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논리적으로 ‘나’의 관한 철학만을 집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의 내면은 아직 고찰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았지만, 타인과 타인이 바라보는 ‘나’에 대해서도 고찰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자세계의 ‘나’는 누군가의 타인이자 누군가의 중요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나는 여태 타인을 ’존중‘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이 나를 대우하는 만큼 나는 상대를 대우하였는가?
타인의 나에 대한 이해는 내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같을 수 있는가?
타인과 나의 대우가 상반된다면, 이는 무슨 관계인가?
위 세가지 답변의 답은 사변적입니다.
즉, 진실된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허울 없는 친구라 해도, 속마음과 말의 뜻은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과 맥락에 맞추어 다른 말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는 말의 가치에서 기인하는 특성입니다.
내가 행하는 타인애 대한 이해는 단편적입니다.
타인이 어떤 생각으로 나를 대우하는지는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상대가 나에 대한 대우가 한 순간만에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치가 없는 곳에서의 대우는 ‘무시’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가치가 없어진 자에게 대한 태도의 변화 역시 변덕이 아닌, 가치의 변화로 인한 대우의 차이입니다.
사람은 타인을 ‘가치‘화 시킵니다.
내에게 있어서 어떠한 존재인지 규명하는 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정합니다.
즉, 대우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호의라는 예외는 있지만, 그 타인의 내부는 사변적입니다.
호의 또한 어떠한 목적을 위한 수단일 수 있습니다.
자세계와 타세계는 절대로 합쳐질 수 없는 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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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알 수 없지만 알려주기: 야앙 -> 사상가 : 진실하고자 하는 사람. 위험한 서사에 올라타버린 사람.
이해가 잘 안됩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