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없다'에 대한 철학적인 반박 및 고찰.

[가만히 보면, 인간이 믿고 있는 기준들은 서로 맞지 않는다.]

->당연하다. 우리 모두가 동일한 개체에서 나온 클론처럼 하나의 생물체와 같이 정밀하게 행동하고 사고하지 않는 이상 서로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같은 자궁에서 나온 쌍둥이도 그런데, 남은 더하면 더했지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

[사람들은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그런데 감정이 부족한 사람은 이상하다고 한다. 공감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다고 한다. 감정을 버리라고 하면서, 동시에 감정을 요구한다. 결국 이성이라는 말은 감정을 제거하라는 것이 아니라, 허용된 범위 안에서 통제하라는 뜻에 가깝다.]

 ->자 여기에서 

1.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살아라.

2. 감정이 부족한 사람은 이상하다.

3. 공감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다.

이건 별개로 봐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서로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주먹부터 나가는 사람에게 1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2번처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건 사실상 “니가 전부 맞으니 앞으로도 누구든지 꼬우면 주먹으로 패고 다녀라. 화이팅"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까.

3번을 보면,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현대사회 전반적으로 깔린 기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맨 앞에서 내가 말했지.
 <<당연하다. 우리 모두가 동일한 개체에서 나온 클론처럼 하나의 생물체와 같이 정밀하게 행동하고 사고하지 않는 이상 서로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같은 자궁에서 나온 쌍둥이도 그런데, 남은 더하면 더했지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공감하는 정도는 누구나 다르다.

누군가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길가에 꺾인 화초를 봐도 안타까워하며 펑펑 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화초가 있는데 어쩌라는 걸까?”라고 말하며 밟고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감을 위해서는 그것이 나에게 의미를 가져야 한다.

나에게 의미가 없는 것은 애초에 내가 공감할 수가 없는 대상이다.

내가 예전 어디엔가에서 말했던 것 같은데,
허무주의에 대한 철학적 토론에서 말이지.

 [의미라는 것은 하나의 개인적인 꼬리표에 가깝다.]라고.

의미는 그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거다.

남에게 이건 의미가 있다고 강요할 수도 없는 거고 말이다.

마치 집에서 내가 기르는 ‘나비’라는 소중한 집냥이가,
남에게는 흔하디 흔한 노란색 코리안 롱노우즈 캣인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번외로, 고양이 주인이 
“우리 나비는 소중한데 왜 우리 소중한 나비한테 그래욧!” 이라고 화를 낼 수는 있다. 

주목할 것은,
이 고양이는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까 니가 뭔데 감히 내 고양이를 함부로 대하냐? 라는 게 되는 거다.

집 주인은 말 그대로 이런 맥락에서 화를 내는 거다.

다만, 여기서 전후 사정이 달라진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1. 고양이를 몰래 학대하는 것을 발견한 주인이 하는 말일 경우.

이 경우에는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왜 함부로 하냐는 것에 가깝다.
이 경우 3번의 주장을 보면 고양이 학대범 s씨는 사회 통념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확실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다.

2. 고양이가 와서 다짜고짜 물고 간걸 뿌리친 방문객에게 고양이 주인이 하는 말일 경우.
이 경우에도 맥락은 비슷하나,
(왜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함부로 하냐 -)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나에게 소중하니까 얘가 너에게 해를 끼치던 말던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을 소중히 대해줘! 라는 호소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번의 주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사례 1의 경우 공감하지 못하니 문제가 있다라는 주장은 맞는 말이 된다.

하지만 사례 2의 경우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니 고양이가 방문객에게 무슨짓을 하던 도덕적으로,철학적으로도 용서해줘야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러니 앞에서 봤을 때의 사례처럼, 3번의 주장은 맞는 말도 되지만, 틀린 말도 된다.

그리고 그 판단기준은 전후맥락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의미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우리는 의미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것에 의미를 느끼는 순간을 보면, 그것은 이성적 선택이라기보다 먼저 일어나는 반응에 가깝다. 끌림, 거부감, 익숙함 같은 감정이 먼저 작동하고, 그 위에 의미가 붙는다. 의미를 만든다고 하지만, 그 출발점은 이미 주어진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나는 앞에서 의미를 꼬리표 같은 개인적인 도구라고 정의한 바 있다.

위 글에서는 감정이 작동하고 의미가 붙으므로 감정이라는 출발점 뒤에 의미가 따라오는, 말 그대로 의미를 수동적인 것으로 분류하였다.

다만, 위의 글 대로라면 우리는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야 한다.

말 그대로 감정 뒤에 의미가 따라온다 했으니까. 그렇지?

자. 감정이라 함은 우리가 희노애락이라 느끼는 것을 포함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 라는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그걸 그렇게 느끼게 된 동기가 뭔지’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Case 1. 내 개가 어제 죽었어. ->눈물이 나고 슬퍼짐.

Case 2. 불이 붙혀진 양초를 발견한 아기 -> 따뜻함을 느끼고 다가가 손을 뻗음 -> 뜨거움에 놀라서 울음을 터뜨림.

사례1번에서 우리는 개가 죽는 과정을 통해 죽음을 배웠으며 이로 인해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죽음 =이별, 슬픈 경험.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사례2번에서는 아이가 불의 뜨거움과 위험함, 불은 아프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경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것은 우리의 의미 형성에 작든 크든 분명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명심하자.

의미가 생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것을 정의할 만한 단서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오감이 되었든 뭐든 간에.

사자 우리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사진을 찍는 어린아이를 생각해보자.

아이는 아직까지는 사자가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위를 겪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사자가 위험한 것이라는 의미를 아직까지는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 그 아이를 동물원 우리 안으로 집어던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의미를 만드는 출발점은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 경험하고 배운 것들에 근거한 나름대로의 확신(추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음.


[그 주어진 것들은 대부분 사회 안에서 형성된다. 사람들은 사회에 맞추지 말고 자신답게 살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답다’고 느끼는 기준 자체가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다.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선택하고 싶다고 느끼는 방향까지도 이미 외부에서 형성된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 슬슬 힘들어지긴 하는데 이왕 시작한거 끝을 보도록 하자. 

맞는 말이다.
사회는 니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의 ‘배경’에 해당되는 거니까.
말 그대로 디폴트값이다.

니가 남미에서 살았다면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가고 갱단이 개판을 쳐도
“아. 주옥같은 우리나라는 원래 그랬지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거다.

그리고 살아온 환경은 사람 인생에 영향을 주는 큰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다음.


[그렇다면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까지가 사회이고, 어디부터가 나인가.]

[이 질문을 밀어붙이면 불편한 결론이 나온다. 내가 사회 속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가 그 영향들의 집합이라면, ‘사회에 휘둘리지 않는 나’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라는 구조를 통해 스스로를 계속 작동시키고 있는 것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너는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가 굴러가기 위한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라는 거지. 맞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면 조금 심란해지기는 한다만.

어떻게 보면 사회는 너라는 원석을 교육이라는 도구로 다듬고 전공이라는 것으로 특화시켜서 나이가 든 생물학적 부품들을 대체할 수단 중 하나로 보는게 맞다.

쓰다 버릴 부품 후보 중 하나라는 거지.

그리고 이는 현대사회의 암묵적인 합의라고 볼 수 있다.

국가는 너에게 집단의 소속으로서 안전을 보장한다.

대신 너는 국가를 위해 노역해야 한다.
이게 현대사회의 민낮이다.

진실에 다가간 것을 축하한다. (짝짝짝)

현대 교육 또한 이에 맞게 특화되어 있다.

이게 싫으면 뭐. 무인도에서 살거나 산속에서 살아야지.
다음.

 [여기서 시선을 더 바깥으로 밀어보면, 인간 자체도 특별한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처럼, 지구가 자전하는 것처럼, 자동차가 연료와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인간 역시 주어진 조건과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 생각과 감정, 선택까지도 결국은 물리적·생물학적 반응이라면, 인간의 삶은 하나의 사건 흐름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의미’라는 것이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건 조금 위험한 생각이다.

분명 너는 이 세계에서 유일무일한 존재이며, 일부는 세계의 법칙을 따르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존재이다.

네가 가진 생각이나 감정과 선택은 분명 현대사회에 기반한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삶을 하나의 사건 흐름,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반응으로 퉁칠 수는 없다.

너는 분명히 최후의 옵션(자발적 죽음)을 포함한 자기결정권과 독자적인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노딱먹을까봐 이야기는 자세히 안하겠는데,
너는 아직도 수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장려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건 마치 누른다고 협박만 하는 핵폭탄 버튼 같은 거니까.

누를 일도 없고. 

그리고 이 관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니 관점대로 모든 것이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아! 자궁 속은 따뜻하고 좋았는데 왜 내가 ㅈ같이 태어나서 사회를 위해 뺑이를 쳐야 할까? 그냥 죽어야겠다.” 라고 할거고

동물들은 “내가 조금 있으면 도축장에서 고통스럽게 갈 텐데, 왜 나를 살찌우기 위해 사료를 먹어야 합니까?” 라고 하면서 굶어 죽는 것을 택할 것이며,

식물들은 “내가 오랫동안 살아도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파괴할 텐데, 내가 이 세상에 왜 필요하죠?” 라고 할거다.

현대사회는 결국 효율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인간을 위한 사회임에는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종을 위해 다른 모두 종들을 착취하는 하나의 콜로니에 가깝다는 거다.

아무리 니가 디시에서 나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고 찡찡대고 살아도
숫놈으로 태어났다고 태어나자마자 선별되어 갈려나가는 수평아리와 그 외 기타 동물들보다는 나은 처지라는 걸 명심해라.
(물론 암놈은 공장형 케이지 속에서 평생 알만 낳다가 노계로 팔려나갈 것이다.) 다음.


[여기서 한 가지가 더 어긋난다. 내가 전부 외부에서 형성된 결과라면, 나는 단지 만들어진 구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구조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나’라고 느껴진다. 이 감각은 설명되지 않는다. 단순한 반응의 집합이라면, 그 안에 주체가 끼어들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 몸 안에서 나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구성물인데, 왜 나는 나인가.]

-> 너 조현병이라도 있니? 병원 한번 가봐라. 진지하게.

내가 외부에서 형성된 결과인건 맞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분열해 DNA라는 설계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걸작이 너니까.

그러니까 지금 너는 왜 내가 이유없이 이 몸 안에 갇혀 있어야 합니까? 그거잖아. 다음.

[이 지점에 이르면, 삶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게 된다. 무엇을 기준으로 긍정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부정할 것인가. 우리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감정과 경험조차 이미 주어진 조건 속에서 발생한 반응이라면, 그 판단 자체도 절대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 기준은 경험이며, 이는 개체마다 다릅니다.
말 자체는 맞는 말입니다. 다음.

[이 문제를 그대로 두면, 책임이라는 개념도 흔들린다. 인간이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따라 출력되는 과정이라면, 어떤 행동도 그 사람의 순수한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비난하고 처벌할 수 있는가.]

->이건 조금 다른 문제.

처벌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사회에 해가 되니까 처벌하는 거고
(살인마가 살인하고 다니면 생산성이 떨어지니 사회에 피해를 주겠지? 소아성애자가 애들을 ㄱㄱ하고 다니면 무서워서 애를 어떻게 낳고 키우겠니? 같은 맥락이다.)

 자. 그러면 여기에서 니가 당장 창문 밖으로 떨어진다고 치자고.

그러면 그건 너의 자유 의사일까?

아니면 세계를 조종하는 누군가의 음모일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이 논리대로 치면 달동네나 가난한 동네같은 지역에서 지낸 사람들은 평생 하류로 살아야지.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아.

자신의 의지로 탈출한 사람들이 몇인데, 그렇지?

그러니

[내가 어떠한 행동을 저질러도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의한 결과이니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게 무슨 소리니 철학게이야?”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정신병자의 헛소리다.

그 주장대로라면 니가 길가에서 누구에게 묻지마 칼빵을 당하건 지하철에서 누군가 밀어서 떨어지건 저 한마디로 ‘아 그렇구나. 환경 잘못이니 저 사람 잘못은 아니네?’ 하고 넘겨야 하는 거야.

 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나 하고 글을 쓰기는 하는 거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자신의 형질, 즉 DNA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거대한 하나의 usb와 같아서,
이 과정을 짐승들의 세계에서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무슨 짓이든지’ 한다.
다른 새의 둥지를 자기 것인척 한다던지,
남의 둥지에 탁란을 한다던지,
물고기의 경우 알에 자기 정자 뿌리고 튄다던지 그런 것들.
애초에 그걸 위해서 발달한 기관들이 크고 거추장스러워서 생존에 불리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그건 각설하고.
헛소리 계속 들어보자.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처벌을 유지한다. 이때 처벌은 정의라기보다 기능에 가깝다. 잘못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이후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입력으로 작동한다. 책임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설정된 조건일 수도 있다.]
 ->당연히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처벌이라 함은 사회가 가진 질서의 틀을 깨려는 변종인자들을 잡아 족치기 위한 하나의 도구입니다.

뚝배기를 한놈 깨나 두놈깨나, 백명을 깨나 사회측에서는 손실이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시민들에게 사회질서가 작동한다는 확신을 주고 공포로서 질서를 지키게 만드는 본보기가 되거든요.

맞는 말입니다. 다음.

[결국 인간은 일관된 기준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감정과 이성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분리된 것처럼 다뤄지고, 사회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 사회로부터 만들어지며, 의미를 만든다고 하지만 그 기반은 이미 주어진 반응에 가깝다. 그리고 그 모든 위에서, 설명되지 않는 ‘나’라는 감각이 남는다.]

 ->감정과 이성은 밀접한 관계이므로 분리하려면 분리해서 정의는 할 수 있으나 별도로 완전히 분리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앞에서 누누이 말했습니다.

1.인간은 인간을 위한 현대사회를 만들었습니다.
2.그 과정에서 인간 외 모든 종은 하나의 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3.현대사회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며, 인간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콜로니입니다.
4.그 과정에서 다른 종의 기본권이고 뭐고 조까라 합니다.

당연하죠. 동물을 위한 사회가 아니니까요.
(물론 일부 배불러서 동물의 기본권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하는 특정 부르주아 분탕종자가 있긴 하지만, 사회 입장에서는 거슬려도 크게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한 그냥 놔둡니다. 어차피 알아서 자정작용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여러 단체로 쪼개지는거 보느니 차라리 책잡히면 본보기삼아 한번에 조지면 되거든요.)

5.인간은 현대사회에서 부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하나의 룰에 가깝습니다.

 중세 봉건제도와 비슷하죠. 국가는 안전을 제공하고,
시민은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교육은 하나의 tool, 즉 도구입니다.
태어난 아기들을 예비용 스페어 파츠로 갈아끼기 위한 방법이죠.

6.당신은 당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나 분명히 자유의사를 가진 독자적인 존재입니다.

만들어진 존재이나 자기파괴에 대한 선택 또한 손에 가진 존재다 이겁니다.

7.국가는 당신이 현대사회에 해가 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당신을 그냥 놔둘 겁니다.

8.(중요)모든 결정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이를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고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고 자라온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헛소리 좀 늘어놓지 마십시오.

그런 소리 하느니 하다못해 야산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으면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의 일용할 양식이라도 될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제발.

9.선택은 당신이 했으니 책임도 당신이 지셔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다음.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자. 이제 정리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