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관계를 말하려면 관계를 맺는 대상들이 먼저 동일한 것으로 성립해야 한다. A와 B 사이의 거리를 말하려면 A는 A여야 하고 B는 B여야 한다. 변화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변했는지를 알려면 변하는 그 무엇이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즉 상대적인 서술이 가능하려면 그 밑바닥에는 절대적 동일성과 객관적 구조가 깔려 있어야 한다. 상대성은 절대성을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성이 있기에 가능한 파생적 기술 방식이다. 이 기본도 놓치고 “관계적이니까 상대적이다”라고 하면, 그건 어려운 단어를 써서 무지를 포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좌표계를 바꿀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이 상대적이라고 우겨대는 경우가 있다. 이름을 바꿔 붙일 수 있으면 실체도 같이 흔들리는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깊은 통찰이 아니라 그냥 언어와 현실을 구분 못 하는 수준의 헛소리다. 동서남북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해서 공간 자체가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북쪽이라는 명칭은 약속일 수 있어도, 공간의 구조와 물체들 사이의 실제 배치는 약속이 아니다. 지도를 거꾸로 돌린다고 산이 바다로 바뀌지 않고, 좌표축을 회전시킨다고 거리와 운동이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붙인 명칭은 바뀔 수 있어도, 그 명칭이 가리키는 대상의 질서와 관계는 바뀌지 않는다. 약속의 가변성을 실재의 가변성으로 착각하는 순간, 언어와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만 규정된다”는 말도 자주 오해된다. 관계가 있다는 것은 결코 절대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가 성립하려면 관계를 맺는 항들이 먼저 동일한 것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A와 B 사이의 거리를 말하려면 A는 A여야 하고 B는 B여야 하며,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실제로 측정 가능해야 한다. 변화가 가능하려면 무엇이 변하는지 동일성이 보존되어야 하고, 이동이 가능하려면 어디서 어디로 옮겨갔는지 객관적인 차이가 있어야 한다. 상대성은 반드시 절대적 구조 위에서만 성립하는 2차적 서술 방식이다.


빅뱅 이후 우주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은하의 실제 분포, 배경복사의 측정값, 중력장의 형태, 시공간의 곡률, 물질의 밀도 차이는 관찰자의 기분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중심이 없다는 것은 절대적 질서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질서가 인간이 원하는 방식의 단순한 ‘중심-주변’ 구조가 아니라는 뜻일 뿐이다.


상대성 이론은 모든 게 제멋대로라는 이론이 아니다. 오히려 관찰자가 달라져도 유지되는 불변 구조가 있다는 이론이다. 물리 법칙은 누구에게나 같고, 특정한 양들은 좌표를 바꿔도 보존된다. 핵심은 다 상대적이다가 아니라 표면적인 차이 아래 더 깊은 객관성이 있다는 데 있다. 이걸 거꾸로 읽는 건 문해력 문제에 가깝다.


논리와 수학은 더 노골적이다. 동일한 것은 동일하다. 모순은 참일 수 없다. 2 더하기 2는 4다. 이건 문화권 따라 바뀌는 취향 문제가 아니다. 누가 기분이 상했다고 해서 참이 거짓으로 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말을 하려면, 그 문장 자체는 절대적으로 참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는 순간 자기 말을 자기가 깨부수는 셈이다. 반대로 그 문장이 절대적으로 참이 아니라면, 그냥 상황 따라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아무 말이 되고 만다. 상대주의가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는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아서다. 끝까지 가면 늘 자기모순으로 붕괴한다.

도덕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시대와 문화마다 표현 양식이 다르다고 해서 선악이 순전히 취향이라고 믿는 건 그냥 헛소리다. 사기, 배신, 약탈, 학대, 무차별 폭력이 거의 모든 사회에서 비난받은 이유는 그게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객관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부 규범과 관습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양성 위에 깔린 구조는 그대로다. 인간은 고통을 느끼고, 파괴를 경험하며, 신뢰와 협력이 무너질 때 공동체가 붕괴한다. 이 정도로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그래도 다 상대적이지 라고 말한다면, 그건 모든 판단을 포기 하겠다는 자포자기에 가깝다.

상대주의는 한계는 매우 피상적이라는 점, 기준이 여러 개라는 사실과 진리가 없다는 결론을 멋대로 접합한 오류, 명칭의 가변성과 실재의 객관성을 구별하지 못한 오류, 관계적 서술과 절대적 구조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오류가 한데 엉켜 있을 뿐이다. 세계는 인간의 관점 때문에 출렁이는 젤리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보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있고, 아닌 것은 아니다. 좌표는 바뀌어도 구조는 남고, 해석은 갈려도 사실은 남는다.

세상은 차갑고 단단한 객관적 질서다. 인간은 그 위에 이름표를 붙이고 표기법을 바꾸고 관점을 옮겨 다닐 뿐이다. 진리는 관점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 실재는 해석에 굽실거리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다. 그걸 부정하는 순간, 결국 부정 자체를 떠받치는 발판까지 같이 걷어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