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서양인이나 일본인 유튜브 콘텐츠에서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이 주방일과 같은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하고 있을 때, 댓글로 자주 남기는 반응 중 하나가 "아니 저 외모를 가지고 왜 주방일을 해?"라는 말이다. 이 발언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는 비교적 자연스럽고, 심지어 해당 여성을 높여주는 칭찬의 표현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발언 자체가 매우 이상하다. 그리고 서구권에서는 그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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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순한 문화 차이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깊게 내면화된 사고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 발언의 밑바닥에는 외모는 곧 인적 자본이며, 반드시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영역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계산 논리가 깔려 있다. 즉, 예쁜 외모는 연예 산업, 인플루언서, 결혼 시장 등 이른바 '상급 노동'으로 치환되지 않으면 '가성비가 떨어지는 선택', '자원의 낭비'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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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방식에서는 인간의 외모가 하나의 상품이 되고, 그 상품을 최대 효율로 활용하지 않는 삶의 선택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그 결과, 해당 여성이 그 일을 좋아해서 선택했을 가능성, 해당 분야에서 숙련공이나 전문가로 성장하려는 의지, 혹은 단순히 자신에게 맞는 일을 선택했다는 주체적 판단은 완전히 배제된다. 결국 이 발언은 칭찬이 아니라 "너의 삶은 네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가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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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반응은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육체 노동에 대한 구조적 비하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은 유교적 사농공상 질서 위에 급격한 산업화와 학벌주의가 결합되면서, 땀 흘려 일하는 육체 노동을 '공부 못한 사람이 하는 일', '사회적으로 실패했을 때 최후로 가는 자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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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 외모로 왜 주방일을 하느냐"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외모를 칭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방 노동 자체를 열등한 것으로 전제하는 발언이다. 반면 서구권이나 일본 사회에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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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공부 안 하면 저런 일 한다"는 식의 가스라이팅이 교육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 노동의 존엄성에 대한 가르침이 부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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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댓글이 가장 근본적으로 문제적인 이유는 외모를 기준으로 고생할 자격과 존중받을 자격을 나누는 사고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다음과 같은 암묵적 전제를 깔고 있다. 예쁜 사람은 힘든 일을 하면 안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험한 일을 해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의 직업적 선택과 노동의 가치를 외모라는 기준으로 재단하는 명백한 차별적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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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언 당사자는 이를 무례나 차별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치켜세운 말'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강한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 차별적 발언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무례한 사람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의 부재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악의 없는 폭력, 선의로 포장된 차별, 배려인 척하는 무시가 자각 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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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외모를 가지고 왜 저런 일을 하느냐"는 말은 여성을 배려하는 표현도, 현실적인 조언도 아니다. 이는 인간을 외모·효율·시장 가치로 먼저 평가하는 한국 사회의 무의식적 가치관이 아무 검열 없이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따라서 이 발언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개인의 예민함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삶과 노동을 존중하는 정상적인 윤리 감각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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