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지‘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라면, 이는 선험적으로 보아야 하는지, 후험적으로 봐야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예로들어 나는 세상의 정의에 대해서 내세계와 외새계로 나누어 분리하여 고찰한 바 있는데, 이 의지의 선험성은 이 의지가 어떠한 세계에 속하는지 정확히 해야만이 내 이론은 완성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예기하자면, 이는 자세계의 ‘나’에게 있어서 이 의지는 간섭 세계에 위치해있는 외세계의 단편이다.

이는 즉, 나에게 있어서 ‘의지’는 선험적 대상이지만 타세계의 나의 존재를 처음부터 지켜봐온 인물에게 있어서 이 의지는 선험적으로 바라보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즉, 내새계의 ‘주체’에 따라서 자세계의 의지는 선험적이며, 이 의지의 선험성을 타인이 보았을 때는 선험성을 입증하기에는 타세계나 외세계로부터의 간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에 후험적 산물로 볼 수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후험성은, 나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지켜봐오고 자라게 한 실질적 ’부모‘의 영향 하에 자란다고 생각하면, 타세계의 후험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나‘는 태어나기 전에 ’의지’를 갖고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증의 이유는 의지의 선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크나큰 순환 논증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지‘란 나에게 있어서 선험적일 수 밖에 없는 순결한 인간의 본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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