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하고, 자신의 관점으로 무언가를 보는 게

인간의 조건?


인간은 원래 자신만의 관점이 없었음.

동물들이하는 의사소통 정도에서 벗어나

분절성, 추상성 등의 언어 조건을 갖추고 나서야

관점이란 게 생김. 그런데 그 언어가 나타나는 시기가

인류 시계로 보면 23시57분인가 23시 58분인가 그렇다


즉 인류는 여지껏 관점이란 게 없었음.


그런데 그러한 것을 드러낸다면 드러냄의 수단이

말표현이나 행동일 것 아님. 


여기서 드러내는 진실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느끼며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


결국 이들이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23시간 50여분 동안 살아가던 인간들은 하지 않던 것을

고작 2~3분 동안, 그 2~3분 동안에도 매우 소수만 가졌던 관점이나 자각 및 어떤 정체성 드러냄을

인간의 조건에 담는 것은 23시간 50여분 동안 살다 죽었던 인간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보는 것.

따라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조건은 인간의 조건이 아님.


한편 이들은 드러낼 뿐 설득하지 않는다고 함.

의문인 것은 왜? 드러내는가? 드러내서 뭘 하는가?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같은 것을 드러내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생각건대, 드러내도 배척 받지 않고 서로 포용해줌으로써 느끼는 안온함 정도를 원한다고 봄.

이들은 마치 성소수자들이 퀴어축제라면서 자신을 드러내며 활보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를 한다는 것인데 그건 결국 살기 위함임.


다른 사람들의 호응으로 살아간다고 보여지고, 따라서 이들이 계속 자신을 드러내는 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모두 연료 공급해주는 똥꼬빨이라고 보기 때문. 그래서 자신도 다른 이의 정체를 호응해주며 타인도 그렇게 해주길 바람.


문제는 똑같이 제 살기 위해서 하더라도 자본주의에서와 달리 이들의 제 살기 위한 방법들은 그렇게 좋은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나르시시즘에 관해서 많은 심리학자나 정신의학과 의사들은 병적인 나르시시즘은 발병에 여러사유가 있겠으나 어릴 때의 과도한 칭찬받음을 사유로서 심각하게 보고 있음.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이들에게도 그들이 받고 주는 호응이란 마치 칭찬과도 같으니, 무조건적인 칭찬을 받아야하고 본인도 해주어야한다는 이들의 제 살기 위한 방법은 반대로 그걸 해주지 않으면 누군가를 배제하는 효과를 낳음.


이들이 드러내는 내용도 사실 다른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함과는 관련이 적음. 그 내용은 원래 자기에게 있던 것과 인간이여서 보유한,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특성임. 나아가서 다른 짐승들과도 공유하는 속성을 포함시키는 사람들도 있음. 이런 것들이 먹고 사는 것과 왜 관련이 적은가. 그런 것들은 야생에서 인간의 몸땡이로 살아가야했던 시절에 살기위해 갖춰진 것들을 기반으로 때문. 그 기반은 감정, 느낌, 본능과같은 것들을 내용으로 함. 즉 그들이 한다는 정체성 드러내기라든가 단지 주장만을 한다는 내용들은 고작 자신이 여왕벌이 되겠다거나 피빨아먹기 위한 좋은 수단 찾기는 되어도, 그것이 문명사회에서 좋은 효과를 발휘하지 않음. 그들의 행위로 다른 이가 편의를 누리거나 더 잘살게 되는 등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정체성이나 드러내서는 '그래서 니 정체성이 그런 내용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음. 그렇다고 이들은 야생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음. 당장 초목이 우거진 자연이나 시베리아 벌판에 이들을 떨어뜨린다고 하여도 무언가에 대한 위험감지나 욕구만 가지거나 어쨋든 뭉쳐야한다는 그런 본능적 행동이 전부일뿐 어떻게 살아남아야하는가는 고려사항이 아니여서. 이 문단에서 소결을 내리자면 이들이 한다는 것은 야생에서도 못써먹고 문명사회에서도 필요가 없음.


결론적으로 드러냄의 대상이 정체성이며 그것을 드러낸다는 이들은 이기심을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