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자유로운가?

2. ‘나’란 무엇인가?


3.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 내 세상의 한계는 어디인가?


5. 나는 이것을 이해하고 있는가?





먼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이전에 종교적 개념에 대해서 말하도록 하겠다 

참나 라는 말이 있다 내가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면


이것은 순수한 나와 분노의 감정이 결합된 변질된 것이라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감정과 자신을 분리하여 순수한 내면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함으로 자신을

보자는 것이 종교적 개념의 참나라는 말이다 


그런데 순수한 나 자신의 개념이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그냥 존재함일 뿐이다 


몸이 있어 추위를 느껴 옷이 필요하고 집이 필요하며 음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감정이 생기고 말할 수 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그 자체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결합하는 대상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이 우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은 세상이 있어서 생겨남조차 만들어 진다 

저 물에 비친 달과 꽃을 잡을 수 있는가 ? 잡을 수 있다 

존재하는 방향에 닿으면 된다 보여지는 것이 모두 보여짐이 아니고 거기에는 실체가 되는

기준이 있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만든 마음의 우주 보다 더 높은 


실체의 우주 이다 


내가 자유로운지 알려면 다음과 같이 바라 보면 된다 

자유로운 상황인지에 대한 파악과 


실제로 간섭을 받으며 자유롭지 않음에도 그것에서 자유롭다 마음으로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 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그렇게 여겨 판단하는 인식과 

그러지 않음에도 현실을 조작하여 그 이유를 만들어 내고 속임으로써 그렇게 믿는 인지적 


개념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새벽에 출근하고 밤 늦게 집에 오는 직장인이 스스로 힘들다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퇴근후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을 마시며 내가 자유를 느끼는 이 순간만이 실존하여

나는 자유롭다 라고 그 이유를 만들어 내면 그는 힘든 삶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부여하는 그러하다 는 뜻에 따라 자유로운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본래 존재함에 연결하여 만들어 내는 감정적 사고가 실제의 참나를 의미한다 


나는 무엇인가 ? 

그냥 눈을 감고 멍하니 명상만 하고 나를 찾으려 해서는 연결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서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는 다른 대답이 만들어 진다 

나는 만족을 찾아나서 존재한다로 연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웃을 보며 봉사활동을 하며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도 대답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한계에 대해서도 말을 할 수 있다 

나라는 자신과 결합이 되는 상대적 개념의 존재함을 연결하여 이유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신은 왜 태어 났는가 ?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태어났다 

인간만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신의 목적중에는 인간을 만듬도 존재 했었기에 

틀린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모든 질문에는 모든 답이 있다는 말의 또 다른 뜻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자유로운가 나는 만족을 하는가와 같은 것은


나와 결합된 무엇이 있고 나와 결합된 자유가 있으며 나와 결합된

만족과 나와 결합된 이해가 있다 


나를 말함에 있어서는 결합이 되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존재함과 연결되어 말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내 자신이 있고 


증오와 괴로움을 연결하여 아파하는 내 자신이 있으며 거기에서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행복한가는 또 나는 불행한가로도 변환하여 질문 할 수 있다 

나는 불행한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불행한 것은 행복의 이유를 만들지 못해서 불행한 것인가 

불행에 머물러 있어 불행한 것인가 불행이 계속 되어서 불행한 것인가 


행복을 불행으로 바라 보아 불행한 것인가 

어떤 질문을 하는지에 따라 만들어 지는 사고의 대답또한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그러니까 사고를 함에도 철학을 만들어 내는 것에도 원리와 기술이 존재한다 

그냥 저 컵이 무엇인지 말을 하는 것과 


결합을 이해하여 삶의 고통과 컵을 연결하여 대답이 나올 수 있음을 이해하여 

일부러 질문을 하는 것은 같지가 않다 


나는 누구인가 명확한 대답을 못하기에 이것이 추상적으로 보이고 난해해 보이며 

아리송 하고 저자는 어떻게 답변을 하는지 계속해서 되묻는 것이다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고 끊임없이 무엇이든 만들어 질 수 있는

무한의 세계가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높은 하늘 무색계이다


하지만 그 무한은 유한을 끝이 없이 늘어 놓아 쌓은 유한이며 단지 그 너머를 보지 못해

유한을 무한과 같이 바라보는 것 뿐이다    

  

그것을 전부 알아 하나하나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것은 더 높은 유한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신이 거주하는 부처보다 높은 하늘 공색계 이다 


알기에 앎을 늘어 놓는 것이다 공색계 위에는 수색계가 있고 수색계 위에는 

타계가 있으며 타계 위에는 조작계가 있다 


그래서 앎과 인지를 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차원을 높이는 것에 따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달라진다 

나는 너희의 이해에 다가가기 위해 얼마나 나를 낮춰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기준에서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두 말하고 설명 할 수 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