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 라는 소승불교, 데라와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경전은 모두 인도 남쪽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4차결집 때 대기근이 들어 스님들이 서로 인육을 먹고 오직 혼자 살아남은 자가 자기 아상만으로 아함경의 대부분의 중요 설법을 누락시켜 나온 경전임.
남방불교(스리랑카, 태국-데라와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소수 등)은 모두 위 니까야 경전만으로 수행하고 있음.
이 지역의 죄업이 끊이지 않는 이유임.
후진적 종교로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고 국민들 수준도 거의 바닥일 수밖에 없음.
불교에서 대승 이상, 기독교에서도 신약, 이슬람교의 지계(계율)바라밀 정도의 고등 종교만이 인간의 영적 의식을 상승시킬 수 있음.
http://www.worldsangha.org/bbs/board.php?bo_table=truth_01&wr_id=9
출처: 위 "세계승가회 아함의 진리" 운영자 글 링크 -4차결집 때 대기근 상황과 인육을 먹고 저술한 니까야 경전을 역사적 기록으로 확실하게 인정되고 있음.
그럼 왜 소승으로는 평생 수행해도 작은 깨달음 조차 얻을 수 없을까?
(금강경) 수보리야, 작은법(소승)을 즐기는 자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하여 이 경을 알아듣지도 못하며 받아 지니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므로 따라서 남에게 설명해 주지도 못하느니라.
(금강경) 그러므로 여래는 대승(보살승)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이 경을 설명하며, 최상승(마하살승, 마하살품 참조)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해 이 경을 설하는 것이니
위 금강경 법문처럼 소승 경계에서는 금강경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고 대승, 최상승 경계 정도가 되어야 이해할 수 있으며 소승으로는 그저 자기 낮은 업식으로만 이해함.
각각의 수준(근기) 경계는 해당자의 그 수준에 따라 달라서,
불교에서만의 상승 단계는 학승, (학승 다음부터는 체험의 단계) 성문승, 연각승, (여기까지 소승) 보살승(여기서부터 대승), 최상승(마하살승 마하살품 참조 -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구를 보내리오"경계의 점프 법문), 일불승(등각.법화경), 대반열반승(정각.40권 대반열반경. 소승열반경과 다름) 이렇게 분류할 수 있음. 각 상승 단계의 수준별로 품고 있는 세계관 자체가 다름.
위 경계를 하나씩 돌파할 때마다 세계관 자체가 달라지고 수준도 높아지는데 그렇게 점프하기 위해서는 이타심이 필요하고 윤회관을 철저히 인정해야 하는데
윤회관 자체도 소승에서는 자기들만의 업식으로 이해하는 이유가 윤회관 사유시 지옥, 아귀, 축생 등의 공포가 따라오기 때문임. 이걸 못넘기면 소승만 하면서 대승을 비방함.
성문승, 연각승(독각승) 부터가 실제 체험적 영역에 들지만 이 둘을 묶어서 2승이라고 하며,
"성문, 연각 이승으로는 이 경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대부분의 경전에서 수 없이 언급됨.
성문은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외부 채널링 체험을 할 수 있는데 대부분 마구니 메시지가 많고 그것을 분별할 능력이 소승 경계에서 없고 불보살의 가피력도 오지 않음
연각승은 벽지불, 독각승이라고도 하는데 일체의 모든 현상에 대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연 연기법에 눈을 뜨는 체험이 시작됨. 하지만 이것도 마구니 경계 연각만 깨닫게 됨.
(댓글)
유전: (증일아함경) 존자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무슨 이유로 여래께서는 자리를 펴되 북쪽으로 머리를 두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불법은 북천축(北天竺)에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북쪽을 향하도록 자리를 펴게 하였느니라." 01.03 04: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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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위와 같이 북천축은 인도 북쪽을 뜻하는데 인도 남쪽 섬나라에 있는 스리랑카에서 나온 니까야 경전으로는 불법이 이어지지 않음.
유전: <대반야경 600권 중 439권>
사리자야, 내가 열반에 든 뒤로 다섯째 5백 년(5 x 500년 = 2500년 내)에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경전이 동북쪽(인도에서 동북쪽 끝이 한국)에서 큰 불사(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팔만대장경을 2부씩 인쇄하여 배포함. 이때부터 한국불교의 중흥조라고 하는 경허선사가 성불을 이루고 깨달은 고승들이 쏟아져 나옴)를 이룩하리니 왜냐 하면 사리자야,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존중히 여기시는 법이 곧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심오한 경전이요,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심오한 경전은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함께 보호하시기 때문이니라. (말법시대가 끝나는 년도는, 석존 열반 후 2500년이라고 나오니까 1956년. 한국은 은둔하고 문물은 계속 서쪽 서쪽으로 이동하여 마침내 서양의 끝 문물 미국이 본격적으로 당도한 때) 01.03 04: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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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마하반야바라밀경>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능히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고 능히 선나바라밀에서 단나바라밀에 이르까지 구족하고, 내공에서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 구족하고, 4념처에서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와 부처님의 10력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구족하는 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심연: 위와 같이, 모든 방편과 지혜부터 깨달음까지도 부처님의 가피력이 없이는 안되죠. 그래서 염불 다라니는 필수적으로 해야합니다. 01.03 04:45:57
유전: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01.03 09:02:43
유전: 소승에 대한 비판은 위 본문 금강경 구절에도 정확히 나와 있고, 특히 법화경에서는 매우 신랄하게 비방에 가까울 정도로 하고 있음. 금강경, 법화경만이 아니고 각종 불경마다 2승(성문승, 연각승 경계인 소승)에 대한 비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옴. 이것은 소승 근기자들이 그 낮은 업식 때문에 대승과 불교의 정맥을 비방하는 일이 당연하게 이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렇게 강조되고 있는 정당한 비판인 것임. 지금 한국에도 남방불교가 들어와 정맥인 대승불교를 거의 잡아먹고 있어서 불가와 종단(조폭 등 잡승들이 종단을 좌지우지)이 또 국가가 어지러워진 상태임. 니까야는 인육을 먹고 홀로 자기만의 아상으로 지은 파본이기 때문에 불경이라고 할 수도 없음. 다시 말하지만 정당한 비판임. 잘못된 것을 방치하면 죄악임 01.04 0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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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회중에 있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5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났으니, 그 까닭은 이 무리들은 죄업이 무겁고 또 교만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은 체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은 체하는 까닭이었다. 이런 허물이 있으므로 여기에 있지 아니하고 물러갔으나, 세존께서는 잠자코 말리지 아니하셨다.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이 대중은 가지나 잎은 하나도 없고 순전히 열매만 남아 있다. 사리불아, 그와 같은 교만한 사람들은 물러가는 것이 오히려 마땅하니라.” 01.04 03:05:42
유전: 위 본문에서 - "불교에서만의 상승 단계는 학승, (학승 다음부터는 체험의 단계) 성문승, 연각승, (여기까지 소승) 보살승(여기서부터 대승),"
성문승, 연각승(독각승) 부터가 실제 체험적 영역에 들지만 이 둘을 묶어서 2승이라고 하며,
"성문, 연각 이승으로는 이 경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대부분의 경전에서 수 없이 언급됨.
위 2승 자체가 소승임. 01.13 10: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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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이기심만(자기만 아라한이 되면 윤회 안한다고 믿는 단계) 있는 소승의 단계를 벗어나, 이타심(혼자 아라한이 되어도 모든 인연자와의 악업이 계속되기 때문에 윤회가 끝나지 않음을 깨달은 상태)의 마음을 내고자 서원하는 보살도에서도 그 수준과 상승에 따른 52가지의 승급 단계가 있는데 이것을 "보살 52계위"라고 함. 아래는 네이버 AI답변.
"보살 52계위는 대승불교에서 보살이 수행하는 10신(十信)·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廻向)·10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 등 총 7단계 52가지 수행 단계를 의미합니다." 01.15 14:17:21
유전: 일불승 - 시공 불교사전
산스크리트어 eka-buddha-yāna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을 뜻함.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는 부처의 유일한 가르침. 01.15 15: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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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2026.01.22 06:04:14)
"팔리어(위키백과)" - 니까야는 팔리어로 기록됨
팔리어는 고유 문자가 없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문자로 기록되었다. 상좌부 불교 전파에 따라 싱할라어, 태국어, 라오어, 버마어, 크메르어 등으로 기록되었으며, 근대에는 서구에서 로마자로 표기하였다. 이중 가장 오래된 싱할라어 사본들을 우선시하며, 학술연구에는 로마자 표기를 많이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사어화된 언어이지만, 불교 승려들 사이에서 종교적으로 사용되며, 현대 문명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도 번역되고 있다.
팔리는 성전(聖典)이라는 의미로, 팔리어 불경 주석서(Aṭṭhakathā)에 팔리 삼장(Tipiṭaka) 즉 원전을 의미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한다. 삼장에는 팔리라는 말이 없으므로, 주석서가 쓰인 5~6세기경에 처음 쓰인 말로 추측한다.[1]
팔리가 언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18세기말에 쓰여진 쭐라방사(Culla-vaṃsa 또는 Cūḷa-vaṃsa, 小史)의 코테 왕국(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왕국) 빠락까마바후(Parakkamabāhu, 싱할라어: Parâkramabâhu) 4세(1410?~1467)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다. 태국 등지에 상좌부 불교가 전파된 12~13세기 경부터 언어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 것으로 추측한다. (유전: 팔리어 라는 문자의 실체 자체가 없음. 18세기 정도에나 쓰임) 01.22 06:04:14
유전: 니까야가 초기불전이네 원음불교네 이렇게 홍보하고 있는데 총체적인 사기극임. 01.22 0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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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3)
불교에서만의 상승 단계는 학승, (학승 다음부터는 체험의 단계) 성문승, 연각승, (여기까지 소승) 보살승(여기서부터 대승), 최상승(마하살승 마하살품 참조 -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구를 보내리오" 경계의 점프시작), 일불승(등각.법화경), 대반열반승(정각.40권 대반열반경. 소승열반경과 다름)
[심연] [오전 10:24] 보살과 보살마하살은 확실히 다르죠.
<대반열반경 中> 보살마하살은 지옥에 갈 업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서원을 세우고 지옥에 나느니라. 선남자여, 지나간 옛적 중생의 수명이 백세이던 때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중생들이 지옥의 업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 큰 서원을 세우고 지옥의 몸을 받았느니라. 보살이 그 때에 그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지옥의 과보를 받은 것이니라. 내가 그 때에 지옥에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 죄인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널리 분별하여 말하였더니, 여러 사람들이 경을 듣고는 악한 과보를 깨뜨려서 지옥이 비게 되었는데, 일천체들은 제외하였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이름하느니라. 01.23 10:00:08
[유전] [오전 10:50] (능엄경) 또 아난아, 색구경천[有頂色邊際]으로부터 그 사이에 또 두 갈래 길이 갈리느니라. 한 갈래는 만일 평등한 마음[捨心]으로 지혜를 밝혀서 지혜의 광명이 원만하게 통하여 곧바로 번뇌의 세간[塵界]을 벗어나서 아라한(阿羅漢)을 성취하고 보살 법[菩薩乘]에 들어갔다면,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마음 돌린 대아라한[迴心大阿羅漢]이라고 하며, 또 한 갈래는 만일 평등한 마음(捨心}에 있으면서 평등한 법도 싫어하여 벗어남[捨厭]을 성취하고 몸이 장애임을 깨달아서 장애를 소멸하여 공에 들어갔다면, (중략) 이와 같은 한 부류를 마음을 돌이키지 못한 둔한 아라한이라고 하며, 만일 무상(無想)의 모든 외도천(外道天)에서 공을 추궁하여 돌아오지 못하고 번뇌에 미혹[迷漏]되어 들은 법이 없으면, 곧바로 윤회에 들어가느니라.
[유전] [오전 10:50] 위 능엄경 처럼, 보살법에 들어간 아라한은 "마음을 돌린 대(마하)아라한" 이라 부른다고 나와 있는데 보살법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보살마하(큰,대大)살인 것이죠. 그러나 들은게 없는 둔한 아라한은 아라한이었어도 윤회에 빠진다고 설법된 것임.
(금강경) 수보리야, 작은법(소승)을 즐기는 자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하여 이 경을 알아듣지도 못하며 받아 지니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므로 따라서 남에게 설명해 주지도 못하느니라.
(금강경) 그러므로 여래는 대승(보살승)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이 경을 설명하며, 최상승(마하살승, 마하살품 참조)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해 이 경을 설하는 것이니
매트릭스 시스템의 작동을 보는 것이 바로 고승들이 말하는 "글자 없는 경전"을 본다고 하는 거죠. 이 시스템을 보는 것도 단계별로,
해당자의 그 수준에 따라 달라서,
불교에서만의 상승 단계는 학승, (학승 다음부터는 체험의 단계) 성문승, 연각승, (여기까지 소승) 보살승(여기서부터 대승), 최상승(마하살승 마하살품 참조 -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구를 보내리오" 경계의 점프시작), 일불승(등각.법화경), 대반열반승(정각.40권 대반열반경. 소승열반경과 다름)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한자로 하면 무상정등각 이라 하고 이것을 한글로 하면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 이라는 뜻이죠. 부처와 중생이 모두 평등하지만 각 수행 단계별로 모두 경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도 다른 거죠.
쥐꼬리만한 세계관에서 오류가 안나는 것하고 거대한 세계관 가령 모든 가능성 있는 것까지 다 포함시켜도 오류가 안나는 것은 천지차이죠. 그 포함이 진실이든 아니든, 쥐꼬리만한 세계관은 다른 세계관을 아예 상정 조차 할 수 없는 것이, 그렇게 되면 바로 자기 세계관에서 오류가 나고 붕괴되기 때문이죠.
소승 대승의 의미
<대법고경>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네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한 이것은 성문의 열반이요, 궁극의 열반이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만일 성문ㆍ연각의 열반에 든 것이요 궁극의 열반이 아니라면,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3승, 즉 성문승ㆍ연각승ㆍ대승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이미 열반에 드셨는데도 다시 열반에 든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가섭아, 성문은 성문의 열반으로써 열반에 드니 궁극적인 열반이 아니다. 벽지불은 벽지불의 열반으로 열반에 드니 또한 궁극적 열반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공덕을 얻은 지혜인 대승의 열반에 든 연후에야 궁극의 열반이며 다른 궁극의 열반이 없는 것이다.”
[유전] 성문승, 연각승(벽지불, 독각승)은 소승이고 보살승 부터를 대승이라고 함. 소승 경전이니 대승 경전이니 이런 말 자체가 원래 틀린 표현이죠.
성문승, 연각승을 소승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2승이라고 많은 경전에서 표현되고 있는데 이 2승이 바로 일반인들이 말하는 소승으로 석가모니 설법 수 없이 많은 경전에서 2승 즉 소승을 매우 비판하죠. 가르친 지가 이렇게나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2승에서 마구니 놀음이나 하고 있다는 뜻으로 설법합니다.
불교 토론에서 내가 ㅄ들 하고 대화를 안하는 것이 지들 조금 아는 것 가지고 불경 전체를 논하는 나에 대해 비난만 하기 때문이지. 그것도 대승을 위경이라고 하는 ㅄ들이 오직 소승 찌끄래기 몇 줄 읽고 AI에 대입을 하네 어떤 교수가 그렇다네 이런 ㅄ짓들을 한다니까. 다시 말하지만 불경 전체와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남방불교 니까야 경전은 아함경 계열의 소승경전인데 본문에서 보듯이 소승 경전인 아함경에서 이미 남방불교에는 법맥이 안간다고 설법해 놓았다. 법맥이 안가는 경전가지고 평생을 수행하면 뭐하냐 ㅄ들아. 부처님이 니들이 믿는 소승경전인 아함경에서 거짓말 했다는 거냐? 이 ㅄ들 경전에는 저렇게 중요한 대목들은 다 빼놓았으니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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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어(위키백과)" - 니까야는 팔리어로 기록됨 팔리가 언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18세기말에 쓰여진 쭐라방사(Culla-vaṃsa 또는 Cūḷa-vaṃsa, 小史)의 코테 왕국(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왕국) 빠락까마바후(Parakkamabāhu, 싱할라어: Parâkramabâhu) 4세(1410?~1467)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다. 태국 등지에 상좌부 불교가 전파된 12~13세기 경부터 언어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 것으로 추측한다. ㅄ들은 위 위키백과 내용도 안보이나봐. ㅎㅎ. 18세기에 급조되었다는 말 읽을 줄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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