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를 말할 수 없다는 것 :
애초에 실체를 묻는 질문 자체가
현상들 속에서 물어진 것임
실체를 보고서 저게 뭐야라고 물은게 아님
관계 속에서 이 관계식의 근원은 무엇인가라고 물은 것이지
이는 실체의 근원이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함
마치
거울 속에 나 자신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내가 거울 앞에 서 있음으로서 성립한다는 것
거울 앞에 내가 없다면 애초에 실체에 대한 질문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란 독립된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
빅뱅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라는 말이나
관측가능한 우주 넘어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이나
모두 빅뱅 이후와 관측가능한 우주가 있음으로 생기는 질문인 것
따라서 관계 이전의 독립성을 우리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형이상학은 머다?
말장난임
그 맥락에서 보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사실 말의 본질부터가 말장난이란 거지.
그렇다 실체란 언어의 고정성과 얽혀있음 인식한 대상을 명명하는 행위가 대상을 규정짓고 정의내리는 것 이미 언어에 고정성이 전제가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란 흐름을 고정된 분절단위로 인식하게 됨
그리고, 이 글조차 실체와 근원의 정의에 따라 겨우 성립했을 뿐인 말장난이란 거지. 너와 나의 이해가 엇갈리더라도 "이 말이 더 그럴 듯함 ㅋㅋ" 결국 말장난. 굳이 형이상학만 집어서 말장난인가? 과학도 말장난이지. "이 말이 작동하니 진짠듯 ㅇㅇ"라는 말장난.
그러한 말장난을 집어치워야된다는 말임 언어의 경계 넘어의 것을 언어의 경계 안에서 찾으면서 경계 넘어의 것은 이것 혹은 저것이 아닌가라는 즉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
실체에 대한 접근 속에서 우리가 알아낸 것은 관계이다. 그렇다면 2차적 관계는 무엇 위에 서 있는가? 이것을 알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관계와 구조가 형이상학인가? 아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관계와 구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임 인간인식의 한계를 뜻하지 실체가 관계이니 관계가 형이상학이란 말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방정식은 실체에 대한 고정성이 아님 무질서는 이산적일 수 없음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따라서 세계라는 말 자체는 이미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서의 현상이기 때문에 이산적인 것 그래서 방정식은 실체에 대한 고정성이 아닌 관계 속에서의 정의임 경계를 넘지 않는다는 것
내 말장난이 제 자리에 제 스스로 서 있거늘, 이것이 어찌 집어치워질 수 있겠는가. 장난이라 불려도, 이미 하나의 온전한 세계라네.
그대의 말장난이 낳은 깊이를 존중하지. 말장난을 부정하는 말장난만 빼고. 우리는 이미 말장난을 정의하는 말장난 속에 들어져 있거늘.
질문의 발생 조건은 대상의 근원이 아니다. 형식체계 위에 맺힌 구조와 관계는 그 너머를 보장할 수 없다. 우리가 말로 세계를 말할 때, 이미 고유한 말의 관계 체계 위에 선 것이다. 그대가 파악한 관계와 구조 역시 말로 포획되었고, 이미 말장난이다.
방정식은 가장 강력한 말이다. 형식체계 내부에서 관계적 정의는 단단한 고정 규칙이다. 세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 방정식(式)을 성립케 한 형이상학적 가정은 말장난이 아니란 말인가?
~라고말장난쳐봤습니다..
自然은 어디에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