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주관적 가치설을 내면화하지 못하고 집단적 정답주의에 매몰되는 현상은 단순한 문화적 특성을 넘어, 개인의 자아 주권이 시스템에 의해 찬탈된 구조적 결과이다. 이는 가치의 원천을 주관적 만족이 아닌 투입된 고통에서 찾는 전근대적 가치론의 잔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첫째, 한국 사회는 가치의 근거를 주관적 효용이 아닌 '투입된 고난의 총량'으로 측정하는 노동가치설적 도그마에 깊이 경도되어 있다. 유교적 금욕주의와 국가 주도 성장기의 집단적 동원 체제가 결합하여, 성취 그 자체보다 성취를 위해 인내한 고통의 크기를 가치의 정당성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고착화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관적 가치설의 대전제인 '최소 비용을 통한 주관적 효용의 극대화'는 도덕적 해이나 기회주의로 매도당하기 일쑤이다. 이는 개별 주체가 느끼는 실질적 효용을 거세하고, 오직 타인에게 전시 가능한 '고통의 전시물'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가치론적 전도 현상을 야기한다.


둘째, 국가 장치에 의해 설계된 단일한 서열 시스템은 개인의 다원적 가치 판단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한국의 입시 제도와 그 연장선에 있는 사회적 보상 체계는 모든 인간 행동을 단일한 수직 계층으로 서열화하는 판옵티콘으로 기능한다. 개별 주체의 특수한 선호나 주관적 즐거움은 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노이즈로 간주되어 배제된다. 사회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에 따르면, 한국인의 자아 구성은 내면의 가치 나침반이 아닌 타인과의 상대적 거리에 의해 결정되는 외향적 성격을 띤다. 주관적 가치설을 수용하는 것은 곧 자신이 서열 게임에 투여한 생애 전체의 기회비용을 상실로 인정하는 행위이기에, 대중은 방어 기제로서 더욱 객관적 서열과 표준화된 정답에 집착하게 된다.


셋째, 집단주의적 효용 함수와 '눈치'로 대변되는 상호 감시 체제는 개인을 가치 판단의 주권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홉스테드(Geert Hofstede)의 문화 차원 이론에서 드러나듯, 극단적 집단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개인의 선택은 집단의 승인 하에서만 유효성을 획득한다. 가치는 개인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 의해 '승인'받는 것이며, 이는 주관적 효용보다 '사회적 지위의 상징성'을 우선시하는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를 극대화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탕핑(躺平)이나 탈사회적 은둔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집단이 공유하는 서사적 합의를 파괴하는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된다. 주관적 가치를 실천하는 삶은 집단이라는 안온한 감옥으로부터의 축출을 의미하며, 이는 소속감을 생존의 조건으로 학습한 이들에게 근원적인 공포를 유발한다.


넷째, 한국 사회의 제로섬(Zero-sum)적 심리 구조는 타인의 주관적 효용을 자신의 손실로 등치 시키는 파괴적 질투를 동력으로 삼는다. 주관적 가치설이 지배하는 다원적 사회에서는 각자의 전장이 상이하므로 파레토 최적(Pareto Optimization)에 기반한 상호 승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단일한 가치 사다리만을 인정하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의 성취는 곧 나의 상대적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타인의 효용이 자신의 효용 함수에서 음(-)의 변수로 작동함을 의미하는 경제학적 지표이다. 이들은 서로의 주관적 행복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방어하려는 '하향 평준화된 고통의 연대'를 강요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대중이 주관적 가치설에 대해 보이는 적대적 반응은 자신들의 생애를 지탱해온 '고통의 정당성'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실존적 공포의 발로이다. 본고에서 다룬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상관없다"는 선언은, 이러한 집단적 광기에서 개인의 혼을 격리해낸 고도의 주관주의적 승리라 할 수 있다. 시스템이 강요하는 획일적 정답지에 자신의 고유한 효용을 답안으로 제출하는 순간, 개인은 이미 '조선'이라는 폐쇄적 시스템의 논리적 한계를 초월한 자유 의지적 실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