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드에서 호주 거주 유저가 쓴 글을 보았다. "한국인으로서 창피하니 작업복 차림으로 식당에 출입하는 것을 삼가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많은 이가 동의하지 않았고, 작성자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선은 지극히 차별적이다. '작업복 차림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편향된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에게는 당연한 상식이었을 그 전제가, 사실은 대단히 왜곡된 차별의 시선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이 노골적인 차별의 언어를 다음과 같이 살짝 비틀어보면 어떨까?


"TPO 준수를 위해 작업복 차림의 식당 출입은 지양하자."

아마 이 문장은 앞선 사례보다 훨씬 많은 찬성 여론을 얻을 것이다. 차별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복장 규정 준수라는 명분이 입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 말에는 차별적 시선이 없을까? 본질적으로 앞선 주장과 다른 의견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 역시 '작업복이 공공의 이익(식당의 분위기나 미관 등)을 저해한다'는 편견을 내포하고 있다.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뿐, 본질은 같다. 누드 출입 금지처럼 사회적 합의가 끝난 복장 규정과 달리, 작업복 금지는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을 '사회적 합의'인 양 교묘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핵심은 해당 복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별적인가에 있다. '창피함'이나 'TPO' 같은 말들은 본질을 가리기 위한 수식어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가 그 수식어에 현혹되어 문제의 본질을 놓치곤 한다.


과거 학교의 두발 규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교사들은 항상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만약 "나는 네가 남과 다른 꼴을 못 보겠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결코 호응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답다'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포장함으로써, 다양성 억압을 마치 교육적 공익을 위한 행동처럼 둔갑시켰다.


'학생답게'라는 말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듯, 'TPO'나 '에티켓'을 빌미로 한 요구들도 대개 말장난에 가깝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공익을 빙자한 이러한 말장난이 유효하게 작동하는 듯하다. 완곡어법으로 정상성을 가장하여 개인을 억압하는 수동적 공격성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