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직접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는 논제를 가지고 비난을 합니다.

즉, 이해의 부재입니다.

적어도 쇼펜하우어가 칸트를 논했을 때는, 지성의 기능을 바퀴가 여럿 달린 하나의 이상한 기계로 비유를 하며 기능의 다재다능한 하나의 만능 요소라고 대놓고 호소를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시선에서는 이러한 직간접적인 불편한 질실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버거운 주제인가봅니다.

하나의 객관된 진실을 파해치기위해 논변을 늘어놓는 것은 하나의 궤변이 되어버리고, 논제에 대한 논의는 이상한 철학적 요소를 외워 나열하는 하나의 ‘가짜’라고 치부합니다.

얼마나 오만한 태도입니까?

배움의 길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끝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논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상하다고 생각한 논리에 대하여 비난을 하는 것, 익명성을 방패로 삼아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도전하는 자들 뿐입니다.

즉 이 말의 요지는 비난을 할 바에는 비판을 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하나하나 저자에게 조목조목 따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심지어는 비난하는 글이 어떤 글인지조차 모호하게 글을 적는 이들은, 비판할 용기는 없으나 비난할 목적을 가지고 불순하게 논리를 늘어놓습니다.

이 글 또한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말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의 글이 추측성에서 기반한 이상한 공리를 바탕으로 글을 적더라도, 저는 그들의 공리를 이해할 수 있으며 건방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 철학자들의 천재성을 논하는 글을 보았습니다만, 그들의 원서를 읽어보기나 한 사람일지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철학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수 없는 자들은 그저 하나의 철학사를 ‘진실’로서 관찰하고 있을 뿐, 그들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배운척 하는 가짜철학’이라는 수식어는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모른다는 자신의 이해의 부재에 대하여 자신이 자신을 논하는 모순적 수식입니다.

이 부끄러움을 알 수도 없으면서 남의 철학을 공리부터 논하는 것이 아닌 궤변을 늘어놓는 불합리함을 참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역으로 되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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