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그럼 멍때릴때는 존제하지 않는거냐?
답:멍을 때릴때 보통 무언가를 보면서 침묵하는데,그 순간도 우리는 그 존제를 인식하고,멍때린다는 개념을 알고있기에 '나는 지금 멍때리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아무것도 생각 안한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멍을때리며 그 사물을 뇌가 관측하고 인식하기에 우리는 늘 생각하니까 맞는 예기 아닐까
라는 뇌피셜 나생고존예기가 틀렸다고 해도 저 반론만큼은 부정할수있을것 같다는생각
반론:그럼 멍때릴때는 존제하지 않는거냐?
답:멍을 때릴때 보통 무언가를 보면서 침묵하는데,그 순간도 우리는 그 존제를 인식하고,멍때린다는 개념을 알고있기에 '나는 지금 멍때리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아무것도 생각 안한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멍을때리며 그 사물을 뇌가 관측하고 인식하기에 우리는 늘 생각하니까 맞는 예기 아닐까
라는 뇌피셜 나생고존예기가 틀렸다고 해도 저 반론만큼은 부정할수있을것 같다는생각
왜그러고 사냐?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어서, 이 부분에서 존재의 근거를 찾은 게 데카르트 같음. 다시 말해, 생각하지 않고 있더라도 우리는 어떤 때에 생각을 하고 있잖아? 생각하는 그 때, 그것은 의심할 수 없었다는 뜻임. 데카르트는 존재의 기반이 생각임.
아주 오래 전에 성찰이랑 방법서설을 읽었었는데 그 때는 존재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지금도 입장은 같은 부분은 : 데카르트를 볼 때는 이성만 보면되지, 그걸 통해서 존재의 근거를 확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 또한 일반적인 인간에게는 데카르트보다 감정놀음에서 존재 찾는 게 나음. 그 느끼는 거 잘 하는 이들. 논리라면 엄근진하게 보인다고 논리에 엄근진하게 접근하면서 형식 논리가 내재화되어 있지 않아서 겉으로만 논리 도구 사용하면서 긴장빠는 애들. 이런 애들은 애초에 논리랑 맞지 않아서 존재 근거를 감정으로 찾아 들어가는 게 수월한 것 같음.
의심을 의심할수 없음.. 모든체계에 의심이란 잣대를 들이대도 이 의심이란 잣대에 잣대를 댈수가 없음.. 그말이 아닌가 싶음..
관념과 현실이 일치 하는 것들을 찾을 때 절대 無 는 생각 하여도 절대 無 가 있음으로 존재를 한다 그러니 절대 無 는 있음의 세계 이다 닝겐이 절대 0도를 생각 하여도 현실에서는 만들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관측 가능한 빛 이라는 물리 현상의 규정 프랑크 길이 처럼 부피 압력 온도에서 경계를 인정하면 절대 无 는 관념 할수 있는 것이 되고 현실에서 실재 할
수 있으며 실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