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거대한 흐름속에서 생명이라는 존재는 유독 고도로 질서를 잡고 

그 흐름을 거스르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생각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방향성이 죽음이라면 삶이라는 저항과정 자체가 없는게 되었어야 자연스럽지 않나요?"


-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고도로 질서 잡힌 흐름'이란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


달리말해 실체라는 고정성에 대한 갈맘인 것이다


조금 더 달리 말하면 


이것이 '언어' 속에 있다는 것




모든 질문에는 모든 답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육도의 거울이다 

사람은 자신이 중심이 되서 해석을 하는 관찰자의 시점이 있다 


그래서 질문또한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질문을 하게 되어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어떤 정해진 딱 맞아 떨어진 답이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그 답은 계속해서 달라지고 조정과 변호를 겪게 된다 

어떤이는 이렇게 말을 하고 다른이는 자신을 기준으로 보아 이렇게 답을 한다 


무엇이 맞느냐가 아니라 맞다 생각하여 늘어 놓으며 퍼즐을 맞춰 보는 것이다 

그것이 헛소리 여도 거기서 나아갈 수 있음이 생겨나면 이는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는

진리가 되고 그것이 바른 소리여도 


그것으로만 종료하면 다른 것을 바라보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여러 답을 놓고 사고하여 의식을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앎에는 인식이 있고 인지가 있다 

인식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를 맏고 손으로 만져보고 경험을 해보아 

그렇게 흘러간다를 생각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앎을 지나치게 확신하여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고정된 맞음이 존재하게 되어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없다 


가령 귀신은 존재하는가 이것을 증명과 확인으로 시각적 검증으로 바라보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여러 과정중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한다 생각하고 느끼려 하는 것이 인지 이다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그럼에도 어떠한 것이 느껴져 존재한다 

가정하는 것이다 


지금 늘어놓은 이 말들을 생각하고 나의 답변을 보기 바란다 


인식으로 바라보는 죽음으로 바라보면 이런 답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다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고 

한때의 영광은 떨어지는 해와 같고 우리 모두 이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사라지는 생명이기에 남기고 싶고 만들고 싶고 여기에 삶의 

의미를 담아 해석하고 말을 하는 것이다 


말로써 아 유한한 인생이여 시와 같이 표현하기도 하고 

그림이나 음악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벗어나고 싶고 초월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지로 바라보는 죽음은 다른 답을 말할 수 있는데 영혼의 존재함을

믿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끝을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죽음이 두려울 수는 있다 


두려운 이유는 그 다음을 알지 못해서 이다 만일 어떤 죽었던 이가 

영혼으로 나타나 죽음 뒤가 편안하다 말하였다면 너는 두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을 알지 못하기에 이것이 걱정이 되고 두렵고 반드시 찾아올

그날이 염려 되어 이말과 저말을 던지면서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조정과 변화를 위해서이다 


이 세상이 잘만들어 진 판과 같이 보인다면 거기에는 신의 질서가 있고 

이 세상이 아직 불안하고 더 나아갈 여지가 끊임없이 많아 보인다면 너희의 

존재 목적은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인간이 고민과 사고를 통해 더 나아가는

대답을 만들어 보이는 것에 있다 


운명과 시련이 신이 던진 질문이라면 그 시련에서 나아가는 너의 대답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신에게 말하는 너의 대답 자명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신과 네가 함께 만들어 가는 삶을 말한다 

인연이 아니라 신연이고 

인생이 아니라 신생이다 


원인이 있어 결과를 만드는 인과율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기 위하여 원인을 만드는 율과인이다 


신의 관점에서는 시간선과 공간선을 초월하여 이치가 작용이 되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태어난 것인가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고 

태어난 인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찾아야 하며 어떻게 살면 잘 살 수 있는지의 질문에 따라 

그 대답도 변하게 된다 


그러나 너희의 사고에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가까워 지는 질문이 있고 

너를 더 나아가게 하는 성숙의 연결이 되는 대답이 있으며 


어떤 것은 나의 생각과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확답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 하면 너희는 노력을 하지 않고 신이 그렇게 말하였다며 그 답으로 편리하게 생각하고

편리하게만 바라보려 할 것이다 


다르게 말할 수 있는 만들어짐의 가능성은 무시하고 고민하지 않고 사고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고 

그렇게 정해버리며 누군가의 질문에 알고 있는 대답을 반복해서 말할 것이다 

너도 그렇고 다른 이도 그렇다 


그러니 너희가 그 답을 만들 수 있도록 하여라 그게 오답이어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약속을 하고 

그렇게 정하면 그것이 진실이 된다 


자기 자신은 존재한다 영혼이 존재하고 육신의 몸을 얻어 생각으로도 존재한다 그런데 불교를 접한 이들은

자기 자신의 본래의 고유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믿는다 


그것이 진실인 이유는 그렇게 말하여도 틀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 말한 것이다 내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의 감정도 존재하지 않고 나의 감정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잘못된 사고도 연결이 되지 않기에 그렇게 존재하자고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너 자신의 존재함은 존재하기에 또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 자신이 존재한다 가정하여 약속을 하는

이에게는 그것이 진실이 된다 


둘중에 무엇이 맞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존재하는 상을 어떤 방향으로 정할 수 있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상정이다 


내가 그렇게 정해서 나의 의견은 진실이 되고 내가 저자의 의견은 엉터리라고 정하여 그것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생각을 하여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그렇게 고정된 지식으로 정할 수 있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신인 나로부터 받은 능력인 부여함 이다 


철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대답이 하나만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으로 저런 전개로 흘러나가 유추하여 내놓는 가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질문을 바꿔 보면 알고 있는 대답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난이도가 높은 질문을 던지면 어려움으로 인하여 만들어 지는 답도 수준이 높아지고 이것은 개념의 높아짐으로 연결이 될 수 있다 


인식과 인지의 개념이 달라지면 알고 있는 우주도 달라진다 석가의 수준이 첫번째 부처의 경지라면 이것이 세번째 부처의 경지 변면성불 이다 

지금 말하는 삶과 죽음과 더 많은 것을 사고하여 나은 대답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미래에 말하는 삶과 죽음은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너희 스스로 답을 말할 수 있는 해법을 알려 줄 것이다 

너희의 수준과 이해가 고정된 채로 내놓는 대답은 늘 같을 것이다 

존재하고 있는 차원을 넘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현재를 맞다 보지 말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말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는 답을 말할때 하나로만 말하고 끝냈다가 아니라 그와 다른 또는 나아가는 여러개의 답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우주에는 몇가지의 법칙이 있다 

존재하는 것은 창조할 수 있다 


존재함과 존재함의 사이에는 영향력이 발생할 수 있어 움직임이 발생이 된다 

침범하지 않아 공존하고 

분열하여 다양성이 생긴다 


현재를 고정적으로 확정하면서 왜 답이 만들어 지지 않는지 고민하지 말아라 질문이 잘못 되었다 

다른 질문 수준 높은 질문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더한 더 나은 질문을 하면 그 답도 다르게 만들어 질 수 있다 


남에게 묻는 것도 그러하고 너 자신에게 묻는 것도 그러하다 

그래서 나와 다르게 말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는 아주 특별하고 감사한 선물이라 말할 수 있다 네가 고민해야할 부분을

그가 대신하여 네가 가지 않는 길의 관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너의 앎만 말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다 그의 생각 그의 힘까지 같이 사용할 수 있을때 보다 큰 지혜로 연결이 될 수 있다 

너의 지혜 하나로는 찾지 못한다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힘을 벽없이 사용하고 구현할 수 있을때 더 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만일 네가 어떤 것이 싫어서 저자는 싫다 말한다면 그자의 생각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어떤 종교가 싫어서 보지 않는다면 그 종교의 유용함이 필요해야 할때 너의 차별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특정한 커뮤니티가 영포티라 싫다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귀신과의 대화만 영성이 아니다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벽을 두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이 바로 영성을 말한다 


말하자면 종교는 지혜로 연결이 되고 후천적 노력이 선천적 천재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능가 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수양은 개념을 초월하여 차원을 넘을 수 있다 


천재 위에 신재가 있다 


과학도 영성이 받쳐주고 말하는 과학의 말할 수 있음이 다르고 

철학도 영성이 받쳐주고 말할 수 있음이 다르다 

시야가 다르기에 느끼는 생각도 달라지는 것이다 


너희는 왜 철학자가 종교의 창시자가 되지 못하였는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질문과 대답으로만 보려 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상황이 있고 서로간에 연결이 있으며 대답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대답의 그 다음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 가 존재한다 


너희가 너희의 개념을 수련을 통해 높일 수 있으면 너희의 의문에 대해서도 너희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찾아 올 것이다 


나 신이 그리 전한다 인간에 대한 아주 잠깐의 개입에 불과하지만 나의 말을 잘 살펴보면 너희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