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를 말할 때 ,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다라는 표현을 잘 씀. 없던 걸 있게 만들어 냈다. 근데 이걸 특정 단위 기준(개인단위이든 조직단위이든) 비교적 혼자서 했다고 하면 독창성이 있다고 표현함.


그런데 무에서 유가 있을 수가 있나? 라는 물음을 보자. 이 無가 지칭하는 바가 무엇이냐. 재료, 내용 그런 것들임. 그렇다면 有가 지칭하는 바가 무엇이냐. 이것도 재료, 내용 그런 것들임. 따라서 어떤 내용 없이 새로운 내용이 나올 수 있냐는 물음으로 볼 수 있음. 정확하게 여기에서 이 재료, 내용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보자. 그것은 물체일 수도 물체가 아닐 수도 있음.


이런 생각을 해보자.


애플에서 컴퓨터랑 핸드폰을 합쳤다. <합쳤다> 즉 조합했다, 연결했다, 편집했다. 그렇다면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해제하고 합치고 하다보면 세상에 없던 것이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 첫번째 생각이고. 단순하게 오로지 이 생각을 중점으로만 다 파악하려고 하면, 모든 것은 <짜집기>이다. 아이디어도 짜집기를 하다보니까 나오는 것. 그렇다면 짜집기를 하기 위해서 재료나 내용을 어디서 가져올까? 라면서 남의 것을 도용하는데 정신을 집중하게 됨. 그리고 스스로는 그런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지. 이것은 나 스스로는 단견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임. 한화에서 벤처기업 M&A나 투자 실사를 한답시고 그 벤처기업이 기술을 공개하게 만든 후 실사를 해. 실사 후 M&A나 투자 결정을 철회하고 비슷한 기술로 자회사를 만들어버림. 실제 이게 바로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좀먹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음. 아마도 당했다고 생각하는 쪽이 그렇게 주장하겠지.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벤처기업측) 입장에 따르면 한화는 이미 재료나 내용들이 다 있음. 인력도 충분함. 어떤 재료는 같은데 어떤 방법론이나 적용방식의 변화 혹은 '어떤 재료를 조합했는가'라고 하면서 조합방법은 아니까 그 "어떤 재료"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행위. 이런 것들을 하는 것. 한화가 아니더라도 이런 방식을 채택하는 건 다른 영역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있음. 예술쪽에서도 무얼하니. 이들은 물체 중심이 아니지. 도대체 이들이 만들어 낸다는 성정체성이 몇 개인지 알 수가 없음. 내 입장에서는 괴랄함. 여하튼 이 문단에서는 <합쳤다>가 주제임.


위에서는 어떤 조합방식의 변화, 개념의 정립을 말했음. 애플 사례에서 휴대폰 + 소형무선통신단말기를 합칠 생각을 애플이 했는데, 그 특정생각. 다른 무엇도 아니고 휴대폰. 다른 무엇도 아니고 컴퓨터. 그 두 개를 합칠 생각을 가리켜 독창성이 있다고 하고. 이게 아이디어. 별론으로 스티브 잡스가 소니 빠돌이었고 아이폰이 어떻게 나왔는가?를 설명하는 일화는 상당히 재미있으니 한 번 찾아서 읽어보길 권장함. 이건 무엇이냐? 그 아이디어 자체가 세상에 없었다가 생겼지. 그래서 이걸 아마도 아이디어가 없었던 상태 즉 無에서 아이디어가 생겨난 상태 즉 有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함.


돌아와서. 그런데 위에서 조합방식, 개념의 정립만 말하지 않았지. 다음 생각으로 위에서 섞인 것을 분리해보자. ① 내용의 변화 관점에서도 보자는 것임.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어떻게 나왔는가? 스마트폰은 소형 컴퓨터인데, 기존의 큰 컴퓨터 + 무선통신단말기(핸드폰)을 합친 것임. 여기서 내용, 재료는 컴퓨터와 핸드폰임. 두 개를 합쳐서 스마트폰이라는 이전에는 없던 것이 만들어져서 새로 나옴. 이런 것도 창조적이라고함. 즉 원래 유에서 유가 나오는데, 앞의 유는 원래 있던 것이고 뒤의 유는 없던 것이 새로 생긴 것임. 有 즉 휴대폰과 컴퓨터. 이거 원래 있던 것이잖아. 그렇게 있던 것에서 스마트폰. 정확하게 애플사의 아이폰이라는 그 이전 세상에서는 없던 조합물이 나옴. ② 근데 그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無의 지칭 대상을 아이디어로 하면, 무에서 유가 나온 것. 그런데 그 아이디어는 어쨋든 컴퓨터와 휴대폰이라는 有<에서>나왔지. 그래서 말이 혼동된다고 생각함. 내 생각에 그 조합방법은 내용을 고려하더라도 지성의 작용이 없으면 나올 수 없음. 만약에 지성이 발휘되지 않았을 때에는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밖에 생각하지 않고, 휴대폰을 보면 휴대폰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임. 그 바운더리 내에서만 바운더리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모른 상태로 생각한다는 뜻. 그러면 계속 '무언가에 비추어서 생각한다'밖에 하지 못함. 재해석도 없고, 지식의존적이게 됨. 아무리 무엇을 설명해도 자신이 아는 것으로 돌아감. 사람에 대한 종속이 아니더라도 다소 그런 상황의존에서 벗어나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지성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는 마치 해외 언론에서 말하는 정보를 보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말이랑은 다름. 그건 여전히 상황의존적임.


따라서 내용변화를 중점으로 볼 때에는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은 없고, 유에서 유가 나올 뿐인데 앞서 말했듯 새로운 유인 것임. 그 새로운 유에는 기존의 유(핸드폰, 컴퓨터)가 요소로 들어가 있음.


결론적으로 창조를 생각할 때에도 줄곧 이 갤러리에서 말했지만, 지성이 중요함. 그리고 그 지성은 본능이나 감정 혹은 단순 정보나 지식의 획득... 뭐랄까 이건 기억한다랑 연관이 있는데 만약에 지성과 지성이 아닌 것을 구분해서 다이아몬드 원석 깎아서 빛나는 다이아몬드 부분만을 보자는 식으로 비교적, 최대한 지성이라는 성질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기억과는 관련이 적음. 그리고 이게 아마도 논리임. 왜냐면 논리에는 내용이 없거든. 이건 파악도구고 훈련을 통해서 그러나 어떤 감정과는 관련 없는 영역에서 내재화시킬 수 있는 것이지 그 논리에 욕구나 느낌이나 또는 어떤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님. 그리고 이 지성으로 개념을 만드는 것이지 개념 그 자체도 아님. 그래서 논리적으로 무언가를 파악할 때에는 무엇에 비추어서 생각한다거나 내가 아는 것에 의해서 생각한다는 표현을 쓸 수 없음. 창조는 지성에서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