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붓다"는 무묘앙에오의 저서


"에오가 본 얼간이들" 2권에 나오는 글입니다.

 

<悟-깨달음>-아주 편한 유일한 생존상태, 또는 죽음 직전의 유일하고 정상적인 의식상태.또는 의식에 있어서의 유일한 현실. 단,정확하게는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갖가지 현실이 개시되기 이전의 실존>으로 정의된다.


<宇宙-우주>-<움직여,멈추지 마>라는 단순한 명령에 의해서만 활동하는 것으로,장하게도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 전체가 거의 무한히 착각하고 있는,보잘것없는 시시한 구체(球體)의 일종.


<禪-선>-<움직이지 마,멈춰>라는 단순한 명령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체계로 거기에 입문하는 생물이 그 궁극의 뜻이 무(無)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어마어마하게 크고 한없는 공간의 일종.그것은 우주 이전,또는 우주 이후를 시사한다.


<進化-진화>-자유와 같은 것으로 이 우주에서 한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사어(死語).일반적으로는 <합리화>나<변화>에 이 용어를 남용하는데,그것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世間敎-세간교>-정신세계나 종교에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 또는 종교를 경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그런 사람들도 결국은 <평균적인 행복교> <사랑과 평화의 컬트교> <상식교> <포지티브 사고교(思考敎)>등이라는,이 또한 대단히<훌륭하신 맹신적 종교>에 속해 있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특히 매스컴이라던가 각종 평론가나 코멘터,그리고 심리학자나 테라피스트 등에 무척 많다.바보들의 일종.(세간교는 세상의 상식,세속적인 정신세계를 의미함.)


<生存敎-생존교>-우주의 모든 만물이 속해있는 유일한 종파다.이 종파가 적대시하며 자기들이 적으로 겁내고 있는 게 <절대무(絶對無)>임.즉,<만물의 활동 정지와 그로 인한 우주의 소멸>이다.


따라서 그들은 전우주의 생명들에 대해 모든 구실(변명)이나 교의를 설교하고는,<영혼의 진화> 따위의 거짓말을 하고,그리고 그것을 미화시켜서 우리들의 생존에 목적의식을 들춰낸다.(무리하게 만들어간다.)


또,그와 동시에 인간이나 고차원 지성체에게 죄악감이나 자책감,공포심과 불안을 계속 주면서 생명체를 항상 <활동>이라는 이름의 <노동상태>로 두려고 한다.허구헌날 이런 일들만 책략으로 일삼는 <전우주적인,얄팍한 교단>의 가르침을 생존교라 한다.(<생존하는 일이야말로 진실이며 목적이다>라는 지성이 부족한 가르침을 비꼬아서 표현한 것임.)


*운 나쁘게 윤회라는 것이 시스템으로 현실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한 번뿐인 인생에서 성숙되지 못한 욕망은 몇천 번에 걸쳐 채우고자 하지만 그것은 결코 채워지지 않도록 되어 있다.


*당신이 살기 위해 또는 당신보다 상위의 존재가 살기 위해서는,거기에는 잡아먹힌다는 과정이 존재하고,또 잡아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과정이 있으며,또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을 깨닫기 위해 공복(空腹)이라는 고통이 발생된다.이처럼 생에는 어느 우주든 간에 고통 시스템이 존재한다.


무엇때문에 그런 고통 시스템이 있는가 하면,그것이 없으면 당신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움직이지 않으면 우주는 멸망한다.예를 들어 에너지 발생을 기쁨으로 삼는 생명체가 있는데 그들이 사랑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그들은 필시 고통을 느낀다.


이처럼 고통이란 노동을 위한 채찍이다.그리고 당근이다.이 <채찍과 당근>을 자동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 당신 속에 있는 <고통/쾌락> 회로이다.모든 것은 당신에게 고통으로부터의 회피,그리고 쾌락에의 욕구에 의해 계속 움직이는 부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우주는,당신을 무엇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것일까?계속 공복상태에 있으면 왜 안되는 것일까?공복상태라면 당신의 세포는 결합력을 상실하고 분해된다.그러면 곧 죽음이 다가온다.


우주라는 것은,생물이 죽어도 여전히 원소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또 그렇게 믿어지고 있다.또 그 원소가 빛으로 돌아간다 해도 여전히 빛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우주는 불멸이라고 우리들은 멋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원소건 빛이건 그것들은 아직 살아 움직이고 있다.그 근원적인 활동을 완전히 정지시키는 힘이 <전우주의 외측>에는 존재한다.그것은 <절대무(絶對無)>다.


우주의 차원 기록에 있는 한,이 우주 존재라는 피막이 터지고 외측에 있는 무(無)가 들어와,우주가 마치 풍선이 터지듯 한 순간에 사라진 일이 몇십 번 있었다고 한다.아마 그 횟수는 무한일 것이다.우주는 풍선처럼 존재하고,또 언젠가 폭발한다.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끝나는지 인간에게는 결코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시공 사이클의 무한소의 쓰레기와 마찬가지인 한 점(一點)에 당신은 존재한다.


*이른바 우주에서 여러 혹성의 생물 관리를 해온 관리자,발안자가 애당초 왜 유기체를 식물에서 동물로 개량했는지에 대해 직시한다면 그것이 안정되게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없다.만들지 않아도 좋을 문제를 보다 많이 만들어 고통을 느끼는 생물이 발안자의 목적이었던 것이다.즉,안정된 생존을 하는 생물이 아니라 불안정한 생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더 괴롭힐 것인가,육체도 사고도 감정도 보다 더 움직이고,나아가 잠들면 잠든 대로 아스트랄 여행을 그만두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즉,어느 차원에서도 벌레처럼 끊임없이 안정하지 못하고 활동하는 <부품>이 만들어질 것인가,하는 목적으로 인간과 이른바 지적 생물이라 명명된 것은 창조되고 개량된 것이었다.이것이 로버트 먼로가 <혼의 체외여행>이라는 저서에서 말한 바 제1작물에서 개량형 제4작물로 변화한 지구의,또는 지구와 유사한 혹성의 생물계획의 발단이었다.


*<우주의 목적>-존속 유지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살려는 의지를 발생하는 일 및 활동 정지의 회피를 영원히 계속하려 하는 일.


<우주 자체의 발생 원인>-완전히 불명.회답 불가능.


<예상되는 우주의 최종 형태>-무(無)


<우주의 존재 의미>-제로/없음.


*채워지지 않는 것,그것이 실은 우주가 의지하는 바의 책략이었다.채워지면 우주는 소멸하고 말기 때문이다.따라서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불만을 프로그램시키기 위해 결코 평균화되어 채워지지 않는 것이 원자의 활동이나 만물의 회전을 만들어냈다.채워지면 활동은 정지한다.


따라서 우주는 가까워지지만 일치될 수 없는 두 개의 극을 영원히 분리시켰다.그것이 음양이다.일치해도 다시 분리되고 이것이 다시 반복된다.중심이 있기 때문에 원주가 있는데 이 두개가 일치되면 모두 없어지고 만다.그래서 모든 이원성은 창조의 근원이다.


그것을 합체로의 갈등상태에 두면서도 합체할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함으로써,원소도 생물도 남녀도,혹성과 항성도,모든 것이 분리된 채 활동하며 회전하고 영원히 돌아간다.이것이 윤회이다.이것은 다시 태어나는 일이 아니다.그만둘 수 없는,<종식되지 않는 활동 자체>를 <윤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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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오의 다른 저서 "반역의 우주"


윤회의 개념이나 그 사실을 받아들였을 경우,세속적인 인간들은 대부분 <지금 좋은 일 해서 나중에 좋은 곳에 태어나야지>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 좋은 <곳>이라는 게 최근 10년 사이에 크게 확장되었다.


더 이상 지구상에만 한정되지 않게 된 것이다.콘텍티(외계인 접촉자)가 전하는 외계인 정보에 따른 영향이나 또는 채널러가 말하는 플레아데스나 오리온과 같은 <헛소리> 덕택이기도 하며,또는 로버트 먼로가 말하는 평행하는 다른 세계,어떤 종류의 <중간 천국> 같은 장소,또는 영혼의 학습 세계라는 의식 계층의 시스템 개념을 널리 선전한 탓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사후에 갈 곳은 무언가 무턱대고 희망을 갖게 하는 곳만이 나열되고 있다.<고차원> <천국 같은 곳> <또 다른 지적 혹성>과 같은 식이다.그런 세계에 <자 - 시시한 지구는 버리고 떠나자>며 우리들이 이동하고자 하는 범위도 최근 20년 사이에 크게 확장되었다.


예전에는 고작해야 지구의 다른 풍요로운 곳에 태어나고 싶다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극락이나 지옥 말고도 다른 혹성이나 다른 차원의 세계가 당신의 사후 <쇼핑 목록>에 첨가되었다.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유쾌함을 가져다준다.


지금 세계에서 샐러리맨이나 주부인 사람들은 아무리 지루하고 절망적이라도 <다음번 윤회에선 이렇게 되겠다>는 목적을 위해,여러 가지 <심리적인 저축>을 할 수도 있다.따라서 윤회 개념의 일반화를 토대로 에오이즘이 부상했다고는 하지만,실제로는 정신<세상>이라는 세계에서 윤회를 제멋대로 자기 잇속에 따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에오이즘은 전혀 다르다.당신은 사후에 갈 세계에 대해서 이렇게 멋대로 상상한다.더욱 고차원의 다른 세계나 다른 우주의 혹성,다른 차원의 세계나 천계 등,나아가 세속적인 것으로는, <지구에서 가장 좋은 집안에 태어나고 싶다,더 멋있는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더 유복하게 태어나고 싶다,더 정신적인 탐구를 할 수있는 지역에서 태어나고 싶다>라든가 <아트만의 자각이나 깨달음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로 가고 싶다> <이 다음에 태어나면 더 재미있는 생명체로 태어나고 싶다> 등등 온갖 기대와 상상이 어우러져 있다.이렇게 <죽은 다음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당신의 그 모든 희망을 철저하게 <때려부순> 것이 에오이즘의 우주론이다.


어느 차원의 세계에 가더라도 <똑같다>.모습은 바뀌어도 하는 일은 똑같다.우주의 다른 차원의 세계든 고차원의 세계든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무엇이 같은가?   <만물은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만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결코 우리들이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우리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즐기는 것이지,즐기기 위해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것은 우리들이나 다른 차원의 지적 생물,우주인,그리고 신들을 포함해서 만약 우리들이 즐기기 위해서 살고 있다면,생물에게는 <고통 회로> 같은 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들이나 차원의 존재들에게는 여러 가지 고(苦)가 있다.우리들한테는 심리적인 고나 병리적인 고도 있다.그것은 몇 만 년이 지나도 전혀 개선된 적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양심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들이 즐기기 위해서 또는 진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흔적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다.


진화하거나 즐기기 위해서라면 더욱 효율적으로 생물을 설계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병이 없다든가,1년에 한 번 먹으면 된다든가,수면 시간은 10분이면 충분하다든가,얼마든지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하지만 현 상황을 직시하면 <어떤 자>들은 도무지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 역시 즐기기 위해서 생존하고 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당신의 보잘것없는 <즐거움과 행복한 시간>이란,결국 당신이 살아갈 기력을 분발시키는 연료에 불과하며 당신의 ㅈ,ㅅ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마약이다.<평화란,다음 전쟁까지의 준비 기간>인 것처럼 <행복이란,다음 불행까지의 휴식 기간>에 불과하다.


당신은 즐겁게 살려고 하고,괴로워하며 죽으려 한다.당근과 채찍처럼 주어지는 생(生),사(死),쾌(快),불쾌(不快)의 자극에 의해서 당신은 세뇌되어 살아가고 있다.


당신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괴로운 것을 싫어하며,즐거움을 늘리려고 한다.놀랍게도 이것이 인간의 <정신 활동>이라 불리우는 것의 전부다.<괴로움을 줄이고,즐거움을 늘리고 싶다>는 유일한 충동.모든 정치,경제,종교는 오직 이 쾌락과 불쾌라는 2가지 신호만을 모든 활동의 발단으로 삼고 있다.


당신이 살고자 해서 고통을 줄이고,쾌락을 늘리려고 하는 그 충동은 결국 당신의 <생존 연료>다.왜,연료인가?당신 자신에게서 그 연료들을 빼보면 알 것이다.즉,당신이 지금까지 당연시하던 <당신의 즐거움을 전부 뺏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될까? 당신은 재미가 없어진다.살아갈 기력도 없어진다.그리고 당신은 죽고 싶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꼭 즐기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살아 있으니까 즐겨야지>라고 말하는 자는 빗자루로 쓸어버릴 만큼 많지만,중요한 것은 예술가든,과학자든,일반 서민이든,수행승이든,결국은 기본적인 쾌락과 고통에 격려를 받으면서 오로지 목숨을 부지하는 충동적 영혼에 불과하다.


육체는 본능적으로 생존 연료인 음식물을 끊임없이 원한다.당신의 고차원의 정신체 역시 살아 남으려고 한다.머리 또한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아 상태가 된다.그곳에서는 지적 차원에서의 고(苦)가 있기 때문이다.또 감각이라는 것도 그냥 두면 기아 상태가 된다.아무것도 보지 않고,듣지 않으면 이번에는 당신의 감각이 기아에 빠지기 때문이다.음식물,정보,감각,이 모두가 당신의 생존을 위한 연료다.


그러면,왜,당신은 그것들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 되는>것일까.사람들은 ,즐기기 위해서, 자신의 견해와 경험을 넓히고 심화시키기 위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읽지만,읽지 못했거나,배우지 않았거나,듣지 않았거나,보지 않았으면 당신은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당신 내면에서 무언가가 죽기 시작한다.당신의 무언가가 쇠퇴하고 기아라는 이름,쇠약이라는 이름의 고(苦)가 시작되는 것이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몸이 쇠약해지고,감각을 먹지 않으면 에텔체가 쇠약해지고,감정을 먹지 않으면 아스트랄체가 쇠약해지고,정보를 먹지 않으면 멘탈체가 쇠약해진다.


인간의 지적 활동이라 일컫는 것과 인간성이나 정보,사랑이나 감성 따위의 발달을 <당연한 것>이라며 우리들은 믿었지만 육체를 발달시키고,마음을 발달시키고,감성을 발달시키고,사랑을 발달시키고,지식을 발달시키고,풍요롭게 풍요롭게,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마음도 풍요롭게,그렇게 말하지만... 


도대체 무얼 위해서 우리들은 그런 짓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살아 남기 위해서>라는 단 한가지 목적을 위해서다.몇 억 년씩 질질 되풀이되는 그것이 생명 활동이다.그러면,그 생명 활동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우주 만물의 활동 자체가 단순한 연명 행위일 따름이다.


게다가 다른 세계에 태어나도 생명은 그것을 되풀이한다.물론 다른 세계에서의 생명 체험은 다를 것이고 거기에서 받는 쾌락도 인간 노릇을 하고 있을 때보다 클 것이다.하지만 거기에 <반드시 끝이 찾아온다>. 그러면 당신은 또 다른 쾌락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오락과 쾌락의 탐구>를 우주에서 살아가는 방침으로 삼는 정도는 누구한테나 간단한 일이지만,시작하면 <끊지 못하는> 중독성을 갖고 있다.그만두려고 하면 엄청난 반동이 당신을 찾아온다.이는 미식가의 말로와 상당히 비슷하다.


미식가는 <더 맛있는 것,더 자극적인 것>을 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엄청나게 먹어치운다.그러다 허기지면 <더 맛있는 것>을 찾아 나선다.


거기에는 끝이 없다.마음 고생이 늘어간다.그런 일에 지쳐 잠깐 쉴라 치면,엄청난 반동이 찾아온다.


당신은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당신은 생명 활동 자체에 이미 중독된 것이다.


고차원의 신체라 하더라도 생명 활동 자체는 먹는 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감각,지식,경험 등을 섭취하지 못했을 때,당신에게는 <정신체의 기아>가 찾아온다.당신 또한 그만 살 수도 없고,쉬지도 못하기 때문에,정신체에 공급할 음식으로서의 정보나 오락이나 쾌락을 계속해서 필요로 한다.당신은 늘 그것을 <조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스스로 체험하고 윤회의 고(苦)로 인식해서,당신의 다음번 윤회에 그야말로 즐겁고 풍요로운 보수가 예약되어 있다 해도 거기서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찾아볼 수 없으며 <윤회를 단순한 헛수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것이 사인선 문하의 핵심적인 조건이다.


우리들은 인생의 발전이나 영혼의 숙성이 아닌,단순히 똑같은 중독의 울타리를 빙빙 돌고 있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생명 활동이라는 똑같은 유원지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태어날때마다 놀이 기구는 항상 바뀌어 있겠지만,그것에도 질려서 결국은 다음 놀이 기구를 찾아 나선다.우리는 <생명 활동이라는 이름의 놀이 동산 순례자>라고 불리울 만한 유원지족(遊園地族)이 되어간다.


점차 우리들은 질려버린다.그러나 막상 그만두고 싶어도 자기 의지로는 그만둘 수가 없다.생명 활동이라는 유원지가 없으면 우리들은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따라서 사인선 문하에서의 고(苦)란,죽는 것에 대한 고(苦)도 아니며,지옥행 공포에서 오는 고도 아니다.우리들의 고란,<똑같은 곳으로 되돌아와,똑같은 짓을 되풀이한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다.결국은 빙글빙글 똑같은 생명 활동이라는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에게 <김 새는 것>,그것이야말로 불교의 고다.


당신이 어떤 고차원의 세계에 태어나,무언가를 즐거움으로 삼았다 하더라도 당신은 본능적으로 <절대 무(無)로부터 도망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당신은 움직일 것을 강요당하고 모든 차원의 음식을 먹는 일에 중독된다.


드디어 그것을 그만두고 싶어도 중독으로 인해서 죽었다가는 태어나고,쉴 틈도 없이 또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고,당신은 끊임없이 생물로 존재할 것을 강요받는다.게다가 당신이라는 톱니바퀴는 우주에 의해서 점점 더 고가 늘어나도록 설계되고,더 움직여서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늘 <끊임없이 개량된다>.그렇게 <영원히 계속해서 살아가는> 당신의 영혼을 상상해보라.


당신이 죽어도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죽고 싶어도 영원히 죽을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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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 우주"

<프롤로그 2>


나는 긍정적 사고를 절대로 믿지 않는다.나는 당신의 지성에 부정적인 사고를 철저하게 각인시킬 생각이다.왜냐하면 부정적 사고가 극에 이른 순간,그 이후에 모든 사고는 두 번 다시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단 하나의 일만이 일어난다.그것은 절대 정적(靜寂)의 폭발과 대환희...즉...사마디다.


그러나 만약 이 점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자가 있다면 시험삼아 그자에게 묻겠다.이른바 긍정적 사고를 여기저기 외쳐대는 작금의 탐구자들과 불교 신자에게 묻건대 보리수 아래에 앉은 석가의 3일 밤에 걸친 깨달음의 과정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첫째밤-석가는 수많은 우주의 성(成)주(住)괴(壞)공(空)의 과정을 남김없이 떠올리고 거기에 절망했다.


둘째밤-석가는 살아 있는 생물이 생사순환을 무한하게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 절망했다.


셋째밤-석가는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가 고(苦)임을 철저하게 실감하고 거기에 절망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의미성을 실감한 것에 따른 절망이 너무나도 확실했기 때문에 석가는 그것이 무엇이건, 그 어떤 고차원의 것이건 일체 예외없이 그것들에 집착하는 무의미함을 철저하게 증명한 것이다.게다가 석가는 당초 그것을 인간에게 말하는 걸 상당히 주저했다.


자,너희들에게 묻건대,석가 자신의 이러한 체험 과정과 논리의 어디에 도대체 긍정성이니,희망이니,영혼의 진화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할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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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에 수반되는 공포>

 

육체의 죽음은 충격이지만,실제로 죽게 되면 인간은 거의 두려울 게 없다.


하지만 고차원의 신체적 죽음은 그 공포가 육체적 죽음의 100배는 된다.왜냐하면 육체의 죽음에 대한 집착이 형성된 것은(평균 잡아 80년에 죽는다 치고) 80년 정도지만 영혼에 대한 집착이 형성된 것은 몇 십만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그것에 대한 자기 보존욕과 집착은 지독하게 고집스럽다.


따라서 절대 무(無)에 조우했을 경우,그 붕괴에 대한 공포 또한 육체적 죽음과는 <수준이 달라>진다.

 

당신이 뒤쫓아 체험하기란 어렵지만 그래도 알고 싶다면 이렇게 하라.


바로 지금,그 자리에서 죽으면 당신의 영혼 자체가 두 번 다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완전하게 사라지는>것을 한번 상상해보라.


당신은 아마 지금 시점에서는 이대로 <깨닫지 못해도 할 수 없지,또 다음 생이 있는데>라며 적당하게 넘어가겠지만, 만일 그<다음은 절대로 없다>라면 과연 당신의 영혼과 의식과 존재가 마음 깊이서 <깨닫지 못해도 좋다>고 말할지 어떨지 자문해 보라.이러한 철학과 극단적 논리,또는 무(無)의 실제 체험을 위해서는 당신이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지(知)를 비약시키는 힘>이 필요하다.그것을 궐기 시키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앞서 기술한 것처럼 당신의 영혼 자체가 소멸해서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즉,두 번 다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철저하게 이미지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 확인과 자문을 반복한다.


2.푸르고 하얀 빛의 구체(球體)가 어둠에 떠 있다고 상상한다.그 내부가 <전존재>다.


당신은 아무리 깨달음을 얻은들 몇 년 간 여생을 편안히 살고 또 다음 차원에 태어난다.바보 같은 말로 사람을 현혹하고 타인의 내부에 갈등이라는 불행과 루슈를 만들어내고 또다시 죽는다.또 태어나서 이번에는 평범하게 생활하지만 만년에는 너무 따분하고 평범한게 싫어서 출가승이 되었고,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또 깨달아 사람을 현혹하고...이하 수억 년...무한히 반복한다.


이것은 전부 존재(存在)라는 구체(球體) 내부의 일이다.그리고 우주는 아무 상처 없이 존속한다.그것을 당신은 밖에서 이미지로 바라보고,그 속에 지금 자신이 있음을 깊이 생각하면서,다시 밖에서 또 그 존재의 구체 전체를 이미지한다.


그 구체의 바깥 측은 <무한의 어둠>이다.결국은 존재라는 점이 있고 그 주변에는 무(無)가 있고 그저 그뿐이다.


구체의 내부에는 온갖 활동이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구체 내부의 일일 뿐이다.당신은 영원히 그 속에 있다.그리고 빠져 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빠져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어둠과 <계약>하는 것이다.하지만 거기에는 당신의 절대적인 결단력이 필요하다.거짓은 용서되지 않기 때문이다.또 어둠과 계약해서 바로 사라진다면 좋겠지만 그렇게는안된다.정말 소멸을 원하는지 어떤지에 관한 검사가 개입된다(실제로 그 차원 세계에는 해탈을 재판하는 법정까지 있다.-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은 꼭 믿지 않아도 좋지만).


그 검사중에 하나가 <무한고(無限苦)>다.절대 무의 어둠에 따른 <영혼의 소멸>을 당신은 육체 그대로 체험한다.그곳에서 당신은 죽음과 해탈을,얼마나 어리숙하게 보고 있었는지를 처절하게 느낄 것이다.아마 많은 사람들은,한편에선 싫으면서도 그래도 사라지는 것보다 아직은 낫고 조금 더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의 구체 내부로 도망쳐올 것이다.그 구체의 존재 내부에 있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람만이 어둠과 계약할 수 있다.그리고 이 또한 무의미하게 소멸한다.

 

<소멸할 때의 감정>

또 한가지,해탈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재차 강조한다.


해탈에 있어서 두 번 다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 <단 한 사람>뿐이다.즉,당신의 이웃과 친구,이 세상 사람들은 여기에 남는 쪽을 선택한다.당신은 절대<고독 속에서> 오직 홀로 사라지는 것이다.


당신은 단순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즐겁게 윤회를 반복하는 당신의 가족과 친구와 무수하게 남는 사람들,존재물들에 대해 영원히 마지막으로 <안녕>을 고한다.


최후의 소멸에는 존재물과의 <이별하는 슬픔>이 수반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그 절대적인 고독감,그 처절함은,그야말로 감정이 갈가리 찢기고 날아가버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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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주는그 어떤 의미나 우주 정신이 외부에서 우주를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니다.우리들이 부여하는 우주의 의미나 종교적인 구실도 단순히 존재 우주의 <존속에 기여하는 연료> 조각 하나에 불과하다.하지만 사실은 절대 무의미의 <어둠이야말로 유(有)를 둘러싸고 있으며>,의미와 가치의 유효성은 존재 <내부>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니 이 문제와 다음의 1~6의 문제를 몇 번이고 생각해보기 바란다.유(有)라는 문제가 있고 무한의 무(無)가 그 배경에 있다.<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이는 존재의 근본 문제다.


1.당신이 적당하게 대오를 얻었다 한들 윤회는 계속된다.그리고 무의미한 존재도 계속된다.그래도 좋다면 그리하라(그것이 나쁘다는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2.그곳에서 빠져 나가는 방법은 어둠과의 계약이지만 당신이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 한 그것은 일어나지 않는다(단,진정으로 마음에서 바란다면 그것은 간단하게 얻어진다).


3.진심으로 해탈을 바란다면 존재 전부를 <완전하게 끝내기> 위한 논리적 배경 또는 경험적 배경이 반드시 필요하다.이는 즉,<필요성>과 관련된다.


4.소멸에 대한 의지를 검사하는 한 가지 항목으로서 영혼의 분해에 이르는 고(苦)의 세례가 있다.


5.또 한가지 검사 항목은 존재 전부와의 영원한 이별이라는,생명이 경험할수 있는 한도에서 최대 크기의 고독감(외로움) 세례가 있다.


6.이렇게까지 하면서 해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당신에게 있는가?


*나에게는 있었다.나의 소멸에 대한 바람은 모순없는 순도였다.단,분해되는 것에 대해 세포가 가진 본능적인 저항과 영혼의 거대한 두려움이 있었고,강력한 고립에 대한 고독감도 있었지만 <차라리 존재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해탈 문제는 이제 그만두고,당신이 광명으로만 노선을 정했다고 치자.그러면 그걸로 아무 문제가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엄청난 해탈의 길에서 대오,광명이라는 부드러운  노선으로 바꾸었다고 해서 도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며, 어려움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해탈에서는 존재 우주자체에 대한 근거로 부정론이 필요하지만 대오,광명으로 나아가는 경우에는 어떨까?


이번에는 <자아의 완전 부정>과 <소위 인간님>이기를 그만둘 결단이 필요하다.즉,변용에 있어서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일은 결코 없다.


해탈할 때는 전 존재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것이 그 대가의 지불이지만,광명은 지독한 아픔을 수반하면서도 사라져야 할 것이 나타난다.


둘 다 당신이 무언가를 크게 잃게 된다는 사실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해탈에서 광명으로 바꾼들 결국 <고제>의 필요성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즉,당신에게 고(苦)가 없다면 변용은 불가능하다.


해탈은 존재 자체를 고로서 인식한데서 태어난 것이라면,광명은 자기 자아의 한계에 대한 철저한 혐오,자기 마음의 추태에 대한 혐오 또는 자기 마인드가 방해되는 것을 통감한 고가 필요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에게 <이것조차 없다>면,당신은 길을 걸어갈 자격 자체가 전혀 없는 것이다.왜냐하면 자아(自我)도 당신에게 고가 아니며,사고(思考)도 고가 아니면,당신은 지금 이대로 대충 만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심 <이제 이대로는 자아로 살든 사고로 살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괴롭다...날 버리고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라야 어떤 문이든 도(道)의 문을 두들기기 때문이다.


행법에 대한 <호기심> 정도로는 단언컨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고를 실감할 필요도 없이 대오할수 있다고 가정하면,이미 무명암에서는 <착실하게 행법을 계속한 자>라면 1년 정도에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유전 주:무명암은 에오가 사람들을 가르치던 자신의 아파트를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행법이 당신을 이끌지는 않는다.그 이유는 간단하다.


철저한 두정유의는 언젠가는 당신의 자아의 죽음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때 결국 스스로 <자아를 버릴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행법을 시작하는 사람이 무명암에는 꽤 많았다.특히 두정 유의의 경우,만약 진짜 3분 정도 완전하게 유의를 유지할 수 있다면,당신의 자아는 거기에서 질식당할 것이다.


라즈니쉬가 말했다."만약 당신이 시계의 초침을 딱 1분 동안 노마인드로 정말로 그저 무심히,사고 없이 바라볼 수 있다면 당신은 광명을 얻었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니 그렇게 완전한 두정 유의 그대로 앉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보라.<대충하는 유의>가 아니라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두정 유의를 한 채 그대로 있으면 당신의 자아는 나올 순서를 잊어버리고 자아 자체의 존속조차 위험해진다.그때 당신의 자아는 그렇게 잠자코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자아를 버리고 싶은 생각이 <절실했던 수행자>라면,그곳은 <비약의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자아가 계속 재발하는 것>으로만 끝난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유의(留意)도 철저하지 않고,행법도 게을러지기 시작하며 타인과 말을 해도 부주의한 채 아무일도 일어나는 일 없이 2년이고 3년이고 쓸데없이 허비하는 것이다.


나는,실습자가 진지하게 수행해도 대오자(大悟者)가 나오지 않는 원인은,<변용을 원하는 발심(發心)의 진지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행법이 당신을 이끄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만약 당신을 진실로 이끌어 주는 것이 있다면,그것은 나와 행법이 아니라 당신의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당신에게 심리적인 고를 가져오는 상황 그 자체일 것이다.고가 없으면 당신이 자신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필요성이 없다면 행법은 기능하지 않는다.


만약 그 어떤 변용의 국면도 나타나지 않은 채,행법이 시작된 지 반년 정도 지나면 그 시점에서 당신은 그만 내려오는 편이 좋다.


고(苦)의 절실함,진지함,깨달음에 대한 갈망만은 어느 절에서든 중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질>이며 <입문 자격>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무명암에서 파문당한 최대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변용에의 갈망과 자기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苦)의 부족 때문이었다.


그것 없이 무엇을 한들 <어느 방편>에 입문한들 아무것도 안 일어난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해탈이라면 당신이 그 도를 바라진 않더라도,다른 한편의 대오,광명에서는 자아의 완전한 죽음만큼은 <천연덕스럽게 바라기만> 하지 말고 당신이<나서서 자기 자아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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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에오의 또 다른 저서 내용으로 보임)


어떤 존재 방법이 좋다 나쁘다고 시비하는 도덕은,그것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든 생물과 인간을 계속 움직이게 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또 우주가 결코 평화적인 곳이 아니라는 건 극히 당연한 상식이다.진화가 정체되면,일부러 전쟁을 기획하는 부분이 꼭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쟁을 나쁘게 말하는 곳은 지구같이 하급 두뇌를 가진 생물이 사는 별뿐이다.죽는 당사자가 피를 흘리고 가족이 흩어지고 아픔이 따르기 대문에 전쟁을 악이라고 정의하지만,우주에는 그런 고통없이 전쟁을 치르는 민족도 존재하며,어떤 경우에는 필요에 의해 살아 있는 것들을 대량으로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우주에서 살상과 전쟁은 필연적이어서 작황이 안 좋은 곡식을 처분하듯,은하계 자체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처분된다.이는 마치 인간의 산업과 아주 똑같다.피해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은 가해자(처리자)에게는 전혀 상관 없다.당신들 인간이 해충을 구제하려고 농약을 뿌릴때,피해자인 해충과 처리하는 입장인 당신들 간에 <서로의 입장과 감각이 전혀 다른 것>이 세상의 상식이듯 말이다.


상위의 차원자들은,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당신들 인간이 미생물을 죽이거나 또는 멋대로 조작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인간을 대한다.나아가 애초 인간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들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마치 당신들이 육안으론 미생물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처음부터 인간이라는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혼을 짓밟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사고(事故)일 뿐이다.생명의 존엄 운운하며 인간이 멋대로 지어낸 환상은 차원의 단위가 조금만 빗나가도 우주에서는 통용되지 못한다.여기서의 논리가 상위 차원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다.또한 상위 차원에서 당연시되는 원칙은 인간의 감정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우주에는 <인간이 무슨 고통을 받든 군소리 말라>는 원칙이 있다.인간이 고통을 느끼거나,병이 나는 불가피한 이유는,인간은 원래 그렇게 설계된 존재이기 때문이다.이는 적당한 고통과 쾌락이 주어지지 않으면,인간의 의식이 계속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이를 <당근과 채찍 방식>이라 부른다.


게다가 이는 인간뿐만이 아니며,그 기본 구조는 <음식(飮食)의 구조>다.우리들은 항상 먹지 않으면 죽게끔 만들어졌다.우리들은 매일 연료가 되는 물질을 입으로 집어넣어 아래로 배설한다.이것조차 우리로선 그만둘 수 없게끔 되어 있다.가령 신선처럼 이슬을 먹고 산다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신선 역시 이슬을 먹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점에서 우리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생명체는 무수히 많다.하지만 그런 그들 역시 파동이나 사고(思考)를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이것이 <폐허의 붓다>에서 언급한 <차원 간의 먹이 사슬>이다.그러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고차원의 생명체라 해도 결정핵과 같은 것을 갖고 있다.그 결정 축의 자장(磁場)은 에너지의 신진 대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붕괴된다.자장의 에너지 공급원은 빛과 파동,정보 등인데,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차원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계속 먹기 위한 움직임을 예외 없이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차원이라 해도 <음식의 필요성> 때문에 고(苦)가 발생된다.그 무엇도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고(苦)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


해탈이란 모든 세계의 존재로부터 <빠져 나온 것이다>.


그것은 우주로부터의 <퇴학>이다.


궁극의 해탈,니르바나,사마디라는 그럴듯한 명칭 때문에 당신들은 그것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지만,에오이즘에선 그 동안의 책을 통해서 분명히 말했다.윤회를 빠져 나가는 것은 <위법 행위>라고.


위법 행위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것으로는 안 된다.애당초 유기체는 해탈할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으며,정신체를 만드는 파동 소재 또한 애초부터 그 어디에도 해탈의 명령은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다.


또,석가는 최초로 해탈이란 아트만과는 다르다고 강조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아트만을 탐구하던 자들은 석가 이전에도 무수하게 있었다.석가가 말하는 해탈이란 진아 탐구의 문제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적어도 석가가 말하는 해탈이란 진아의 실현을 뜻하지 않았다.석가가 진아를 부정하는 것은 이른바 원시 불교의 <탁상공론자들>이 지식으로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세간에서 말하는 명상은,진아를 목표로 하니 자기를 찾니 어쩌니 하지만 석가는 처음부터 <그런 진아는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석가 이전의 종교는 절대 부동의 영원한 것을 인간의 내부에서 찾고자 했지만,석가는 한마디로 <그런 것은 없다>고 말했다.가령 그것이 있을 수 있다면,절대 무(無) = 비재(非在)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이것 = <비재성(非在性)의 영역>에 대해서는 인도의 라즈니쉬도 아주 드물게 말한 적이 있었다.그러나 제자들의 경지가 너무나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궁극적인 내용의 설법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드물게 그는 이 <비재성(非在性)>을 언급하곤 했다.



그는 말한다."제6신체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한,그것은 존재다.하지만 제6신체에서 제7신체로 들어가는 것은 궁극적인 죽음이다.거기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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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기본적인 3개의 층*


이 우주에서는 <생존의지의 추진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것>이 좌우명이었다.원래 사건의 시작은 존재 자체인 우주 의식이 그 의식적 존재를 소멸시키는 성질인 <비존재의 무(無)>에 고통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 우주는 3개의 세계로 분할되어 있다.


1.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무지한 채,끊임없이 생존하려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태반의 가축 생물과 곤충,작물(作物) 즉,인간과 또는 고차원의 존재들과 우주인들.


2.다음은 그 에너지 수확을 위해서 우주 그 자체의 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고,이 비인도적인 우주 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과 관리인들의 세계.


3.마지막으로 이 산업의 관리인과 경영자 전원을 협박하는 무(無)의 영역.


*금후 인류의 처분에 대한 우주 회의록*

[생물관리위원회] - 지구뿐만 아니라 많은 혹성의 인류를 창조한 팀이자 혹성을 개발이용하는 입장에 있으며,혹성관리위원회와는 반목하기 쉽다.이른바 <건축업자나 성장기업>에 해당한다.


[혹성관리위원회] - 혹성 자체의 환경 조건이나 궤도 및 인간 이외의 기본 생물 설계 등을 관리하는 팀이자 혹성의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서 생물관리위원회와는 반목하기 쉽다.이른바 혹성의 <지주>(地主)와 같다.


[심사위원회] - 중립적으로 의견을 조정하고 결단을 내리는 부문


[실태위원회] - 중립적인 자료 조사와 제공을 하는 팀


<현재상황>


-혹성관리위원회의 발언 - 지구상에서 현재의 우성인 두발 생물인 유인원(인간)이 현재 급속하게 혹성위의 자원을 소비하며 생태계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것에 대한 처분을 허가해 주기 바란다.자원 소비만 보면 유인원의 생존을 위해서 이용되는 정도의 소비량뿐이기 때문에 혹성 전체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는 혼란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

.....(중략)


-생물관리위원회의 발언 - 현재 두발 유인원은 환경과 공존하지 않을 수 없다.따라서 생태계에 대한 영향은 그들 자신의 사회 문제가 될 것이므로 현 시점에서 처분하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으로 본다.


-혹성관리위원회의 반론 - 거기에 관해서는 두발 유인원과 다른 생물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고 데이터에 나와 있다.생태계에 대한 비교적 무해한 산업 기술의 대부분은 이미 유인원의 지능 계급에 의해서 일부는 개발되어 있지만 경제적인 이해 관계가 중시되기 때문에 그 실현은 경제적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종료된 후가 되며,그 시점에서는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은 손쓸 수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실로 바보같은 일이지만 입에 들어가는 식료품이 자신의 눈앞에서 실제로 사라지지 않는 이상,두발 유인원은 확실한 파멸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중략)


<예측>


-생물위원회의 발언 - 그러나 원래 우리들은 두발 유인원의 개발에 관한 기획서를 제출하는데 있어서 그 생물이 장차 혹성의 생태계를 파괴하게 될 것임을 명기하고 있다.그 전제에서 심사위원회는 두발 유인원의 번식을 허가했기 때문에 우리들로서는 인가된 실험을 하는 중이다.


예를 들어,두발 유인원이 혹성에 이식된 시점에서부터 수 만 년이 경과된 후에는 비생활필수품을 무수히 생산할 것이라는 예측서도 사전에 제출되었다.원래 다른 생물들은 단순한 의식주 환경에서 <만족>하지만,우리들이 명령받은 생물 설계 계획은 <불만을 가진 불편한 생물>이었기 때문이다.불만이란 원래 의식의 본질에 대한 유치함이 만들어내는 것이며,불편이란 생물로서의 신체적 미숙함에서 비롯된다.


이 두가지 설계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두발 유인원의 피부 및 장기를 중력,냉열,충격,마찰,기압에 대해 극도로 약하게 설계했으며,신경은 불쾌한 신호를 만들도록 설계했다.또 손과 발의 운동 능력도 기존 제품과 비교했을 경우에 대단히 약한 소재와 기능을 갖도록 설계 변경한 것이다.

....(중략)

주지하듯, 이들 두발 유인원 속에는 결정적인 만족감이 얻어질 수 없도록 구조적으로 설계되어 있다.그리고 이들 설계는 우리들 생물관리위원회가 지시를 받아 정당한 허가를 얻어 실시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불안 산업의 지속적인 실행을 요청하는 바이다.


-심사위원회의 발언 - 처분을 결정해야 할 판단 자료를 보면,<우주적인 이익>이라는 점에서 두발 유인원이 공헌한 범위가 문제가 된다.그 점에 대해 발언할 것이 있는가?


-혹성관리위원회의 발언 - 이미 말했듯이,두발 유인원은 주위 환경에 자신의 신체를 전혀 환원시키지 않고 있다.또,비생활필수품의 생산과 그 파괴를 통해 생태계를 교란시키며 가속적으로 빨라지는 그들의 번식 때문에 혹성을 설계 정비한 우리들로서는 이 이상의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


-생물관리위원회의 발언 - 이미 말했듯이,우리들은 은하생물 개발 계획부의 허가 아래 두발 유인원을 설계했고 배양,번식시킨 것이며,또 그 공헌도는 규정의 일정 수준을 채우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다. ...(중략)  즉,우리들의 우주에 활기를 불어넣고 우리들 세계의 연료 및 원료로 쓰는 데 충분한 소재로 수집된 실적이 있다.이러한 소재가 수집되는 한,기타 혹성의 환경이나 생태계의 정비는 크게 손상되어도 좋다는 허가를,당초 계획 입안 시점에서 이미 본부로부터 얻은 바 있다.

 

<처분>


-심사위원회의 발신 - 그러면 쌍방에 있어서 이익이 되는 해결 수단을 제안해주기 바란다.


-생물관리위원회의 발신 - 우리들의 설계에 따르면 몇 십 년 이내에 현재의 두발 유인원은 자멸하도록 되어 있다.즉,식량의 고갈로 인해 서로간에 살육을 일으키고 서로 죽이도록 이미 계획되어 있다.문제는 식량 고갈의 방법인데 현재는 기후가 저온화되는 빙하기나,아니면 유인원 스스로 핵 오염을 유발하도록 하는 두 가지 방향을 검토중이다.후자에 대해선 혹성관리위원회가 반발할 것이므로 전자의 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예측된다.


-혹성관리위원회의 반론 - 두발 유인원의 식량 중단에 의해 예측할 수 있는 것은,최종적으로 핵무기 사용에 따른 생존 경쟁으로 귀착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따라서 식량 중단은 생존을 위한 살육과 그 결과로 인한 커다란 오염을 혹성에 초래하게 된다.


-생물관리위원회의 발신 - 이 혼란스러운 감정파(波)는 우리들이 회수를 명령받은 중요한 제품 중의 하나이기때문에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혹성관리위원회의 발신 - 그러면 <제2의 우수종>을 지구에 이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즉,두발 유인원보다도 20배 정도의 지능과 살육 기술을 가진 우수종을 이식하면,10년도 걸리지 않고 현재의 두발 유인원은 그 절반을 소거시킬 수 있다.


그것도 두발 유인원이 제2우수종의 <직접적인 음식재료> 또는 <가공 식품>이 될 수 있도록 생물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이상적이다.그러면 두발 유인원은 우주의 <정상적인 먹이 사슬>에도 공헌할 것이다.


-심사위원회의 발신 - 그에 관해 심사위원회로서는 <제2우수종의 이식>이라는 방향에서 적극 검토하도록 하겠다.이로 인해 혹성은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두발 유인원이 생명을 마감할 때 발생되는 감정 파동까지 채취할 수있기 대문이다.이 혹성에서 계획되었던 <의식체 배양 계획>은 그 후 어떻게 되어 있는가?


-실태위원회의 발신 - 원래 의식체 배양 계획은 생물관리위원회와의 이익 조정을 마치고 생물개발위원회로부터 실험 자료를 제공받기로 하고 발족시킨 계획이었습니다.


심리적인 갈등과 압박이 한계에 달하면,드물게도 두발 유인원 중 갑자기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억과 의식 주체의 동일시가 파괴되는 품종이 있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항상 생존 자체에 대한 의문,생명 자체에 대한 의문,지성과 감정,사고활동의 유지 자체에 대한 자기 의문으로 인해 자기 소멸의 벡터량이 가속되지 않는 이상,일어나지 않았습니다.그런 점에서 의식체 배양 계획은 현재 단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현재 두발 유인원의 대부분의 에너지는 생존을 위한 식량과 의류와 주거 확보에 80%,감정적 허기를 채우기 위한 오락이나 웃음에 10%,지적 허기를 채우기 위한 정보나 오락 수집,관찰에 10%가 소비되고 있으며,자기 소멸이라는 돌연변이종에 이르는 철학적 사고에 따른 통찰 또는 사고의 정지(즉,명상)를 위해선 전혀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육체 활동과 사고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에너지의 대부분이 사용되는 생존 환경 속에서,의식체를 배양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지구에서의 배양 실험은 단념하고,현재는 제4은하계 변경에 위치한 빛이 거의 도달하지 않는 새로운 지역에서 이 실험의 진행을 준비중입니다.


<* 심사위원회의 결론 *>

본 협의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① 지구의 두발 유인원에 관한 처분은 지구 시간으로 20xx년에 집행한다.


② 그 수단은 제2우수종의 이주시킴에 다른 자연스러운 먹이 사슬을 통한다.2개 종족간의 핵전쟁을 회피하기 위해서 제2우수종은 초기 단계에서 <동일 종류의 두발 생물>을 사용하지 않으며,두발 유인원에게는 감지할 수없는 <반(半)물질계의 생명체>와 <지적 미생물>을 동시에 사용한다.


③ 20xx년까지 생물관리위원회에 의한 두발 유인원의 파동 생산을 계속해서 집행하도록 허가한다.두발 유인원의 소멸후,혹성의 정비는 혹성관리위원회의 지시에 따르도록 한다.더불어 그 시점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두발 유인원의 경우,그들의 뇌 기능을 무해하게 개조시킨 뒤,농경문화 이전의 생존 형태로 만드는 것을 인정한다.


④ 의식체 배양 계획은 그 효과를 인정할 수 없다.실험 자체는 무해하다고 판정되나,당 심사위원회는 배양 실험에 대한 간섭 및 협력을 전면 중단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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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무묘앙에오는 멍청한 불교인이나 이곳에도 똑 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필자들이 있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위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위 글에서 오류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나름대로 경각심을 가져야 불교를 잘못 이해하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2008.08.2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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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2008.07.26 - 13:40):


무묘앙에오(無明庵回小)

일본에서 태어나 1994년 10월 22일 3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1992년 2월 17일 깨달음을 얻은 후에 선(禪), 타오(TAO), 원시불교를 소재로 하여 그의 깨달음의 경지를 선승과 명상가들에게 서신의 형태로 전달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종교에 입문하거나 절을 짓거나 제자도 들이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