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이야기 한다 

선은 악을 싫어하고 악은 선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가톨릭과 같은 종교적인 기준의 믿음으로 보아도 그렇고 

인간적인 감정으로도 선과 악은 양립할 수 없는 명확한 구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한다 


어두운 밤에 불을 키게 된다면 아주 멋진 장관이 펼쳐진다

어둠도 존재하는 가운데 빛이 그것을 덮어 섞이게 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야경이다 


존재함에 죄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그것이 죄라고 말한다

아니 죄였어야 한다 말한다


동의하는 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렇게 말을 하는 자가 많을수록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정설과 같이 느껴지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사람의 뇌를 들여다 볼 수 있어 공자라는 사람의 생각을 모두 펼쳐 놓게

된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이자는 이러한 기준을 두어 네가 멀리해야 할 자이고 이자는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가까이 해야 하며 


이자는 인재로써 부적합하고와 같은 특정한 색깔의 결정을 하는 판단기준이 있다 

세사람이 길을 걸으면 한사람은 너의 스승이라 말하였다 


하지만 기준을 달리하면 자신을 포함하여 네사람이 스승이 될 수 있고 

저 바위와 저 바람이 너의 스승이 될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리의 이해면에서 공자의 생각이 가장 뛰어나다 말할 수 있을까 ?

아니면 그 마음에 다소 편협적인 고정됨이 존재하는가 ? 


공자를 악이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를 무비판적인 완벽한 선이라

말할수도 없다 


다시 말해 선이라는 것은 진리의 영역에서 말할 수 있는 선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존재하는 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누군가의 선을 판단하는 것이 완벽한 존재함으로 정해지지 않은 이유이다 


저 살인자를 바라보는 그의 가족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 

푸틴의 가족은 그를 악마라고 말할 것인가 ?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라 말할 것이다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 논란이 많은 정치인이 선이 될 수 있을까 ? 그럴수 있다 내가 좋아하면 된다 

그래서 안중근 이순신이라는 말도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에 입각하여 그것이 선이라 묻는다면 이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의 대다수의 의견이나 동의가 반드시 진실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을 바라보는 그 기준은 한가지로 정해져 있지 않고 그 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공자에게 선이란 자신의 기준에서 좋아 보이는 모습의 한정됨이 있었고

사람이 판별하는 선에도 그 기준의 바라봄에 치우침이 존재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이에 대해 끊임없는 존경을 표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기준이 옳다 보더라도 말이다 


나의 기준에서 선이 아니고 다른 이의 기준에서 선이라면 이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

너의 의견이 더 합당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열이라면 백이라면 모든 상황 모든 순간에서

네가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한 선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 앎이 뛰어난 자이든 배우지 못한 자이든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태극에 있는 경계선은 본시 음과 양은 그 위치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에 그 선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실제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불변의 선이 존재한다 

저 야경과 같이 어둠사이에 섞여 있는 불빛과 불빛 사이에 섞여 있는 어둠이 곳곳에 상존해 있음에도 

말이다 


여기서는 이 기준이 되기도 하고 저기서는 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선과 악은 보여지는 너의 인식을 초월하는 존재함이 있지만 그 경계에 들지 못한 이에게는 

정해져 있는 불변의 선이 존재하고 


이것이 선한자로 이름을 날린이라면 사람들은 그 기준을 맞는 것으로 정하기도 한다 

이것은 석가나 예수마저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석가는 집착이 해가 된다 보았기에 그와 관련된 것을 멀리하고자 하는 불변의 선이 있었다 

하지만 집착에서 나아감을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 중생이다 세상의 발명과 창조 무수한 이로움은

집착과 연결이 되어 있다 


예수의 말은 어떤가 세상을 선과 악 오직 이분법으로만 바라보는 그의 이해에서는 현대 사회에 

다다를 수 없는 부족함이 있다 


지금에서는 관대하게 볼 수 있는 이혼과 다른 가정을 가진 자에 대한 사랑이 그 시절이라면 중죄에 해당이 되어 어떤이들은 사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이것이 정녕 하느님의 심판을 이야기 하며 누군가를 죽여야할 정의가 맞는 것인가 ? 


시대가 달라지면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너희가 아무리 훌륭하게 보았던 이라 하여도 마찬가지 이다 


성선설인가 성악설인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알고 있는 방향을 우선하여 행동한다는 것이다 

욕을 모르는 아기가 할 수 있는 것은 표현하는 불편함에 있다


하지만 욕의 개념을 알면 자신이 선택하여 그 말을 할 수 있다 


화가 나는 감정은 동일하였다 욕을 대신하여 짜증을 표출한 아기는 선이고 

짜증을 언어로 표출할 수 있게 된 아기는 악인가 ? 


아니면 네 기준에 편협함이 있어 성선설과 성악설 둘중 하나로만 정했어야 하는가 

편협함이 있다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기준이 있고 이것이 진리보다 우선이 되는 불변의 가이드 선이 있다 

다른 기준으로 바라볼 수 없도록 그렇게만 말을 할 수 있도록 


너의 선의 개념은 진리 그 자체에 속한 선이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것이 그저 맞기를

기도하는 바램과 같은 것이다 


그와 다르게 말할 수 있는 더 많은 세계가 있음에도 말이다 

네 앎의 인식에 따라 너의 이해를 넘는 세계는 존재한다 

그 앎을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네 이해의 영역에서 그 말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하늘에는 여러 이름이 붙는다 


욕계와 흑색계 이외에 


무색계 공색계 수색계가 있으며

그보다 높은 곳에 타계와 조작계 명도계


가 있다 그 위에는 우계가 있고 

더 높은 곳에 중진계가 있다 

이것이 도의 정점에 이른자의 220 번째 부처의 경지 


자모수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