 타인을 보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봄. 자살의 영역에서는 상대와 나를 포괄하는 상호주관성의 기능이 정지되버림. 그래서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던 생각의 장- 그 안에서 꿀먹은 벙어리가댐. 이 질문은 상호주관성의 영역을 벗어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고!
상호주관성이 뭐야
내가 누군가의 정신안으로 들어가서 그놈을 내 영역에서 판단할수 있다고 망상하는거
타인의 죽음과 열등감을 보는것 것지만 사실 자기 존재결여와 내 열등감을 보는 구조임
근데 TO BE OR NOT TO BE 라는 질문이 이 상호주관성을 정지시킴.
그래서 리플이 안달리는거
기독교의본질-포이어바흐 에저게나옴`너는나의너'이다.
유물론적으로 생각하면 쉬운 문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