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말할 수 있는 말은 많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빛을 힘이라 말한다 


어떤이는 사랑이 힘이라 말하기도 하고 

언어나 생각을 힘이라 정의하는 이도 있다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는 존재하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관여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한 영향력 그것은 행복으로 연결될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편적 이해로 힘을 말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폭력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일까 ? 

그것은 마음으로 부터 발생이 된다 


내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폭력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칼을 들고 있는 것이 폭력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에서

휘두를수 있음이 만들어진다면 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존재함이 폭력이 되지는 않지만 의도가 더하여지면 이것이 

폭력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명백하게 그 의도는 실제하기에 상대방은 그것을 눈치챌 수 있다 


폭력이 잘못된 것이라며 폭력으로 벌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어떨까 ? 

폭력을 제압하기 위해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존재함을 방법으로써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의 생각이 틀렸고 반드시 범죄자는 힘으로 찍어 누르고 제압해야 하며 

이것을 옹호해서도 안된다 말하며 감정이 연결되면 

이것은 다르게 말할 필요가 없는 폭력이 된다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네 자신이 그자와 같은 폭력배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묻어나와 불필요한 싸움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공격적이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상대는 이럴 것이라 쉽게 단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리에서 드는 생각이 아니라 이전에 생각하였던 것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기분이 나빴지만 넘길 수 있었던 것이 상황이 달라지면 


모든 화낼수 있는 조건이 연결되어 폭발을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생각이 곧 행동이라 여기기에 나쁜 생각의 존재함은 그일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보았다

반면에 기독교 에서는 생각 자체에 머무르는 것을 당장의 죄라 말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올 때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너에게 더 화를 내기 위한 결합의 조건을 

폭발을 하게 하기 위한 힘의 비축을 


순간의 화를 억누르기 위해 분란의 불씨를 참는 것은 미래에 크게 번질수 있는 화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참거나 넘어가는 것이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라도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음으로 부당하다 느끼는데 그저 참는 것이 해결방법이라면 이는 다른이에 대해서는 관용일지라도

자신에 대해서는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정도의 충돌과 약간의 문제를 키움으로써의 나타냄 정도는 필요한 일이고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언젠가는 꺼내야할 너의 생각이었다 


소규모의 분쟁에서 전쟁은 시작된다 하지만 분쟁조차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면 이는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불가의 이론에 수긍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펼쳐져야 한다 막을 수 없는 것이고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네 자신이 심각하게 망가지지는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과 

적정선을 넘지 않으려는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한다 


사장되어야 하고 그 입을 막아야 하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모두 꺼내들어서는 안되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여 폭력을 확장해서도 아니된다 


힘의 발산을 거스르지는 않으나 이것을 잘 이용하여 스스로의 억눌림도 끄집어 내고 필요이상의 

확산도 제어할 수 있게 변환할 수 있는 조절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지혜이다 


폭력은 필요하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하여야 한다

불필요한 상황에서의 내 기분에 따른 무한한 확신과는 달라야 하고 


나의 감정을 고집하기 위해 답을 낼 수 없는 깊은 늪속으로 상대도 같이 끌고 가서도 아니되며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과 나의 생각이 세상에 드러나고 뻗어나감으로 인하여

만들어지는 나아감의 결과도 대답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생각처럼 간단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없이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존재한다면 


이해와 감정의 경계가 되는 경계에서는 맴돌 수 있을 것이다 

분노함에도 목적은 존재해야 한다 


구도자는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 불필요한 감정마저 이용하여 나아감을 만들어 내고 

감정만 따르는 자는 글자 그대로 감정에 대한 낭비만 하며 이것을 의미없는 손해로써 끝을 정한다 


자기수행이 곧 지혜이다 

이것이 철학과 종교가 다른 이유이다 


생각으로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로움을 함께 연결하여 더 나음을 대답으로 내놓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