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한성과 인식의 한계 때문에 불교의 해탈은 이론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
열반자란 해탈한 존재가 아니라, 해탈했다는 확신 속에서 생을 마치는 인간일 뿐이며, 그 확신은 검증되지 않은 채 존재와 함께 소멸한다고 봄.
논리적 완결을 추구하는 불교는 오히려 인간의 유한함과 현실의 불완전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틈을 ‘공’으로 덮어버림으로써 비판 불가능한 체계를 만들어냄.
마치 철학적 탐구를 표방하지만, 근본적 질문을 종결함으로 의미를 완성하는 종교적 체계에 가까운..
<좀더 쉽게 말하면>
공이란
공의 개념 유지 = 비형이상학 =불교
공의 개념 완성 = 형이상학 =불교아님
여기에 대해
설명불가= 회피 =불교
설명가능= 불교아님
좀 잔인할수 있지만
여기서 불교가 이기려면 불교는 허상이(거짓) 되어야함. 그러면 이길수 있음. 부정시 이지선다 늪에서 영원히 두드려맞는거
불교는 매 상황마다 케바케이고 상수가 아닌 변수로 초기화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깊은 가르침을 줌. 그게 글만 둥둥 떠다니는 기존 철학과 가장 큰 차이. 깨어있음이란 그리 민만한 주제가 아니여 - dc App
그 케바케가 종교도 아닌 철학도 아닌 불교만의 아이덴티티임. 그 핵심개념은 ‘공‘ 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공을 인지 또는 완성되는 순간 형이상학적 개념이 되고, 이는 곧 불교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시점임.
@ㅇㅇ 불교야 말로 글만 둥둥떠다니는 어떤 참거짓판단과는 거리가 먼 비형이상학의, 철학도아닌 종교도 아닌 그 무언가지
불교의 정체성은 언어나 논리에 있지 않아. 수없이 강조하는 것이 그 너머에 있는 그 무엇임. - dc App
인간에게 언어의 한계을 어떻게 가르칠까? - dc App
@ㅇㅇ(118.235) 니가 설명못하는 그 무엇이 ‘공’인데, 불교는 공 뒤에 숨어 참거짓판단을 봉쇄해버림. 이는 명제의 회피이며 불교가 철학이 될수 없는 이유임
@ㅇㅇ 정작 니도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그 개념에 대해 설명못하고, 공으로 덮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함
@ㅇㅇ 한편 너의 대답이 가장 불교적인 대답임. 그러나 니가 그 설명못한 그 무언가의 답에 대해 설명해버린다면 너는 불교적 관점에서 벗어나버리게됨. 그리고 이게 내가 말하는 불교모순의 핵심임
불교 유아론인가
유아론X / 메타파괴O
經 지날 경 연결하다 방향을 잡다 의 뜻을 가짐.
공이 아니라도 무엇 하나라도 완성의 개념을 설명 할 수 있는게 있는가 ? 사과의 완성된 개념을 설명 해줘봐.
불교의 방향성에 화두로써 사색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 철학의 인식론과 비슷한 모습이 있으나 불교 철학은 불교의 일부분을 표현 하는 것이지 불교를 대표 하는 것이 아님.
밴다이어 그램에서 보듯 비선형의 3차원 공간에서 부분은 전체를 완전 수용을 못함.
나는 사과=비형이상학적이라고 한적도, 불교=철학이라 한적도 없음. 너는 이 답변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얼 말하고 싶은거지?
불교는 이기고 지는 대립의 구도가 아니지?
응. 회피하는 구조임
經 연결하다 방향을 잡다.
생각을 해봐라... 부처는 따지고 보면 그 시대의 철학자(시대가 시대이니 종교와 더욱더 밀접했겠지) 같은 사람들 비판한 거 아니냐 그런데 거기에 대고 철학적 비판을 하면... 생각도 일종의 운동이라면 그 단련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뭔가 다르지 않겠냐 그걸 해탈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런 상태가 됐을 때 비로소 철학이 가능한 상태라고도 볼 수 있는 거 아니겠냐
ㅋㅋㅋ생각해보니 불교는 훌륭한 종교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