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자유연애의 확산은 여성에게 일방적인 이득만을 가져다준 변화는 아니었다. 전통적 연애·결혼 규범이 약화되면서 여성 역시 새로운 위험과 불안을 떠안게 되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먹버’라는 현상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 간의 연애 문제를 넘어, 성 규범과 책임 개념이 급격히 재편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특히 학벌·직업·소득 면에서 우위에 있는 남성과의 연애는 여성들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겉으로는 선택지가 넓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언제든지 관계가 일방적으로 종료될 수 있다는 불안이 상시적으로 따라붙었다. 2010년대 초 대학가에서도 의사나 고소득 직장인을 만나다가 갑작스럽게 관계가 끊기는 사례는 드물지 않았고, 이는 개인의 판단 미숙이라기보다는 연애 시장의 비대칭 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과거, 특히 1970년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행동이 사회적으로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성관계는 곧 책임과 연결되었고, 남성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을 경우 ‘비도덕적 인간’이라는 낙인이 비교적 쉽게 찍혔다. 이는 법 이전에 사회적 규범과 공동체의 압력이 강하게 작동하던 시대적 조건 덕분이었다.


그러나 자유연애가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이후, 이러한 도덕적 압박은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연애와 이별이 개인의 선택이며 자유라고 주장한 이상, 관계 종료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논리적 모순에 가까워졌다. 자유롭게 만나고 자유롭게 헤어지는 것이 정상이라면, ‘왜 책임지지 않느냐’는 요구는 스스로 내세운 원칙과 충돌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먹버’는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는 불쾌하지만, 명확히 잘못이라 말하기는 애매한 회색지대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여성계가 선택한 대응 전략은 연애 윤리의 회복이 아니라, 법적·제도적 수단을 통한 압박이었다. 성범죄에 대한 유죄추정에 가까운 사회적 분위기 조성과 무고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향은, 비대칭적 연애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을 상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특히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중요한 남성일수록 성범죄 혐의는 치명적이었고, 이는 곧 ‘쉽게 떠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과거처럼 아무런 부담 없이 관계를 끊는 행위는 점점 어려워졌다. 이는 연애의 안정성을 높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성과 연애 전반에 대한 상호 불신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자유연애를 통해 책임의 개념을 해체한 뒤, 그 공백을 다시 법과 처벌로 채우려는 역설적인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최근 여성계가 다음 단계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 포르노의 성범죄화이다. 단순한 음란물 규제가 아니라, 소비와 존재 자체를 범죄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이미 딥페이크 논란을 계기로 현실 정치의 영역에 진입했다. 이는 개인의 성적 선택과 표현의 자유를 다시금 범죄 프레임으로 묶으려는 움직임이며, 자유연애 이후 통제 불가능해진 성 영역을 재규율하려는 또 다른 형태의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