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를 정확하게 밀수록 논리가 나에게 돌아온다
예리하게 밀수록 예리하게 나에게 돌아온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말도 틀릴수가 있지만
단지 내가 지금까지 논리와 공정성을 동일한 층위에 두었을 뿐이고
이 부분을 내가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을수도 있지만
대화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골격으로 논리가 어느정도는 있어야하며
사람이란게 공정성에 대한 감각이 마치 태어날때부터 있는것처럼
보여지는.. 어쩌면 단지 공정성이란 이름을 사후적으로 명명한것일진 모르겠지만
사람이란게 이미 공정성을 어느정도 갖고있는편이라면...
논리와 공정성이란것을 동시에 밀게된다면
자신이 했던말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난 이 공정성이란게 사실 잘 모르겠는부분이라 말이 정확하지 않을수도 있다
내가 하나의 글에서 내가 주장하는 부분을 스스로 반박하는게 누군가기 말했던 정신병적 말하기 같아보일수 있음도 납득하고 있다
다만..적어도 지금의 내겐 이게 그나마..정직하게 말하기에 가까운듯하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내용이 뭐냐면..
말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것이다
타인에게 들이댄 잣대는 자신에게도 들이대어진다
이게 타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서라도
그리고 자신에게 돌아온 말들을
내게는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게 아닐까?하는
공정성과 논리로 밀었지만
공정성과 논리를 모두 손상시키게 되는
황당해지는 부분이 있는듯 하다
자신에 대한 방어가 논리이전에 있는듯하다
일단 나는 그런편이긴 했던거 같은데 남들은 안그럴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겪기엔 그런거 같았다
아님말고
데리다의 (불)가능성의 조건 같은 건가? 어떤 체계의 가능 조건은 동시에 그 체계의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얘기.
데리다가 누구고 무슨말을 했는진 잘 모르겠음... 다만 아직은 명확하지 않음 정리중인거 같음 적어도 내가 다른사람과 대화가 어느정도 되는걸 보면 논리는 어느정도 있는듯 함 그럼 이제 공정성에 대해서 내가 이걸 알고있다고 하는게 맞는건가? 황당해지는 부분임 그래서 명확하지 않을수밖에 없음..
@ㅇㅇ(223.39) 네가 말하는 공정성이 어떤 건데?
@ㅇㅇ(223.39) 내가 데리다를 끌고 온 이유는 '내가 하나의 글에서 내가 주장하는 부분을 스스로 반박하는게' 이 부분 때문인데 데리다의 해석에 따르면 보통 텍스트는 그런 구조를 갖고 있다. 그게 가능성의 조건이자 불가능성의 조건이란 뜻이고.
@래옥(1.225) 공정성이라... 난 이걸 잘 몰라서 잘모르겠지만 타인에게 적용된기준을 자신에게도 적용시켜야 한단거 아닐까?
@래옥(1.225) 뭐랄까... 사전적정의를 모른다고 하는게 아님 이게 논리랑 같이 내게 작동하는 뭔가였는데 난 이걸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었음 그래서 이걸 안다고 부를수가 없는 상황임
@ㅇㅇ(223.39) ㅇㅋ 공정성이라기 보다는 일관성에 가깝지 않나 싶다.
@래옥(1.225) 그러니까 나는 일관된 논리를 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자꾸 내게 적용될때는 망설이게됨 그래서 어쩌면 "타인에게 적용된 기준을 나에게도 적용해야한다" 이게 내게 있어서 전제규칙처럼 맞다고 여겨지는 무엇이였던게 아닐까 싶었던거고 이거랑 비슷한 단어중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것으로 보이는녀석 공정성이란게 아닐까? 한거임 순서가 이상하지만 난 그랬음
@래옥(1.225) 그럴지도 모르겠다
@ㅇㅇ(223.39) 아니다. 일관성 보다는 공정성이 가깝다. 공정성은 나와 타자보다는 타자와 또 다른 타자를 판단할 때 주로 쓰는 것 같지만 뭐 더 적합한 용어가 없다면 공정성이라 써도 좋다고 본다.
@래옥(1.225) 표현이 나랑 비슷하다고 여겨지네 어떤단어는 다른단어보다 더 가깝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이상하지? 실제로 거리가 있는건 아닐텐데 말야 ㅋㅋ
@ㅇㅇ(223.39) 실제로 가까울 수도 있어. 인터넷에서 어휘사전을 이용하면 어떤 동심원을 가정하고 비슷한 의미의 단어일수록 중심에 가깝게 나타난다. 굳이 이걸 예로 안 들더라도 우리가 유의어들을 살펴볼 때 어떤 것이 더 가까운ㅡ비슷한 의미를 갖는지 추상적 도식 같은 걸 상상하는 거 같다. 너의 말에 따라 아님말고ㅋ
@래옥(1.225) 재밌네 뭐랄까... 다른사람의 생각을 열어볼수있는게 아니니까 이걸 완전히 그렇다고 하기엔 항상 빗나가는 잔여가 있지 않나 싶긴하지만 그럼에도 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래옥(1.225) 이거는 좀.. 고민을 해야하나 싶긴한데 내가 생각하고있는 다른 황당한것들도 기회가 된다면 같이 따져볼수 있을듯한거같다 장담하긴 좀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억압된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예를들어 깊은 무의식에서는 섹스를 하고싶은데, 의식적으로는 상모마리아처럼 버진하게 보이길 원하는 분열된 추제가 있다고 하면 이 여성은, 같은 논리를 들어서 왜 남자랑 섹스를 하는게 별로인지를 정당화하고 이걸 비판하게댐. 근데 이게 장기적으로 될리가 없음. 왜냐면 실제로 ㅈㄴ 섹스를 하고 싶기 때문에 , 결국 자기가 비판하는 그 주체가 되버림. ㅋㅋ
근데 애시당초 이 여자는 타인을 본게 아니라 자신의 억압된 면을 본거고, 그냥 억압된게 외밀한 형태로 들어온거
비슷한거 같은데 같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모르겠다
혹시 예전에 말하던 정신병적 말하기가 지금의 내 표현방식같은게 아닌지가 궁금하긴 함 웃기잖아? 원래 글을 쓸때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을 넣는건 일관성을 해치는 틀린 글쓰기 같은거라고 배우는데 지금 그걸 하고있단 말이지..
인간은 양가적인데 이걸 하나의 정합적 논리로 치환시켜야함. 내부에서 A를 말하면 비껴나가는 부분-~A가 있음. 증상의 논리적 해결을 바라면 A로 봉합되야 하는데 그렇지가않음. ~A로 빠져나가는 즉 억압되는부분이 점점 커짐. 대응법은 ~A를 상대의 것으로 보고 투사하는 방법임. 투사를 해도 완전하지는 않고 A가 자기 신체를 억압하므로 장기적으로 신체가 빠져나가는 ~A- 증상으로써 나타남. 조국같은 정치인들이 타인을 비난하는 10년전 자기 트윗이랑 싸우는게 이래서 ㅋㅋㅋ
ㄴㄴ 정신병적 말하기야말로 유일한 제대로된 방식임.
논리적 방식의 귀결은 항상 자신과 싸우는 쪽으로감
정신병적 말하기는 a를 말하면서 ~a를 부끄러워하지않고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형태라... 천재적이라고 할만함 ㅋㅋㅋ
@rfi(59.7) 모르겠다.. 난 이게 뭐랄까... 교묘한 우회를 통해 자신에대한 잣대를 회피하는 방식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식으로 꼬리를 물아봐야 곤란해질뿐이지 않나...
@rfi(59.7) 모르겠음... 글을 꾸준히 써보기도 하고 또 글을 쓰는것을 멈춰보기도 하고 또 글을 쓰되 이게 다른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아보기도 했음 물론 지금의 상황을 상정하고 그런건 아니였지만 그중에서 글을쓰고, 다른사람들과 이를 공유할때 이런 말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경향이 있는거 같아보였다 지금은 이게 그나마 그럴듯한 부분인게 아닌가 싶다
증상이 출현함. 그럼 인간은 증상을 향해 질문을 던짐. 논리적 해결을 찾음(찾았다고 착각ㅋㅋ). 언어에 의해 상징화되지 못하고 실제는 미끄러짐. 여기서 잔여가 남음. 이 잔유ㅕ물이 무의식에 잔존하다가 타인에게 투사되기도 하고 다시 삶에서 더 심한 증상으로 출현하기도 하고. 이거 마주한다는건 초기 부모관계에서의 트라우마를 일으킴. 언어로써는 상징화되지 않는 무의식적 잔여물이 핑퐁하듯이 자기 증상이 타인과 나 사이에서 이리저리로 튀는거. 자기증상이 자기에게로 튀면 수치심을 경험하고 타인에게 튀면 공격성이 발현되고 계속 왔다리 갔다리 한다고 보면
분열된 주체일수록 이 핑퐁의 간극이 심함 인간은 자아가 여러개라서ㅋㅋ. a ~a형태만이 아니라 b ~b c~c 이런 게 끝없이 믹스된 형태로도 갈수있고. 최대한 잔여물을 승화시켜서 간극을 줄이면 이 튀는 폭이 줄어들어서 수치심도 덜 경험하고 공격성도 억제되고
@rfi(59.7) 논리적 해결을 찾았다고 착각한단말이 가장 그럴듯하게 느껴짐
자신에게 돌아온다는건 증상으로써 드러난다는거고. 타인한테 하는 말은 언어고 이 사이엔 항상 간극이 있음. 정신병적 주체들은 이 간극자체가 느껴지질 않음. 그래서 문제인거. 모든 현상이 강박적으로 포획되야 하므로 잔여물들이 증가해서 남한테 전가되고 다시 타인에게서 나로 부메랑마냥 되돌아오는것처럼 느껴지는 것일뿐. 사실 자기 내부에서 뺑뻉이도는거.
@rfi(59.7) 일단 잘 이해는 되지 않는듯함... 부모관계에서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연결시킨건지 어떻게 표현하는건지 알듯말듯함.. 나도 요즘 아기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표현하는지 찾아보고 있는중이긴 함 아직은 그냥... 잘 모름..
@rfi(59.7) "자신에게 돌아온다는건 증상으로써 드러난단거고~ "이거는 좀 알듯말듯 하긴하네 일단 난 "정신병적 주체"라고 생각하기보단 "뇌가 의미를 자동으로 연결지으려고 하는경향" 이라고 생각하는편이긴함 이게 표현상에서 맞는대응인진 모르겠지만
전체 구조가 pseudo psychosis임 , 잔여를 허락하지 않는 강박증자들은 타인과 나를 구별 못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 타인을 나의 일부로 경험하는게 가능 ㅋㅋㅋ
본인이 쓰는 정신병적 주체는 항상 긍정적 의미임. 주체는 정신병으로만 가능해서
@rfi(59.7) 의미가...단어가... 충분히 그럴듯한 모양이라면 뇌가 순식같에 의미를 붙여버림... 이게 인지가 어려울정도로 자동화되어있는게 아닌가 싶음... 마치 우리가 스마트폰 자판을 쓸 때 어떤 자판을 눌러야한다고 일일히 생각하지 않아도 꽤 자동적으로 맞는 위치의 자판을 누르듯이..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
실제////////////////////넘사벽/////////////////////////// 언어 자신 내적 정신구조////////////////넘사벽//////////////////타자 정신구조
@rfi(59.7) 방금 내가 쓴 댓글이.. 내가 생각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너가 말하는 간극과 대응이 되는부분인가 싶은데 잘모르겠음
ㅇㅇ 인간의 거의 모든게 자동화된 프로세스임
이게 잔여, 라깡으로 보면 대상 a이자 정신병이고 , 주체고
문명이 언어로 억압하는 바로 그 대상임ㅋㅋㅋ
아니 언어와 논리로 억압해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잔여....
@rfi(59.7) 뭐랄까...댓글을 더 달고싶어도 자꾸 코드가 걸리네
@rfi(59.7) 진짜 궁금한건데 이건 이 억압이란게 가능은 한거야 아니면 왜곡된 통제욕구같은거 때문에 억압하려할 뿐이지 애초에 불가능한 부분인거야?
잔여물들은 공격성의 형태로 개인에게 내재되어있다가 타인에게 표출되기도함. 피해자 코스프레가 여기서 나온거....내 공격성을 타인의 공격성으로 망상하는게 현대적 피코의 근원ㅋㅋㅋ.
@rfi(59.7) 일단 난 구조상 불가능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있긴 함
억압 자체가 불가능함. 걍 억압한다고 망상하는거
억압된건 das ding이라 성격이 다름.
논리나 의미 or 여친과의 망상플레이로 충족되는 그런성격이 아님
라깡한테 실제는 어머니거든. 어머니와의 야릇한 망상이 붕괴되고 유아시절 상징계의 언어가 지배함. 그럼 초기기표는 공백임. 존재를 유일무이한 공백으로 명명하고, 그다음 상징계 세상의 욕망이 흘러들어옴. 근데 이 과정이 어떤 이유로 아작나면, 공백이 자리잡지 못함. 그럼 트럼프처럼 공백(유일무이함, 독자성ommnipotence)을 애상으로 추구하게됨 공백이 존재론적으로 자리잡는게 아니라 삶에서 적극적으로 추구할 대상이 되는거. 대통령이 되도 자기를 워싱턴하고 비교하며 만족을 못하심 ㅋㅋㅋㅋ
현대 모든 정신병들은 이 공백의 문제와 관련되어있음....잘보면 재밌음
@rfi(59.7) 쉽지않네... 잔여를 언어화 하면 되는거 아님? 이라기엔 언어로는 안되는 영역이 있단것도 납득이 가고 뭐랄까... 공백, 공, 여백이란 형태로 그럴듯하게 만들어도 그냥 땜빵을 했다 뿐이지 그런 의미가 아님... 언어가 언어의 형태를 잃는 부분을 말하는거 그런의미에서 잔여라는 표현도 정확하진 않겠지만 그나마 생각할수 있는 형태의 표현이지 싶음...모르겠음
이 어머니를 잃었다는게 존재결여고 뭐 철갤에도 존재감이 확실하지 않아요.. 이런투정도 다 여기서 비롯된거고
햄릿 to be or not to be 도 난 덴마크 왕자지만 존재감이 불분명하구나 이거고
직관적으로 말해서 잔여라는건 엄마 젖가슴을 물고빨던 우주와 합일된 상태로 존재하던 유아의 희희낙락한 쾌락은 어떤걸로도 보충될수 없다는거임
세상과 내가 분리되지 않는 그 어떤 걱정도 없는 열반이니까....뭐 이런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해해보면
@rfi(59.7) 의미탈락에서 오는 상실의 슬픔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 상태라고 표현하면 꽤 비슷한가?
@rfi(59.7) 그런 안정적 상태같은건 사실 없는건데 이게 있다고 믿어버리는 그런거지..
ㄴㄴ 잔여는 운동임 빠져나가는 운동 고정점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문명의 댐을 건설해서 막아도 막아도 산사태 홍수마냥 흘러나오는거
@rfi(59.7) 모르겠구만.. 라깡의 설명이 그저 그럴듯할 뿐이지 충분히 설명을 못하는건지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하는건지 아니면 내가 의식하지 못할뿐이지 이미 있는지 혹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류라 타인의 그런 심정을 이해할수도 납득할수도 없는건지.. 여전히 잘모르겠음..
인간문명이 이걸 종교나 과학으로 봉합할려고 해도 우울증 자살률 존나 치솟는거고 정신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거고 잔여는 계속 흘러나오니깐
@rfi(59.7) 잔여는 뭔가 그럴듯한 대응이 되는 부분이 있음 뭐냐면... 인간은 불완전한데 자꾸 완전함을 추구함..
라깡도 하이데거도 설명하는 놈이 아님. 그냥 정신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서 독자를 주체로 만드는넘들임. 내가 님 증상을 해석하듯이 자신을 님이 지금 하는 역할로 제시해서 독자한테 rfi 역할을 주체적으로 수행하게 하는거
@rfi(59.7) 내가 자꾸 모르겠다고 하는것들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지 싶음.. 물론 메타적으로 따진다면 자꾸 알려는 태도가 있긴하다만 그럼에도 결국은 모르겠다고 하는거지..의식적으로라도 난 모른다.. 완전하지 않다를 자신에게 계속 상기 시키는 태도 같은거지..
본인은 자꾸 모른다고 하면 거짓 겸손으로 의심하는 경향이 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님은 그런것 같진 않음
@rfi(59.7) 으음... 전혀다름... 대화나 사고의 최적해라고 생각하고 있음 정답이라기엔 곤란하지만 그나마의 최적해가 모름이지 않나 싶음.. 문장의 의미층위는 여러개가 항상 복수로 있지만 모른다는 단어는 문장을 대체로 성립시켜주는 부분이지 싶음..
@rfi(59.7) 그 밖에도 여러가지 몇에서.. 일일히 다 설명하기엔 숨이 차겠지만.. 그나마 제일 괜찮은 형태가 모른다이지 싶었음..나도 이게 몇가지 층위를 만족시키는 형태의 단어인지도 잘모름..미덕이라기보단.. 물론 미덕으로 해석할수도 있겠지만.. 그냥.. 좀 다르지않나.. 아님말고
@rfi(59.7) 실제로 모름, 경로계산이 안됨, 뭐가 이익인지 모름, 남들에게 오해받기 싫음, 설명책임을 추가하고 싶지 않음, 층위가 여러개인듯함, 매칭이 잘안됨, 모를수밖에 없는 부분임, 지금은 모름, 내 생각의 태도 어쩌구....등등을 그냥 한개의 단어로 모름이라고 뭉개서 사용하고 있을뿐임..
@rfi(59.7) 이런것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냥 실제로도 잘 모르는 부분들이기도 함 그렇잖아? 어떻게 다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