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서는 안되는 것’이 존재할 때의 회의감은 아직 정의된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예시로서 상자를 열어보니 누군가의 손가락이 있을 경우, 이는 끔찍함입니까? 공포입니까? 역겨움입니까?

우리는 이 회의감을 위와 같이 비유를 하여 설명합니다.

이는 이성의 선험성 보다는 경험에 의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몸이 반응하고 그에 상응하는 감정을 느끼는 신체를 갖고 있습니다.

이 감정의 근원은 경험입니다.

즉, 사람의 능력은 선험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예시로 식인족이 그 손가락을 봤더라면, 이러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즉, 사람의 경험은 선험적으로 갖고 태어난 이성을 간섭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사람의 감성에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감성은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좁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신앙심이 투철한 사람은 볼 수도 인지할 수도 없는 천국과 지옥의 가치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무신론자라면,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성의 변화 또한 경험에 의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는 즉, 감성의 선험성 또한 간섭받습니다.

여기서 또한 알 수 있는 것은 존재의 회의성은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존재가 손가락이 아니더라도 명제 혹은 논리라면, 존재론적으로 이러한 ‘것‘이 있는 것 자체가 회의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음을 뜻합니다.

결론적으로 말 하자면, 해당 상황과 맥락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을 보고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 것, 이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존재의 회의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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