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계란 인간인 자신과 타인의 세계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는 ’나‘라는 존재(자세계)는 타인(타세계)과 영원히 섞일 수 없는 개별적 존재입니다. (세상과 인간탐구 참고)

과학적으로 장기를 이식받으면, 섞일 수 있는 것 아니냐? 라는 질문은 두 가지 모순을 가집니다.

첫 번째로 인과성의 문제입니다. 

인과적으로 둘이 하나의 조직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기존에 있었어야 할 장기가 없어짐 혹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음 등으로 인하여 시작됩니다.

그렇기에 같은 시작점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 둘은 인과관계의 원인의 차이를 뜻합니다.

또한 결과가 과학적으로 똑같지 않습니다.

병리학적으로 봤을 때, 이식받은 장기는 체내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는 철학적으로 봤을 때나 병리학적으로 봤을 때 또한 같은 결과를 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첫 번째 모순이 생겨납니다.

두 번째 모순은 자유의식의 차이입니다.

살기 위해서 장기를 이식받아야 하는 삶을 거부하는 것 조차 의지의 자의성의 발현입니다.

어찌나 모순적인 ‘인간’다운 결정입니까, 자신이 살 수 있음에도 그 본능을 이겨내어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자의성을 지닐 수 있는 존재의 주권의 발현이.

타세계의 남이 보았을 때, 아무리 보아도, 설득해도 ‘자의성‘의 존재로 인하여 절대 사상 혹은 결정 등, 섞일 수 없는 두 번째 모순입니다.

하지만 ‘나’의 결정은 무조건적으로 나 혼자서만 하는 결정이 아닙니다.

지성의 발현으로 선험적으로 우리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타세계 혹은 외세계의 존재로 인하여 우리 인간은 필연적으로 ‘간섭’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곧 제가 말하는 자세계의 이끌림입니다.

사람은 결코 자의성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의성은 ’본능‘의 존재를 깨우치고,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을 뜻합니다.

즉, 결론적으로 본능 혹은 타인 혹은 생각 등에 의해 인간은 피동적(자의적)인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닌 수동적 존재로 태어남을 뜻합니다.

이를 깨닫는 것이, ‘인식론적 트리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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