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대체로 iq가 드러나는 순간 곤란해지는 자일 가능성이 큼.
철학판에서 유독 iq 얘기만 나오면 발작하는 자들이 있음. 정작 그런 자들이 하는 소리를 뜯어보면, 거의 대부분은 머리의 차이에서 생기는 결과를 다른 말로 돌려 말하는 것뿐임. 문해력, 이해력, 추상화, 논리력, 논증 파악 능력, 개념 구별 능력, 자기 직관을 의심하는 능력, 전제를 몇 겹으로 붙들고 사고하는 능력. 이것들을 따로따로 말하면서 iq만 빼면 뭔가 고상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같은 코끼리를 부위별로 나눠 부르는 것에 가까움.
IQ가 높은데 머리가 나쁜 것 같다는 말 자체가 애초에 이상함. 그건 대개 iq를 너무 협소하게 이해해서 생기는 착시임. iq를 무슨 수학 퍼즐 푸는 속도, 도형 돌리기, 계산기질 정도로만 생각하니까 그런 헛소리가 나오는 것. 실제로 고차원적 사고에서 중요한 건 관계를 빨리 잡는 힘, 불필요한 정보와 핵심 구조를 분리하는 힘, 한 번에 여러 조건을 머리에 올려두는 작업기억, 추상적 규칙을 다른 사례에 옮기는 힘인데, 이건 철학에서도 그대로 중요함. 철학이야말로 이런 일반지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임.
철학은 말빨 대회가 아님. 긴 문장 쓰는 대회도 아니고, 아는 철학자 이름 많이 던지는 대회도 아님. 철학은 결국 개념을 다루는 일이고, 개념을 다룬다는 건 서로 닮아 보이는 것들을 구분하고, 서로 다른 것들이 어떤 구조로 엮이는지 보는 일임. 이 능력은 그냥 성실함만으로 안 생김. 독서량만으로도 안 생김. 물론 성실함과 독서는 필요함. 그런데 재료를 많이 넣는다고 해서 기계의 성능이 올라가는 건 아님. 처리장치가 구리면 많이 읽을수록 오히려 더 헛소리를 체계적으로 쌓아올릴 수도 있음.
수능, 대학, 학벌 같은 지표를 과하게 신성시하는 자들이 있는데, 사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iq임. 수능 점수는 특정 시기에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 대학 간판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쟁을 통과했는지, 학벌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선별 장치 안에서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가까움.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 지표이자 간접 지표임. 반면 iq는 그런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보다 밑바닥의 처리능력, 즉 머리 자체의 성능에 더 가까움. 수능을 잘 봤다고 해서 반드시 머리가 아주 좋다고 볼 수는 없음. 오래 준비해서 패턴을 익히고, 시험 기술을 체화하고, 특정 유형에 최적화되면 상당 부분 점수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임. 대학 간판도 마찬가지임. 환경, 부모 지원, 사교육, 정보력, 성실성, 멘탈, 운 같은 변수가 다 섞여 들어감. 학벌 역시 개인의 지능 하나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과 장기적인 관리 능력까지 함께 섞인 결과물임. 그래서 수능, 대학, 학벌은 지능의 신호일 수는 있어도, 순수 지능 그 자체는 아님.
IQ는 사람의 기본적인 추론력, 패턴 인식 능력, 작업기억, 추상화 능력, 문제 구조 파악 능력을 직접적으로 더 가까이 건드리는 지표임. 다시 말해 수능, 대학, 학벌은 좋은 머리 위에 여러 조건이 덧씌워진 최종 산출물이고, iq는 그 산출물을 가능하게 하는 보다 원초적인 엔진에 가까움. 엔진이 좋으면 차종이 달라도 기본 성능 차이가 남. 반대로 엔진이 평범하면 외부에서 세팅을 잘해도 어느 순간 한계가 드러남. 중요한 것은 껍데기보다 동력임. 실제로 같은 대학 안에서도 차이는 남. 같은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끼리도 누군가는 금방 이해하고, 누군가는 외워서 버티고, 누군가는 새로운 문제에 강하고, 누군가는 익숙한 문제만 잘 품. 그 차이를 만드는 데서 더 근본적인 것은 학벌이 아니라 머리임. 학벌은 비슷한 사람들을 대충 같은 통 안에 묶어놓는 표지판일 뿐이고, 그 안에서 실제로 사고의 속도와 깊이를 갈라놓는 것은 결국 순수 지능임.
학벌주의자들은 간판을 실력처럼 떠받들고, 시험만능주의자들은 점수를 능력의 본체처럼 다루는데, 사실 둘 다 결과를 원인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음.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그 뒤에는 성실성도 있었고 환경도 있었고 운도 있었겠지만, 그 바닥에 깔린 근본 변수로서 지능이 있었을 가능성이 큼. 즉 수능, 대학, 학벌은 본질이 아니라 표면이고, iq는 그 표면 아래에 있는 보다 근본적인 힘에 해당함. 한마디로 말하면, 수능은 잘 볼 수도 망칠 수도 있는 시험이고, 대학은 들어갈 수도 못 들어갈 수도 있는 제도이며, 학벌은 사회가 붙여주는 간판임. 하지만 iq는 그 이전 단계에서 사람의 기본 처리능력을 가리키는 지표임. 그래서 무엇이 더 본질적이냐고 하면, 수능, 대학 , 학벌보다 iq가 더 근본적이라고 보는 것이 맞음.
그리고 공부는 상위권으로 갈수록 노력만으로 안 되는 구간이 분명 존재함. 똑같이 시간을 넣어도 누구는 구조를 이해하고 누구는 표면만 외움. 누구는 문제를 보고 원리를 잡고, 누구는 본 적 있는 유형을 찾음. 이 차이를 자꾸 후천적 노력만의 차이라고 우기면 현실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임.
IQ가 높은데 대학이 별로이거나 문해력이 낮은 사례를 들고 와서 '봐라 iq 별거 아니다' 하는 것도 흔한 오류임. 예외 사례를 일반원리처럼 취급하는 것. 세상에 키 큰데 운동 못하는 사람도 있고, 체력 좋은데 축구 못하는 사람도 있음. 그렇다고 키와 체력이 운동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진 않음. 마찬가지로 iq가 높은데도 이상한 길로 샌 사례가 있다는 것과, iq가 전반적인 지적 성취와 무관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임. 오히려 그런 사례는 대개 높은 처리능력을 다른 방향으로 소모했거나, 인성, 환경, 성실성, 정신상태, 사회성 같은 다른 변수에서 크게 삐끗한 경우가 많음. 본질적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근거가 안 됨.
그리고 문해력과 iq를 분리해서, 마치 문해력은 순전히 후천적 도구 사용이고 iq는 선천적 알맹이 없는 껍데기인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것도 틀림. 문해력의 상층부는 iq와 매우 밀접함. 단어 뜻 몇 개 아는 수준이 아니라, 긴 문단에서 핵심 논지를 추출하고, 암묵적 전제를 읽어내고, 비유와 논증을 구별하고, 문장 사이의 논리적 연결을 파악하는 능력은 그냥 기억력만의 문제가 아님. 그건 작업기억, 추론능력, 추상화 능력, 즉 일반지능이 깊게 개입하는 영역임. 글을 진짜로 “이해”하는 건, 문자를 보는 게 아니라 구조를 보는 것인데, 구조를 보는 힘이 바로 iq와 맞닿아 있음.
오히려 iq가 낮은데 책 많이 읽었다는 자들에게서 더 자주 나오는 것이 문자표기에 묶이는 현상임. 단어를 보고 뜻을 떠올리는 데서 끝나고, 문장과 문장의 관계는 못 봄. 그래서 특정 단어 하나에 꽂혀서 자기 감정을 투사하고, 문장의 구조적 의미를 놓침. 철학 글에서 이런 자들이 주로 하는 반응이 있음. 논증을 따라가지 않고 어휘의 분위기만 읽음. “이건 너무 오만하다”, “이건 인간을 기계로 본다”, “이건 현실을 모른다”, “이건 감정이 없다” 같은 말만 되풀이함. 논리적으로 어디가 틀렸는지를 짚는 게 아니라, 자기 느낌이 상했다는 것을 세련된 말로 포장함. 철학적 무능을 감수성으로 포장하는 것임.
진짜 iq가 높은 자는 기호를 기호로 안 봄. 구조를 봄. 왜 여기 이 정의가 들어가고, 왜 저 전제가 필요한지, 왜 이 추론은 되고 저 추론은 안 되는지 빠르게 파악함. 반대로 iq가 낮은 자가 바로 기호 외워서 짜맞추기 함. 왜냐하면 이해가 안 되니까 표면 패턴만 저장하는 것. 수학에서 유형 암기, 철학에서 어휘 암기, 인문학에서 분위기 암기. 말은 번듯한데 조금만 꼬아 물으면 바로 무너짐.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섞고, 설명과 정당화 섞고, 기술과 규범 섞고,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섞고, 자기모순을 낸 뒤에도 그걸 모름. 이게 바로 저지능형 학습의 전형임.
베이컨 식으로 “정신의 도구”를 말하자면, 그 도구를 누가 더 잘 쓰겠음. 당연히 iq 높은 자가 더 잘 씀. 글이라는 도구, 개념이라는 도구, 논리라는 도구, 수학이라는 도구, 과학이라는 도구. 도구는 있다고 다 쓰는 게 아님. 손에 망치 쥐여준다고 다 목수 되는 게 아니듯이, 책을 쥐여준다고 다 사고가 깊어지는 게 아님. 도구의 사용법을 빨리 파악하고, 새로운 도구를 다른 맥락에 전이하고,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데는 기본 지능이 크게 작용함. 정신의 도구를 잘 못 써서 발달이 안 됐다는 말은 맞을 수 있음. 그런데 왜 못 쓰는가를 끝까지 밀고 가면 결국 지능 차이를 만나게 됨. 도구 사용 능력 자체가 지능과 무관한 게 아님.
그런데 고지능자는 자연적 휴리스틱에서 더 잘 빠져나옴. 즉각적인 느낌에 속지 않고, 직관을 유예하고, ‘내가 지금 당연하게 느끼는 이 생각이 정말 타당한가’를 검토할 가능성이 높음. 반대로 저지능자는 감각적 인상, 익숙한 사례, 자기 경험 몇 개에 더 세게 붙잡힘. 철학에서 흔히 보이는 오류들이 다 여기서 나옴. 내 경험이 곧 보편인 줄 알고, 내가 상상 안 되는 건 불가능한 줄 알고, 내가 납득 안 되면 틀린 줄 앎. 이건 어떤 고결한 인간다움이 아니라, 그냥 인지적 한계임.
느낌이 확신을 준다는 것도 맞는 말인데, 바로 그래서 iq가 중요함. 머리가 좋은 자는 느낌이 왔을 때 그 느낌을 곧바로 진리로 승격시키지 않음. 느낌은 느낌으로 두고, 논증은 논증으로 봄. 반면 머리가 안 좋은 자는 강한 느낌이 오면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행동함. 그래서 글을 읽어도 자기 과거와 감정에 포섭되는 부분만 읽고, 나머지는 무시하거나 환상 취급함. 이건 철학적 통찰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정보처리임. 자기 감정의 반향실 안에서 메아리만 듣는 것. 철학하는 척하지만 실은 자기 심리를 순환재생하는 것임.
IQ가 낮은면 고차원적 교육 내용을 껍데기만 외워선 못 따라감. 처음엔 다들 용어를 외움.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는 용어 암기로 버티는 게 불가능해짐. 거기서부터는 구조를 봐야 하고, 구조를 보려면 머리가 받쳐줘야 함. 그래서 높은 수준의 수학, 물리학, 철학, 논리학, 법이론, 경제이론으로 갈수록 일반지능의 비중이 커짐. 이걸 자꾸 “문해력”이나 “습관”만의 문제로 바꾸는 건, 본질을 에둘러 말하는 것뿐임.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데도 문해력이 없는 경우를 두고, 이게 무슨 구술문화적 한계의 증거라고 하는 식의 말도 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언어를 진짜 깊게 다루는 능력 역시 지능과 밀접함. 언어를 몇 개 말하는 것과, 언어를 통해 구조적 사고를 하는 것은 다름. 그리고 후자에 가까워질수록 지능 차이가 더 도드라짐. 단순 회화나 암기식 시험에서는 티가 덜 날 수 있어도, 복잡한 문장을 정밀하게 해석하고, 암묵적 뉘앙스를 잡고, 서로 다른 개념망을 번역 가능한 형태로 대응시키는 단계로 가면 일반지능이 그대로 개입함. 결국 깊은 문해력은 iq와 떼기 어려움.
학문사의 주요 성취를 만든 자들 중 상당수가 높은 iq를 가졌음. 철학도 마찬가지임. 칸트, 라이프니츠, 비트겐슈타인, 러셀, 크립키, 파핏 같은 이름들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철학에서 정말 한 획을 그은 자들은 대체로 개념 처리 속도와 깊이, 추상화 수준, 논리적 일관성에서 보통 사람을 크게 웃돌았을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애초에 영재들이었음. 철학이 단지 삶의 태도나 성실함만으로 되는 영역이었다면, 왜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책을 읽어도 그 수준에 근처도 못 가겠음.
철학능력과 iq의 관계를 부정하는 자들은 대체로 철학을 너무 감상적으로 이해함. 철학을 깊이 있는 독후감이나 인생상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그래서 문학적 감수성, 삶의 경험, 정서적 진폭 같은 것을 과도하게 높이 평가함.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함. 인간문제를 다루는 데 도움 됨.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철학이 안 됨. 철학은 결국 개념의 정합성을 따지는 일이고, 논증의 미세한 균열을 보는 일이며, 어떤 입장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임. 여기에 필요한 핵심은 여전히 지능임.
오히려 iq가 낮을수록 문학과 감정 쪽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많음. 왜냐하면 거긴 모호함이 허용되고, 자기 느낌을 자기 방식대로 말해도 즉시 틀렸다고 판정되지 않기 때문임. 반대로 철학과 논리학은 자비가 없음. 잘못 말하면 왜 잘못인지 드러남.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철학은 iq가 아니라 태도” 같은 소리를 하며 기준을 낮추고 싶어함. 자기에게 불리한 잣대를 부정하고 싶은 것. 그러나 기준을 부정한다고 차이가 사라지는 건 아님.
진짜 고지능자는 그 능력을 바탕으로 더 높은 수준의 정신의 도구를 습득하고, 더 긴 논증을 견디고, 더 복잡한 개념망을 정리하고, 자기 직관을 스스로 해체할 수 있는 자임. 즉 iq는 출발점이자 연료임. 그것만으로 목적지에 도착하진 못하지만, 그 연료가 빈약하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애초에 못 감. 그래서 iq를 무시하는 담론은 대개 현실적이지 않음. 출발선의 차이를 애써 안 본 척하는 위선에 가까움.
철학 잘하는 자들 보면 공통점이 있음. 남들이 “비슷하지 않나?” 하고 넘기는 것들을 다르게 봄. 남들이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그냥 느낌상 맞는 듯” 하는 데서 멈출 때, 그 사람들은 왜 맞는지 왜 아닌지를 구조로 따짐. 반례를 금방 만듦. 정의를 조금 수정했을 때 어떤 결과가 터지는지 바로 계산함. 같은 문장을 읽어도 몇 층 더 깊게 읽음. 이것을 다 독서량이나 습관으로만 설명하는 건 무리임.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 처리능력이 달라서 가능한 부분이 분명 있음. 그게 바로 iq의 영역임.
결국 iq를 무시하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려도, 실제로는 철학을 너무 쉽고 민주적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말에 불과한 경우가 많음. 누구나 노력하면 비슷한 수준까지 간다고 말하면 듣기 좋음. 그러나 현실은 안 그럼. 누구나 책을 읽을 수는 있어도, 누구나 개념을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 건 아님. 누구나 논증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누구나 논증을 끝까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님. 철학능력은 분명히 재능의 영향을 받고, 그 재능의 핵심에는 iq가 있음.
IQ는 진짜 존나게 중요한 지표임. 철학적 능력, 특히 높은 수준의 철학적 능력을 논할 때 iq를 빼고 말하는 것은 거의 기만에 가까움. 지능 차이가 만드는 현실을 감추기 위해, 문해력이다 태도다 느낌이다 경험이다 하는 말로 빙빙 돌리는 것일 뿐임.
철학은 결국 머리로 하는 것임. 감정은 소재를 줄 수 있고, 경험은 예시를 줄 수 있고, 독서는 재료를 줄 수 있음. 그런데 그것들을 논증과 개념의 형식 안에서 진짜 사유로 바꾸는 것은 지능임. iq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대체로 철학의 난도를 모르는 자 혹은 그 난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의 자기위안에 더 가까움.
그런 사람들은 본인 IQ가 낮다고 생각해서 그런거야?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