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환경을 보면 마치 누군가 우리를 위해 정밀하게 세팅해 놓은 무대처럼 보이기 마련임


만약 지구의 궤도가 조금만 더 타원형이었다면 우리는 극단적인 온도 변화를 견디지 못했을 거고, 목성 같은 거대 가스 행성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무거웠거나 태양에 동반성이 하나라도 더 있었다면, 복잡한 중력 작용 때문에 지구는 진즉에 태양계 밖으로 튕겨나가 차가운 심연 속으로 사라졌을 것임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런 얘기를 하곤 해

"목성은 발을 디딜 땅조차 없이 치명적인 방사능과 가스 폭풍이 몰아치고, 금성은 섭씨 464도에 달하는 지옥 그 자체라서 생명체가 살 수가 없다던데, 지구에 태어난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라고.


즉, 우리는 고도로 정밀하게 셋팅된 듯한, 생명체가 살기 딱 좋은 지구의 환경을 보면서, 우리를 위해 준비된 무대라고 믿고 싶어하는 거지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인지적 오류가 숨어 있음 

우리가 '죽을 확률'과 '존재하지 않을 확률'을 구분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임.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죽을 확률과 살 확률의 문제가 아님

존재할 확률과 존재하지 않을 확률의 문제임

존재하지 않을 확률을 죽을 확률처럼 오인하는 순간 착각이 생기기 마련임

죽음은 이미 존재하는 개체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니까

비존재는 애초에 관측 주체 자체가 없음


이걸 혼동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우리에게 맞춰 미세조정된 것처럼 보이기 쉽지


예를 들어,


쿠키런에서 마녀가 쿠키를 만드는데,

쿠키가 생명을 가질 확률이 10만 분의 1이라고 해보자


마녀가 쿠키 10만 개를 만들었어 

기댓값대로 딱 1개의 쿠키만 용감한 쿠키가 되었어

나머지는 그냥 생명이 없는 맛있는 쿠키야


용감한 쿠키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거임


“생명을 가질 확률이 10만 분의 1인데

내가 존재하다니.. 이건 기적 아님? 분명 신(마녀)께서 나를 위해 오븐 확률을 100%로 조작해주셨을 거야 지금도 지켜봐 주시겠지”


근데 실제로는 그냥

10만 개의 쿠키가 만들어졌는데 그냥 그 기댓값 대로 1개가 생명을 가졌을 뿐임

나머지 9만 9999개의 쿠키는 말이 없음

애초부터 생명이 부여되지 않았으니까


마녀는 용쿠에게 관심 1도 없을 가능성이 높지

그냥 기계적으로 쿠키만 무한히 찍어내고 있을 거임

(사실 그걸 다 쳐먹어서 마녀가 뚱뚱한 거임)


즉, 이건 신의 선물이라거나 기적 같은 게 아니라

단지 관측 가능한 경우만 관측된 것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