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어떠한 글이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 글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순 뜻을 알지 못하고 순응을 하거나 이해의 부재로 인한 비난을 합니다.
예시로서 ‘개똥철학’이 그 예시로서 말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모든 글이 다 옳은 글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비판과 비난은 어디까지가 한계인가?’를 말 하려면, 전재 조건의 필요를 요구합니다.
글에대한 ‘비판’은 언제든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논리적인 맹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철학의 이치입니다.
심지어는 당대 최고의 철학가인 칸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현대에 와서는 비판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제가 생각했을 때 자신만의 ’공리’를 세우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학’이라는 것과 ‘철학’이라는 것이 혼용 되었던 시기의 이론은 현대에서는 분별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난’은 다릅니다.
글의 의도와 맥락에 중심을 둔 회의적 시각이 아닌, 이해의 부재로 인한 원색적 비난입니다.
예시로 글이 글이 길어서 이해를 할 수 없다, 정신병 글이다 등 ‘이유’에서 비난을 찾는 것이 아닌 ‘이해의 부재‘에서 비롯한 회의적 시각은 비판이 아닌 ’비난’입니다.
즉, 모르는 것에 대해서 논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싶으면, 적어도 이해라도 하고 비판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해설서’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를 하고 순응을 하는 것은 또한 다른 얘기입니다.
논리적 맹점이 존재한다면 비판은 글쓴이에게 있어 당연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비판의 비판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토론’입니다.
즉 우리는 원색적인 비난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비판적 사고를 항상 지닌 채로 글을 읽어야 점점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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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소리를 왜 이렇게 어렵게 풀어서 말하냐
이것조차 이해를 할 수 없으면 말 하지 말라는 충고임 - dc App
@사상가(58.29) 쉬운 말을 굳이 꼬는 것은 철학자가 경계해야 할 태도라는 충고임
@철갤러1(121.131) ㅇㅋ 순응하겠음 - dc App
오 비판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언행일치하는 보기 드문 성품이다 훌륭하다
@철갤러1(121.131) ㄱㅅㄱㅅ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