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철학함이라는 표현도 이 표현이 무엇을 지칭하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견이 분분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에는 실용성이 없다는 말로 철학을 표현하는 자는
본인이 철학을 종교나 주술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싶음.
신학은 따로 독립해서 나갔고 주술도 신화 비슷하게 별개의 것으로 나갔는데
신학을 하고 신화학같은 것을 할 것이지 철학을 왜 하는지 의문임.
실제로 일상에서도 기업철학이 있고, 어떤 이는 당신의 철학은 무엇이냐고 내용을 물어볼 때가 있음.
고전서나 철학서를 보면 분명 빠르겠지만
철학이라는 것은 고전서를 보거나 철학서를 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고, 이 단어를 정체나 신념 정립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학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에서, 일상에서, 체육에서, 심지어 길거리 좌판 깔고 장사하는 사람도 쓰는 그 개념 정립이 철학에서 제일 중요한 것 같음.
만약 철학이 우리에게 또는 우리 사회에 나아가 전 인류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를 누가 물어 본다면,
통합이라는 대답이 자주 나오거든.
결국 철학은 딱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함. 딱풀같은 접착제 역할을 해서 무엇과 무엇을 구분한 다음 구분을 토대로 무엇들을 연결해주는 역할하는 개념을 정립하고 그렇게 정립된 개념으로 무언가를 묶음. 이런 개념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열정을 덧붙일 수도, 신념을 덧붙일 수도, 사랑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임.
근데 나는 그런 통합을 할 것이면 그 통합이 개인의 삶이든 사회이든 인류이든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함. 여기서 스포츠 경기보고 우리 편이 이겨서 기분이 좋고, 옆에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이 열광을 해서 그 순간은 하나가 된다는 집단적인 것들은 뺌. 그건 개념정립하는 철학이 아니여도 하는 것이니까. 오히려 이 경우에는 철학은 필요없음.
기업가가 의사결정을 할 때 의사결정을 꼭 해야하는 마지막 시점까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물적, 인적자원을 동원해서 해당 사안에 관하여는 단 하나의 의사결정을 해야함. 그렇게 의사결정을 해서 도장 찍고 상대방에게 송달을 하면 이제 돌이킬 수 없음. 이런 의사결정을 할 때, 철학의 필요를 따지자면 자원을 동원해서 얻은 정보들을 딱풀 갖고 잇듯 통합하는 거임. 그렇게 통합해서 어떻게 하면 이 의사결정으로 기업이 영리를 만들어서 조직 유지나 발전에 도움되게 할까가 의사결정의 목적임.
그러니까 결국 철학은 그냥 일상 속에 어떤 사람이든 하고 있음. 철학이 실용성이 없다는 말은 지나친 것 같음.
그래서 철학이 무엇이냐? 논리학이랑 어떻게 구분되냐? 라는 물음이 떠오름.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좀 생각해봤음.
어떤 내용들은 이제 철학의 영역이 아님. 철학은 개념같은 틀을 만들고 그 틀안에 모든 내용들을 이음. 내용은 자신이 직접 채우든 어떤 분야에서 배워서 채우든 해야할 것임.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사람이 철학을 한다는 것임.
다시 설명하자면 철학은 틀을 그 사람이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데 첫째 역할이 있고, 여기에는 논리학이 도움이 될 것임. 논리학도 결국 누군가 만들어서 나온 것 아님? 그럼 그 사람은 논리학을 어떻게 만들었냐 이 말임. 둘째 역할은 내용과 틀을 잇는 것임.
이정도 생각이 떠오르네.
기존의 틀 바깥으로 질문을 던진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냥 틀을 짜는 게 아니라, 새로운 틀을 창조하는 것 시스템에서 탈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