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얘기좀 해보겠습니다.

저는 사업을 물려 받아야만 하는 운명에 태어났습니다.

쇼펜하우어를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는 가업승계를 뒤로하고 철학자의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바라보는 가장 이성적이고도 가장 자의적인 행동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철학을 조금 더 빨리 배웠더라면, 그와 같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지에서 비롯된, 남에게 맡긴 판단은 오롯이 저에게 맹목성이라는 칼로 되돌아 왔습니다.

하라는 것을 하고, 되라는 것은 되었으며, 하나의 꼭두각시 인생을 대신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뜩 내가 왜 살아야지?”라는 근본적 물음에 발을 멈춰 세웠습니다.

“그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상 나는 죽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지배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철학이라는 근본적 학문을 시작했습니다.



첫 논문의 주제는 ‘행복한 삶‘에 대한 주제였습니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명재를, 결핍을 탓으로 불확실성에 의한 불확실성이 고통을 가져다 준다는 명재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저의 삶은 불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제 명재는 가짜임을 알았습니다.



두 번째로 작성한 이론은, 보편진리 탐구성이었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참 혹은 거짓으로 이분법적 분리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본능을 부순 것이 해겔의 변증법입니다.

하지만 이 변증법 조차 저의 인생을 포괄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즉, 명쾌한 답이 아니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또한 진리가 아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세계를 정의했습니다.

내가 사는 세계의 나는 어떤 존재인 것인가, 나는 무엇인가, 타인의 존재는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하지만 아무런 의미 없었습니다.

‘허무’라는 절대적 존재 앞에 그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보장된 미래가 행복할 것이라는 약속은 없습니다.

현재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미래의 나는 자연스럽게 행복하지 않을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감정은 그저 이성의 잔여물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에 도달하니, 애정과 결핍은 어찌되어도 상관 하지 않게되었습니다.

고통을 받지 않을 권리 조차 없이 태어난 이 존재의 무력감은, 피동성 산물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선험적 인과의 산물이 자의성을 찾는 것이야 말로 모순이 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공허에 갇혀 아직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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