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처럼 복잡한 정신세계를 가진 존재에게 있어, 물리적으로 동일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조지 버클리가 말했듯 "존재하는 것은 곧 지각되는 것 (Esse est percipi)" 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계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우리 정신이 지각하는 관념들로 구성된다.
가령 A와 B가 한집에 사는 동거인이라 가정해보자. 물리적 공간의 좌표는 일치할지 모른다.
그러나 A는 하루 종일 형이상학적 사유에 잠겨있는 철학자이고, B는 타인의 재물을 탐할 궁리만 하는 사기꾼이라면 어떨까
이들은 진정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물리적으로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인식론의 차원에서 이들은 완전히 다른 우주에 속해 있다.
A의 세계를 구성하는 관념과 B의 세계를 구성하는 관념은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80억 명이라면, 80억 명이 하나의 지구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식이 만들어낸 80억 개의 매트릭스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인간 사이의 소통이 필연적으로 고독하고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관념의 세계에 살면서, 그 경계를 넘어 손을 잡으려 애쓰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발화할 때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관념의 색채와 온도가 타인이 그 단어를 들었을 때 환기되는 관념과 동일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언어는 단지 기호일 뿐, 그 기호가 지칭하는 '관념'은 각자의 정신 속에 비공개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매 순간 소통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서로 다른 해석의 파편들을 주고받으며 소통했다고 착각하는 '미스매치'의 연속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식의 폐쇄성은 타인을 판단할 때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내가 A라는 인간을 비판할 때, 엄밀히 말해 나는 내 인식 밖에서 실존하는 A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지각 범위 내에서 재구성된 '내 머릿속 관념의 다발로서의 A' 를 비판하는 것이다.
타인의 세상 속에 존재하는 A는 내가 아는 A와는 전혀 다른 형상과 느낌으로 존재할 수 있다.
결국 A는 80억 개의 세상 속에서 80억 가지의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나는 그중 내 인식의 그물에 걸린 단 하나의 A만을 보고 겪을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을 갈구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독방에서 홀로 중얼거리는 미치광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것이 내 마음속의 관념일 뿐이라는 유아론(Solipsism)적 고독, 그것이 어쩌면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진실일지도 모른다.
무서운 통찰입니다
ㄷㄷㄷ
동시성 1 상대성 80억 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