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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심심경(甚深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어떤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의심을 벗어났고 망설임을 여의었으며 삿된 소견의 가시를 뽑아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다.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는데 그 어느 곳에 나라는 것이 있겠느냐?
나는 저 비구들을 위하여 법을 설명하였고, 저 비구들을 위하여 현성(賢聖)이 세상에 나와 공(空)과 서로 호응하여 연기(緣起)가 수순(隨順)하는 법을 설명하였다.
그것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6입처가 있으며, 6입처를 인연하여 접촉이 있고, 접촉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으며, 느낌을 인연하여 애욕이 있고 애욕을 인연하여 취함이 있으며,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으며,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고,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내지)…… 이와 같이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설법하였건만 그래도 저 비구들은 아직도 의혹과 망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찍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생각하고 획득하지 못한 것을 획득했다 생각하며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금 법을 듣고서도 마음에 근심과 괴로움ㆍ후회(後悔)와 원망ㆍ흐리멍덩함에 빠짐ㆍ막히고 걸림이 생겼다.
왜냐 하면 이 매우 심오한 이치는 이른바 저 연기보다 몇 곱이나 더 깊어서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니, 즉 일체의 취함을 여의어애욕이 다하고 탐욕이 없어져 적멸(寂滅)한 열반(涅槃)에 드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두 법이 있으니, 이른바 함이 있는 법[有爲]과 함이 없는 법[無爲]이다.
함이 있는 법이란 나기도 하고 혹은 머무르기도 하며 혹은 달라지기도 하고 혹은 소멸하기도 하는 것이다.
함이 없는 법이란 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달라지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의 모든 행의 괴로움이 적멸해져서 열반에 드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인(因)이 발생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발생하고, 인이 소멸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소멸한다. 모든 경로(逕路)를 끊고 서로 이어가는 것을 없애고, 서로 이어가는 것을 소멸하는 것마저 다 소멸하여 없애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苦邊]이라고 하느니라.
비구야, 저 어떤 것을 소멸해야 하는가? 말하자면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이니, 그것이 만일 소멸하고 그쳐 맑고 시원해지며 쉬고 사라지면, 일체의 취함이 소멸하여 애욕이 다하고 탐욕이 없어져서 적멸한 열반에 드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94. 우치힐혜경(愚癡黠慧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인연에 얽매여 이 식을 갖춘 몸[識身]을 얻었다. 몸 안에 이 식을 갖춘 몸이 있고 몸 밖에 명색이 있으면, 이 두 가지를 인연하여 접촉이 생긴다. 그러면 이 6촉입(觸入)에 부딪친 것을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거나 즐겁다고 느끼며, 이를 인연하여 여러 가지를 일으킨다. 무엇이 그 여섯 가지인가? 안촉입처(眼觸入處)와 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촉입처(觸入處)이다.
저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인연에 얽매여 이 식을 갖춘 몸을 얻었다. 이와 같이 몸 안에 식을 갖춘 몸이 있고 몸 밖에 명색이 있으면 이 두 가지를 인연하여 6촉입처가 생긴다. 6촉(觸)에 부딪치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괴롭거나 즐겁다고 느끼며 이를 인연하여 여러 가지를 일으킨다. 무엇이 그 여섯 가지인가? 안촉입처와 이ㆍ비ㆍ설ㆍ신ㆍ의촉의 입처이다. 그러면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그들은 내가 닦는 모든 범행(梵行)에 있어서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건대 연설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법을 들으면 마땅히 받아들이고 받들어 실천할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모든 비구들아, 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인연에 얽매여 이 식을 갖춘 몸을 얻는다. 그들은 무명을 끊지 못하고 애욕의 인연을 다하지 못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다시 몸을 받는다. 도로
몸을 받기 때문에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그 어리석은 범부들은 본래 범행을 닦음으로써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길로 바르게 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도로 몸을 받고, 도로 몸을 받기 때문에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하느니라.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들도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인연에 얽매여 이 식을 갖춘 몸을 얻는다.
그러나 그들은 무명을 끊고 애욕의 인연이 다한다. 무명을 끊고 애욕의 인연이 다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 몸을 다시 받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에서 해탈하느니라.
왜냐 하면 그는 일찍부터 범행을 닦아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길로 바르게 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다시는 몸을 받지 않고, 몸을 다시 받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느니라.
이것을 범부와 지혜로운 사람, 그들이 내가 닦는 범행에 있어서 가지는 갖가지 차별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95. 비여소유경(非汝所有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몸은 너의 소유도 아니요 또한 다른 사람의 소유도 아니다. 이른바 6촉입처(觸入處)일 뿐이니, 본래부터 닦고 행한 서원[願]으로 이 몸을 받은 것이다. 무엇이 그 여섯 가지인가? 안촉입처(眼觸入處)와 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촉입처(觸入處)이니라.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모든 연기에 있어서 ‘이 6식신(識身)ㆍ6촉신(觸身)ㆍ6수신(受身)ㆍ6상신(想身)ㆍ6사신(思身)이 있다’고 바르게 사유하고 관찰한다.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미래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고, 이러이러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나니, 이것을 일러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이 발생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른바 이것이 없기 때문에 6식신이 없고, 6촉신ㆍ6수신ㆍ6상신ㆍ6사신이 없다. 이른바 이것이 없기 때문에 미래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없나니, 이러이러하여 순수하고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만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세간의 발생과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바로 알아 잘 보고 잘 깨닫고 잘 들어간다면,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이 착한 법을 불러 이 착한 법을 얻고 이 착한 법을 알고 이 착한 법에 들어가 세간의 생성(生成)과 소멸(消滅)을 깨달아 알고 깨달아 보았으며,
현성(賢聖)들의 생사(生死)를 벗어남과 참되고 고요함을 성취하여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여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느니라.
왜냐 하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세간의 생성과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아 잘 보고 잘 깨닫고 잘 들어가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96. 인연경(因緣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인연법(因緣法)과 연생법(緣生法)을 설명하리라.어떤 것을 인연법이라고 하는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내지)…… 이러이러하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연생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명(無明)과 행(行) 등등이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하시건 혹은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으시건 이 법은 항상 머무르나니, 법이 항상 머무르는 곳을 법계라고 한다. 이러이러하여 저 여래께서 스스로 깨닫고 알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고, 열어 보여 나타내시며, 드날리시는 것이니,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건 혹은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건 간에 이 법은 항상 머무르나니, 법이 항상 머무르는 곳을 법계라고 한다.
이러이러하여 저 여래께서 스스로 깨닫고 알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고, 열어 보여
나타내시며 드날리신 것이니, 이른바 ‘태어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은 법주(法住)ㆍ법공(法空)ㆍ법여(法如)ㆍ법이(法爾)이니라. 법여를 여의지 않고, 법여와 다르지 않으며, 분명하고 진실하여 뒤바뀌지 않고, 이와 같이 연기를 그대로 따르나니 이것을 연생법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무명(無明)ㆍ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6입처(入處)ㆍ접촉[觸]ㆍ느낌[受]ㆍ애욕[愛]ㆍ취함[取]ㆍ존재[有]ㆍ태어남[生]ㆍ늙음[老]ㆍ병듦[病]ㆍ죽음[死]ㆍ근심[憂]ㆍ슬픔[悲]ㆍ번민[惱]ㆍ괴로움[苦]이니, 이것을 연생법이라고 하느니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인연법과 연생법을 바르게 알고 잘 보아,
과거를 구하여 ‘나는 과거 세상에 있었던가 혹은 없었던가? 나는 과거 세상에 어떤 종류였으며, 나는 과거 세상에 어떠하였던가?’ 하고 말하지 않고,
‘나는 미래 세상에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어떤 종류일까, 어떠할까?’ 하고 미래를 구하지도 않으며,
‘이것은 어떤 종류인가, 어떻게 이것이 앞에 있게 되었을까? 누가 마침내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중생들은 어디서 왔는가? 여기서 사라지면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마음으로 짐작하지도 않느니라.
만일 어떤 사문 바라문이 범속(凡俗)한 소견을 일으키고 거기에 얽매인다. 말하자면 나라는 소견에 얽매여 말하고, 중생이라는 소견에 얽매여 말하며, 수명이라는 소견에 얽매여 말하고,
꺼리고 싫어하며 길(吉)하고 경사스럽다는 소견에 얽매인다면,
그때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다 끊고 다 알아 다라(多羅) 나무 밑동을 자르듯 그 근본을 끊어 미래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법으로 만드나니, 이것을 일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인연법과 연생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아 잘 보고, 잘 깨닫고, 잘 닦고, 잘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97. 대공법경(大空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拘留搜)의 조우(調牛)라는 마을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처음ㆍ중간ㆍ마지막이 다 좋고, 좋은 뜻과 좋은 맛이며 순일(純一)하고 청정(淸淨)하며,
범행이 맑고 깨끗하나니 이른바 대공법경(大空法經)이라는 것이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대공법경이라고 하는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느니라.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하면, 혹 어떤 사람은 ‘그 누가 늙고 죽으며, 늙고 죽음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 하고 따져 묻는다.
그러면 저들은 곧 ‘내가 곧 늙고 죽는다. 지금의 늙고 죽음은 내게 속한 것이고, 늙고 죽음은 바로 내가 그렇게 되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명(命)이 곧 몸[身]이다’라고 말하고, 혹은 ‘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곧 마찬가지 뜻인데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일 뿐이다. 만일 ‘명이 곧 몸이다’라고 알아 말한다면, 그것은 범행자(梵行者)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또 ‘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고 보아 말한다면, 그것도 범행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두 극단에 대해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것이 바르게 중도(中道)로 향하는 것이다.
현인(賢人)과 성인(聖人)은 세상에 나와 사실 그대로 뒤바뀌지 않고 바르게 보나니, 이른바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고, 이와 같아서 태어남[生]ㆍ존재[有]ㆍ취함[取]ㆍ애욕[愛]ㆍ느낌[受]ㆍ접촉[觸]ㆍ6입처(入處)ㆍ명색(名色)ㆍ식(識)ㆍ행(行)도 마찬가지이며,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고 보느니라.
만일 누가 ‘무엇이 곧 행이며, 행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 하고 물으면 저들은 곧 ‘행이 곧 나요, 행은 곧 내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저들은 이와 같이 ‘명이 곧 몸이다’라고 말하고, 혹은 ‘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든지 ‘몸이 곧 몸이다’라고 보는 자라면, 그런 범행자는 있을 수 없다. 혹은 ‘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고 말한다면, 그런 범행자도 또한 있을 수 없다. 이 두 극단을 여의는 것이 바르게 중도로 향하는 것이다.
현인과 성인은 세상에 나와 사실 그대로 뒤바뀌지 않고 바르게 보나니,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라고 보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만일 무명에서 탐욕을 여의어서
밝음[明]이 생긴다면, 그 누가 늙고 죽을 것이며 늙고 죽음이 누구에게 속하겠느냐? 늙고 죽음이 곧 끊어지면, 마치 다라 나무 밑동을 자르듯 그 근본을 끊을 줄을 알아 미래 세상에 있어서 나지 않는 법이 될 것이다.
비구들아, 만일 무명에서 탐욕을 여의어서 밝음이 생긴다면, 그 누가 태어날 것이며 태어남이 누구에게 속하겠느냐? ……(내지)…… 누가 행할 것이며 행이 누구에게 속하겠느냐? 행이 곧 끊어지면, 마치 다라 나무 밑동을 자르듯 그 근본을 끊을 줄을 알아 미래 세상에 있어서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법이 될 것이다.
비구들아, 만일 무명에서 탐욕을 여의어서 밝음이 생긴다면, 그 무명이 소멸하면 곧 행이 소멸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나니, 이것을 대공법경(大空法經)이라고 하느니라. ”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98.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고 하는 마을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연기법(緣起法)에 있어서 그 법에 대한 설명[法說]과 뜻에 대한 설명[義說]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무엇이 연기법의 법에 대한 설명인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느니라. 이것을 연기법의 법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이 연기법의 뜻에 대한 설명인가?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고 한다면
그 어떤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는가? 만일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알지 못하고 안팎을 알지 못하며, 업(業)을 알지 못하고 과보(果報)를 알지 못하고 업과 과보를 알지 못하며,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법을 알지 못하고 승가를 알지 못하며,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발생을 알지 못하며, 소멸을 알지 못하고 길을 알지 못하며, 인(因)을 알지 못하고 인이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며,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익히고 익히지 않음과 못나고 뛰어남과 더럽고 깨끗함과 연기에 대한 분별을 모두 알지 못하며, 6촉입처를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빈틈없고 한결같음[無間等]이 없어 어리석고 컴컴하며, 밝음이 없고 크게 어두우면 이것을 무명이라고 하느니라.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는가? 행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의 행[身行]ㆍ입의 행[口行]ㆍ뜻의 행[意行]이니라.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식(識)이라고 하는가? 6식신(識身)을 이르는 말이니, 안식신(眼識身)ㆍ이식신(耳識身)ㆍ비식신(鼻識身)ㆍ설식신(舌識身)ㆍ신식신(身識身)ㆍ의식신(意識身)이니라.
식을 인연하여 명색(名色)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명(名)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네 가지 형상[色]이 없는 음(陰)이니, 즉 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이니라. 어떤 것을 색(色)이라고 하는가? 4대(大)와 4대로 만들어진 것을 색이라고 말한다. 이 색과 앞에서 말한 명을 합해 명색이라고 하느니라.
명색을 인연하여 6입처(入處)가 있다 하니, 어떤 것을 6입처라고 하는가? 6내입처(內入處)를 일컫는 말이니, 안입처(眼入處)ㆍ이입처(耳入處)ㆍ비입처(鼻入處)ㆍ설입처(舌入處)ㆍ신입처(身入處)ㆍ의입처(意入處)이니라.
6입처를 인연하여 접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접촉[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촉신(觸身)이니, 안촉신(眼觸身)ㆍ이촉신(耳觸身)ㆍ비촉신(鼻觸身)ㆍ설촉신(舌觸身)ㆍ신촉신(身觸身)ㆍ의촉신(意觸身)이니라.
접촉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느낌[受]이라고 하는가? 3수(受)를 이르는 말이니, 괴롭다는 느낌ㆍ즐겁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느낌을 인연하여 애욕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애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애(愛)이니,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이니라.
애욕을 인연하여 취함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취함[取]이라고 하는가? 4취(取)이니, 탐욕에 대한 취함[欲取]ㆍ소견에 대한 취함[見取]ㆍ계에 대한 취함[戒取]ㆍ나에 대한 취함[我取]이니라.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존재[有]라고 하는가? 3유(有)이니, 탐욕의 존재[欲有]ㆍ빛깔의 존재[色有]ㆍ빛깔이 없는 존재[無色有]이니라.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태어남[生]이라고 하는가? 만일 이러저러한 중생들이 이러저러한 몸의 종류로 생겨나, 뛰어넘고 화합하고 태어나서 음(陰)을 얻고, 계(界)를 얻고, 입처(入處)를 얻고, 명근(命根)을 얻으면 이것을 태어남이라고 하느니라.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늙음[老]이라고 하는가? 만일 털이 하얗게 세고 정수리가 벗겨지며, 가죽이 늘어지고 감각기관이 문드러지며, 사지가 약해지고 등이 굽으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 숨이 짧아져 헐떡이고 앞으로 쏠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몸이 시커멓게 변하고 온몸에 저승꽃이 피며, 정신이 희미해져 멍청히 있고 거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지면 이것을 늙음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죽음[死]이라고 하는가? 이러저러한 중생들이 이러저러한 종류로 사라지고, 옮기며,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며, 따뜻한 기운이 떠나고, 명(命)이 소멸하여 음(陰)을 버릴 때가 이르면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이 죽음과 앞에서 말한 늙음을 합해 늙음과 죽음이라고 한다. 이것을 연기의 뜻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99. 연기법경(緣起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고 하는 마을에 계셨다.
이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은 세존께서 만든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만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거나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거나 법계에 항상 머물러 있다. 저 여래는 이 법을 스스로 깨닫고 등정각(等正覺)을 이룬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해 분별해 연설하고 드러내어 보이신다.
그것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고,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00. 타경(他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고 하는 마을에 계셨다.
이때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세존을 뵙고 서로 경하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을 무기(無記)라고 말한다.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다면 이것은 곧 무기이니라.”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그러면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다는 것도 곧 무기이니라.”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왜 제가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다고 하면 곧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다고 하면 곧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뜻에 대한 설명과 법에 대한 설명은 이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 처하여 설법하는 것이니라.
말하자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바라문은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301. 가전연경(迦旃延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리(那梨)라고 하는 마을 깊은 숲 속에 있는 대빈사(待賓舍)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산타가전연(跚陁迦旃延)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正見]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세존께서 시설하신 바른 소견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유(有)와 혹은 무(無)이다.
취함[取]에 부딪히고, 취함에 부딪히기 때문에 혹은 유에 의지하고 혹은 무에 의지한다.
만일 이 취함이 없다면 마음과 경계를 얽어매는 번뇌를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겼다고 보고,
괴로움이 소멸하면 소멸했다고 보아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래가 시설한 바른 소견이니라.
왜냐 하면 세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본다면 세간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면 세간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을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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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제12권
송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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