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사람은 누구나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자기가 확실히 나쁜 짓을 했다고 해도, "그때는 내가 좀 나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삶을 살아가면서 금세 잊어먹는다. 이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사소한 잘못도 아무것도 못할 정도 죄책감을 느낀다면, 우리 사회라는건 유지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자기가 그럼에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환상>이 사람의 정신적, 도덕적 각성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이 이런 환상으로 자기 죄를 되돌아보지 않고 합리화하는 이유를 분석해보고 그 의의를 논할 것이다.
2-1. 이유 1. 유아 때 순수했다는 것이 착한 것이라는 착각
어린 시절 순수했던 때를 떠올려보자.
1.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의의를 긍정하고
2. 다른 사람도 순수한 사람이라 믿으면서
3. 다른 사람한테 애정을 주고 받으면서 행복을 느꼈다.
누구나 유아기 시절을 경험하고 그 때를 동경해본 적이 있다. 자기가 어렸을 때 순수했음을 근거로 "내가 그래도 어렸을 땐 그러지 않았지"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어릴 때와 성인기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도 그때는 아무 사람한테나 애정을 주면서 행복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 마음은 고귀한 게 맞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행동을 안 한다는 것과는 별개다. 사람은 원래 사람한테 애정을 주고 받을 때 행복하다. 자기한테 감사하고 웃어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어린 시절에는 행복의 충족 수단이 그것뿐이고, 그러한 수단이 다른 사람의 이득을 가로채는 것도 아니었다. 즉, 유아기가 아름다워보였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어른들이 내 욕구를 다 충족시켜줘서 내 이득을 추구하는 것과 상대한테 애착을 주는 것이 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기 욕망에도 불구하고 남을 해하지 않아야 진짜 착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아 시절에 순수했다고 절대 착한게 아니다. 자세히 생각해보자. 유아 시절에 이득을 포기하는커녕, 오히려 쉽게 유혹에 빠져 남한테 피해를 끼친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때를 동경하며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가 해온 것들을 토대로 자기가 평가받는 사회에서, 상처도 받고 열등감도 생기고 자기 이득과 남의 이득이 충돌하는 사회에 선 어른이 무슨 초자연적인 원인으로 잠깐 유아기적 순수함을 되찾는다고 해봤자, 그때 유아기적 순수함을 잃은 것처럼 지금이라고 해서 한순간에 잃어버릴 것이 뻔하다.
게다가 순수함은 집요한 악행의 원동력이 되기도한다. 순수한 사람이 극도의 상처를 받으면 순수함의 조건 중 1번만 기능한다. 자기의 한 때 순수함을 근거로 자신의 존재의 의의는 굳게 믿지만, 수치심은 극도로 피하고 싶은 마음에 누군가를 적대하고 우월감과 지배욕으로 얻은 성취를 토대로, 자기의 잃어버린 존엄성을 되찾았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허나 사람이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선업을 베푼 것도, 선량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다. 허나 이는 자기 행동을 자기합리화하는 핑계가 되고, 정녕 무서운건 악행의 기원이 자신의 아집에 깔려있어서 더더욱 죄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순수성은 양면적인 면이 있는 것이다.
2-2. 이유 2. 일상에서는 남을 배려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때 서로를 배려하고 같이 웃는 것과 같은 사회적 배려가 일상화되어있다. 말했듯, 사람은 누구나 서로를 아껴주며 같이 웃고 떠들고 챙겨주는데서 오는 애착감이 있다. 사회적으로 살아가면서 대화할 때 웃으면서 인사하고, 뒤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고 하는 등등의 모든 행동이 자기는 그래도 착하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사람이 정말 악해질 때는 싫어하는 사람한테 자기 죄를 의식하지 않고 함부로 대할 때나, 상대가 예상치못하게 의표를 찔러 자신을 당황시킬 때 잔혹성이 나오는 것이다. 전자의 예시로 우리는 가끔씩 경악할만한 학교폭력을 저지른 일찐이 자기 친구들한테는 정말 착했다는 것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한테 잘해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나는 내 사람한테 잘한다.", "저는 싫어하는 것은 정말로 싫어해요." 등등의 말을 하면서 자기가 진심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후자의 예시로는 다음이 있다. 누군가는 어떤 사교성이 부족한 친구한테 몇 번 잘해줘도 속으로 그 사람을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이 예상치못하게 의표를 찔러 나한테 '기어오르는' 것처럼 나올 때, 순간적으로 분노해서 그 사람을 '밟아 내려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사람은 그러한 잔혹성이 나온 자신의 행동을 한 순간에 '실수'라고 생각하겠지만, 피해자는 그 수치심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이 말은 정말 중요해서 계속 강조한다. 자기한테 이득이 되거나, 자기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한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은 전혀 착한게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득을 위해 남을 이용하면서도, 인스타에서 아기나 고양이가 귀엽다고 좋아요 눌러주는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서 말한 일찐이라고해서 아기나 고양이가 귀엽다는 생각이 없을까?
2-3. 이유 3. 자기 가족이나 자기를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는 것이 진지하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쉽게 면죄부를 주면서, 타인이 나의 이득을 가로채려하는 건 불같이 화내는 내로남불을 가지고 있다. 자기를 나쁘다고 생각하던가, 타인도 '자기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던가.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정말 악해질 때는, 자기만의 욕망을 위해 남을 희생시킬 때 그렇다.
3. 결론 및 의의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그 죄책감에 평생 시달리며 아무것도 안 할 순 없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고, 자신의 악행을 늬우치고 선한 행동을 하도록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저지른 악행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도덕을 강조하는 행위가 아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도덕적으로 살아야한다는 사회적 규범은 인지하고 있다. 진정으로 사람의 도덕적 각성을 막는 것은 악행 그 자체가 아니라,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
와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환상>이다. 그것을 통해 의식하려하지 않으면서 저지르는 죄들을 크게 반성할 때서야, 사람은 도덕적으로 살고자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 dc official App
마음 철학 ( philosophy of mind )쪽으로 파는 것 같은데. 괜찮은 글 같다. 너 말처럼 자기가 그럼에도 괜찮다는 환상이 자기 문제 해결이나 발전을 가로막고. 그런 환상이 유아기에 형성된 순수성의 양면 중 나쁜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해석은 동의가 된다. - dc App
@글쓴 철갤러(180.224) 여기가 좀 오픈 커뮤니티라서 여러 성향 사람들이 있는데. 너도 보면 보일거야 좀 .. 철학애 관심없고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분탕치려는 애들이 있는데 그런 애들은 그냥 무시하거나 신경쓰지 마라. 최근에 그런 애들 신경쓰다가 철학 멀쩡히 잘 하던 애 하나 나가는거 봤는데. 그런 부분은 주의를 하면 좋을것 같다. - dc App
예전부터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음. 그 너가 댓글 달아준 것 중에 남자 1~5편하고 "삶의 모든 것이 성취와 실패에 연결되어 있다"가 있는데 기억나는지 모르겠네 - dc App
@글쓴 철갤러(180.224) 아 그 남자편 기억난다. 옛날에 봤었는데. 통피라서 번호까진 기억을 못했네. 아마 내가 그 글을 보고 철갤에 정착하는 동기가 된것 같은데. 큰 맥락에서 보면 너가 내 스승일수도 있겠네. - dc App
@글쓴 철갤러(180.224) 아니 스승보다는 어떤 가치를 전도해준 사람에 가깝다고 봐야하려나. 그 남자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그 모습 부분에서 철학이란 것의 어떤 가치를 처음 느꼈던것 같다. - dc App
내 글을 그렇게 좋게 봐주니 고맙다. 난 글을 시간이 지나면 지우는데 너처럼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앞으로는 굳이 지워지 말아야겠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