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자신이 염세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을 부정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살아버린 삶을 칭한다고 볼 수 있는 ‘인생‘이란, 그 자체로 ’나’인 것입니다.
‘나’는 후험적 인과의 산물입니다.
수 많은 경험을 감성을 통해 쌓아 올려 지성을 이루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입니다.
강아지를 예시로, 동물은 필연적으로 본능을 가집니다.
후대를 위해서라면, 현세의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이를 지키려 합니다.
이는 즉, 생명의 목적 중 하나는 ‘번식’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약간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이 지성은 ‘번식’따위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다시 말해 인간은 번식 외의 또다른 목적이 있어야만이, 이 지성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목적 중 하나는, 신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했듯 신의 존재는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모순입니다.
저는 신을 믿지 않으며, 신의 존재를 요청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저의 삶은 모순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삶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 더 있듯이,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하나 더 있습니다.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인 점입니다.
우리는 고통에 너무 익숙해져, 고통에 대한 감각을 실시간으로 잃어갑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고통 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신은 전지전능하며 사변 그 자체인데 반해, 인간은 고통조차 피할 수 없는 필멸자입니다.
왜 신과 인간은 차별받으며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까?
왜 고통 받지 않을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한 존재입니까?
이것 자체만으로도 삶을 부정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저는 고통받는 세상으로부터의 부재를 꿈꿉니다.
즉, 고통 받지 않을 권리를 원합니다.
이게 저의 삶의 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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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했습니다 - dc App
인간의 축적된 기억과 경험은 그때그때 관점에 따라 기록된다. 천국이란 이상을 믿고 있다면 세상의 밝은 면으로 기록될 것이고 짐승처럼 본능에만 의존 한다면 지옥으로 기록될 것. 믿음이란 관점을 고정시키는 장치와 같응 것. 후생에도 그 에너지가 그 넘어간다면 넌 어떤 선택을 하겠나 - dc App
후생은 없습니다. 죽으면 끝입니다. 현세의 간섭은 불가능하며, 존재할 수 없습니다. - dc App
낙원추방 에니메이션.
나는 사탕 받을 권리가 있고, 그래서, 엄마한테 사탕 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사탕을 안 주니, 삐져가지고 투정 하는 "어린애"를 보는거 같습니다
이건 잘못 짚으셨습니다. 사탕을 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무력감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 dc App
사상가님이 저번에 말을 좀. 이해가 되도록 좀 사람답게 말하라셔서 야앙이 오늘은 좀 설명조로 따져보겠습니다. 따지라하면 너무너무 따질 게 많죠. 근데 한 부분만 우선 짚자면 ... ...
본문의 "이것 자체만으로도 삶을 부정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라는 대목이 제일 크게 걸리죠. 사상가님 주관 속에서만 충분한 거죠. 남들한텐 전혀 안 충분하잖아요. 사상가님이 구축한 개인 세계관 속에서 성립할 뿐이죠. 각종 전제들을 입맛따라 취하고 해석 방향을 선택적으로 여닫음으로, 원하는 결론에 치닫고 있잖아요. 그게 그저, "내게는 이렇다"라고 말할 뿐인 것이라면, 남들도 "님 안에선, 그럴 수도 있겠죠"라고 인정하겠지만요, 누군가가 사상가님 보고, '근데, 관점이 좁다'라고 지적했을 때, 사상가님이 자기 생각이 자명하다는 듯 반발한다면, 그건 시야가 닿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 그렇다 보여요.
사상가님이 쓰는 글들은, 형식만 논증이지 실질적으론 감정적 선언에 가깝게 읽히는데, 예컨대, 전제로 취하는 명제들이 "고통이 필연이라면 존재는 정당화될 수 없다" 따위와 같은 계열이니, "고통/고뇌는 삶을 부정합니다."와 같은 결론으로 수렴하고 있잖아요? 바로 그런 게 인간 조건에서의 개인 선택이잖아요. 글에서 자꾸 권리, 충분, 목적, 요청, 긍정됨/부정됨 따위의 규범 언어를 세우는 근거는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 다 님이 취한 조건에서 왔을 뿐.
사람들이 '왜 바닥 관점이 그러하냐'며 조건 층위를 지적하면, 사상가님은 논리적으로 문제 없다는 듯 종종 방어하잖아요? 근데, 볼 때마다 의문이 들어요. /내용으로 깊게 들어가면 길어지니, 님의 출발선만 짚어보자면,/ 정당화의 필요성을 찾는 자체부터가, 사상가님의 감정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논리 맞나요? 고통 속 감정적 요구를 철학 명제로 포장한 건 아닌지. 무언가의 정당화를 요구하는 근거는 애초에 뭐죠? 결국 사상가님의 주관에서 출발하지 않았나요?
관점이 좁다는 지적들에 대해, "내가 뿌리를 그렇게 고정했기에, 그런 결론이 됐습니다" 라고 수긍하는 게 아니라, 개인 세계관을 끌어와 자기 해석을 단정하며 정당화시키잖아요? 왜 그렇게 자기 세계관에 확신을 갖는 건지. 제가 볼 땐, 오늘 쓴 글들보다, 배경에 구축해 놓은 그 세계관들이 훨씬 의문투성이인지라 훨씬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영역으로 보이지만요. 그런 대화는 다음에 있을 수도 있고... 일단, 오늘의 글만 보자면,
글에 나열된 것들도, 하나하나 다 따져들어갈 수 있는 지점들이죠. 실질적으로 따져야 할 큰 주제를 너무나 많이 열어놔요.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로. 지성에 목적이 필요하다고 가정하고, 목적의 존재에서 신의 필연으로 뛰어 가고... 신은 고통이 없고... 인간만 고통을 겪어선 안 되고... 이 모든 게 취사선택된 당위/전제들 아닌가요? 연결고리를 대체 다 어떻게 걸어놨죠? 그 중 최초의 것은 어디서 어떻게 건져올렸나요? "존재는 그저 존재할 뿐"이라는 방향은 처음부터 닫혀 있죠. 그건 왜죠?
님의 오늘 사상을 대강 정리해서, "삶을 긍정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가?" -> "없다" -> 그러므로, "존재는 부조리하다" (ㄱ) -> 그래서 "나는 부재를 꿈꾼다." (ㄴ) 라고 한다면, (ㄱ) 에서 (ㄴ)로 점프하기 위해 온갖 자의적 세계관을 끌어오고 있잖아요.
나는 사상가님의 관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요. (존중해요. 삶에 대한 님의 감정과 태도를.) 내 눈에 그 사유는, 사상가님 본인 믿음처럼 자명하지가 않고, 혼돈덩어리로 보인다 말하는 거예요. 사상가님이 쓰는 글은 각 문장마다 얼마든 다른 해석으로 뻗쳐나갈 수가 있는데, 정해놓은 결론의 한 방향만 남기고 다른 가지는 다 쳐버리는 듯해요. 매번. 수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들을 다 쏟아부어놓고선, 자기 글에 구멍이 없다는 듯. 정말 그런 결론밖에는 허용할 수 없는지? 혹시 지금, 스스로 투명하지 못한 세계관으로 자기-미궁을 만들고, 그 정합성이 탄탄하다 믿으며, 자기 사유 정당화 루프에 갇히게 되는 건 아닌지. 야앙이 따지는 건 이것.
비판은 뭐.. 평소에 짚고 싶던 게 한참 더 남았지만, 끊고, 사상가님의 반론을 들어 보고 더 하는 게 생산적일 듯 하고. 전체적인 감상을 말해보자면요. "부조리"를 직면하며 고뇌를 품는, 사상가님의 그 깊이는 존중하지만, 그걸 철학적 언어로 풀어 놓는 방식은 영 구멍투성이라는 감상이 들어요. 쉽게 말해서, 다르게 생각할 방식이 많은데도, 가능성을 다 닫아놓고서 "나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는 기분. 감정의 요청에 따라 세계 해석을 자의적으로 고정해둔 사람으로 보여요. 논리는 원하는 길 하나를 이어맞추는 데 쓰였을 뿐.
주어도 찾아가며 설명조로 쓰려니 힘들어요 ㅅㅍ 아무튼 그렇습니다. 무례한 피드백이지만, 저의 솔직한 감상입니다. 야앙의 오판이 있다면 짚어줘보시오.
@야앙 음 감상평 감사합니다. 근데 별 생각 없이 적은 것에 비해 많은 관심 감사합니다. - dc App
@야앙 약간의 문맥의 차용이 있어 처음 보는 분 한테는 연결고리가 잘 안보일 수 있으나, 저는 처음부터 ‘저’에 시선을 두고 글을 썼습니다. 저에게 있어 고통이란, 이러한 맥락에거 풀이되어, 이렇게 내 삶을 형용한다. 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논리적처럼 보이게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가 제 글을 읽고 저를 설득하기 위해서 입니다. - dc App
@야앙 그리고 ‘나’는 타인과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내 세상속 생각과 명제 등 제가 생각하는 세계의 정의는 이렇다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저는 되도록 호소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dc App
@사상가(58.29) 결론적으로는 삶을 시작할 권리는 사치고, 적어도 고통받지 않을 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삶은 부정당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dc App
혼자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건 당연히 님의 자유죠. 근데 혼자서 "논리를 이용해, 세계를 협소한 관점으로 닫고, 감정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일 수 있죠. 그럼에도 다 괜찮나요?
@야앙 보편적이지 못해 진리에 가깝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저를 납득사키가애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 dc App
어디까지 괜찮은 거죠? 사상가님이 쓰는 글들을 보니 궁금하네요
삶에 태도에 관하여.... 전제를 자의적으로 배치해 가능한 결론을 한 길로 수렴시키고, 그럼으로 관점이 좁은 것.. 그런 비관이야, 사상가님의 개인 태도 선택 문제니까. 그게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타인이 맞다/틀렸다 판결할 거리가 아니지만요.
그와 달리 사상가님의 우주론/세계관은, 개인의 선택이 낳는 특수성 차원을 떠나, 모두에게 공유되는 보편 구조를 유추하여 이론화한 거잖아요? 그것을 세계의 보편적 법칙으로 두고, 사상가님에게 외부 보증을 제공해주는 규범으로도 활용하고 있죠. 근데, 그 체계가 실재 구조와는 호환되지 않는 전제들을 취하고, 또 내부 모순으로 망가져 있다면요? 그런 것은 외부자 입장에서도 정합성의 위배와 파열을 말할 수 있죠. 틀린 수학 이론을 믿는 경우와도 유사한데, 그런 것도 괜찮나요? 성립되지 않는 엉터리 체계라 해도, 스스로 납득감만 얻으면 괜찮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