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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태초에 생명체가 탄생하고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선과 악이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기준에 불과하다.


자연을 보라. 거기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없다.

사자가 영양을 사냥하는 것은 악이 아니며,

식물이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 역시 악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 기준을 만든 인간들 사이에서조차 선과 악의 정의는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국가가 다르면, 종교가 다르면, 문화와 살아온 환경이 다르면 기준은 달라진다.

심지어 같은 사회 안에서도 개개인의 철학에 따라 선과 악의 경계는 흔들린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을까?


답은 생존에 있다. 인간이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온 근본적인 이유는 생존과 번식,

즉 유전자 차원에서 더 번성하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해치는 것보다 돕고 협력하며 사는 것이 집단 전체의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규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법이 생겨났고, 선을 행하는 것이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이롭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이것이 기록되고 전승되면서,

선과 악은 단순한 관념을 넘어 인간 문화의 핵심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법과 도덕, 선과 악의 구분은 인류가 더 효율적으로 번영하기 위해 고안한 사회적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면 어떠한가?


어린아이들은 양보하지 않는다.

맛있는 사탕이 눈앞에 있다면 친구에게 나눠주기보다 내가 먼저 가지려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며,

인간의 뇌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명령 앞에서,

이타심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사탕을 나눠주게 된다.


왜일까?


나눠 먹지 않으면 혼나기 때문에,

나눠먹었을 때 부모가 더 큰 보상을 주기 때문에,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기 때문에.

이유는 다양하지만 본질은 같다.

아이는 본능적 욕구와 사회적 보상 체계 사이에서 계산을 하고,

후자가 더 이득임을 학습한다.


고등학생이 사무치게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훔치지 않는다.


왜일까?


그것을 훔쳤을 때 돌아오는 법적 처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사회에서 나를 배척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평판에 대한 인식이,

본능적 욕망을 억제하는 이성적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과 악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개념의 무게를 덜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이기에,

그것은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해왔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사회의 구조가 바뀌면서 인간의 가치관도 함께 이동했다.

한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악이 되었고,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것들이 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노예제는 정당했다가 악이 되었고,

여성의 참정권은 불온했다가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선과 악의 기준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선을 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시스템에 적응한 것이고,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한 것이며,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선과 악은 절대적 진리도, 우주의 법칙도, 신성한 계시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집단으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효율적인 시스템일 뿐이다.


이기적 본능을 가진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숭고한 영혼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장기적으로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선과 악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그것을 절대적 가치로 신성시할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합의한 도구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