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사회에서는 흔히 질투하지 않는 것, 남의 약점을 비방하는 것,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것을 윤리적·도덕적 덕목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현실적인 심리 작동 문제인 경우가 많다.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도덕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살고자하는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관계·애착의 종합적 산물이다.
그러나 사회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용서하지 못한다 -> 인격이 덜 됐다
질투한다, 약점을 공격한다 -> 도덕성이 부족하다
미워한다 -> 사람이 덜 됐다
하지만 이는 관계적 문제를 개인의 인격 문제로 전가하는 행위며,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사람한테 “왜 아직도 힘들어해/찌질하게 굴어?”라면서 “강해져라, 용서해라”가 같은 무의미한 도덕 규범을 씌우고, 이에 대한 반론을 미성숙함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보는 관점을 제안해본다
용서하지 못한다 -> 심리적 회복 조건이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질투한다, 약점을 공격한다 -> 피해의식, 열등감, 자격지심이 결합된 낮은 자존감이 수치심을 방어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행위
미워한다 -> 자존감 상처를 회복할 수 없는 신호
본고에서는 많은 윤리적 덕목이 의지가 아닌, 심리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임을 논증하고 그 의의를 밝힐 것이다.
2. 본론
2-1. 수치심을 피하기 위한 방어 반응이 낳는 죄
사람이 악을 저지르는 원인으로는 혐오, 가학적 지배욕(사람한테 수치심을 줘서 얻는 쾌감), 자기의 이득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 외에도 <수치심을 피하기 위한 방어 반응>이 있다. 하지만 <수치심을 피하기 위한 방어 반응>이란,
a. 피해의식, 자격지심, 열등감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b. 수치심이나 상처를 피하기 위해 자기합리화, 투사, 회피, 공격 등의 방어기제로
c. 방어적•비겁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예시로 이해해보자.
a. 끊임없이 남의 약점을 공격하고 집착한다. ->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피해의식, 자격지심, 열등감을 남을 깎아내려서 자기 가치를 올림으로써 해소하는 행위.
b. 통제 욕구 ->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피해의식, 자격지심, 열등감을 “내가 위에 있다”는 감각에 집착해 해소하는 행위
c. 질투
ex) 승진한 동기를 보며 “아부 잘해서 된 거겠지”란 마음을 먹는 것
남의 실패 소식 듣고 속으로 안도하는 것
->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피해의식, 자격지심, 열등감이 비교를 통해 더 악화되므로, 남의 성취를 ‘정당하지 않게’ 만들어서 내 자존감이 유지시키려는 행위
d. 투사
ex) 큰 인정 욕구를 가진 사람이 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을 '관종'이라 욕하는 것
투사는 왜 나타날까?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도덕 규범이나 기타 기준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이 떳떳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심할 경우 혐오하기도 한다. 이 때 내가 이런 성향을 보이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 그 순간에는 내가 특정 경향을 가진 사람을 평가하는 평가자가 된 듯한 환상이 든다. 내가 정신적으로 우월한 것마냥 타인을 공격할 때, 나는나의 혐오를 타인한테 전가함과 동시에 마치 내가 그러한 성향이 없었던 것 같은 환상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악행은 거창한 증오가 아니라, 본인의 초라함을 감추면서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피해의식, 자격지심, 열등감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더 방어적•비겁한 행동이 더 잘 나타난다. 물론 내가 이러한 악행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도덕을 지키고자하는 의지'로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과 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똑같이 성공한 사람을 봤을 때, 본능적으로 드는 무의식적인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누구는 진심으로 축하할 수도 있고, 누구는 저주하고자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수 있다. 이럴 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난 왜 이렇게 악하지?"라고 죄책감이 들 수 있으나 사실 진짜 문제는 '도덕을 지키고자하는 의지'가 아니라, 자존감 부족으로 인한 반복적인 부정적 생각이 날 끊임없이 괴롭게 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2-2. 애착관계의 부재로 인한 양심의 가책•죄책감 마비와 권태가 낳는 죄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도덕을 지키고자하는 의지'는 기능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애착관계 부재는 양심의 죄책감을 마비시킨다. 우리는 애착관계를 통해 행복을 얻지만, 그것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면 권태가 자기를 채운다. 사람은 권태로울 때면 새로운 욕망을 찾는데, 그 욕망이 통제욕, 혐오, 가학적 지배욕(사람한테 수치심을 줘서 얻는 쾌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은 사람과의 감정교류가 없을 수록 권태에 취약하다. 사람은 반복적인 부정적 생각과 권태를 아무 자극 없이 견딜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사람은 왜곡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죄책감이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수치심, 지속적 열등감, 반복된 좌절, 애착의 부재, 부정적인 생각이 오래 지속되면 사람은 도덕적 판단 이전에 ‘자기 보호 모드’로 들어간다. 쉽게 말해 도덕보다, 자기의 쾌감을 추구하는 것을 합리화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도덕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건 내 뇌피셜이 아니라, 실제로 학계에서는 피폐한 내면은 양심의 가책•죄책감이 느끼는 심리·신경적 경로가 둔화·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양심의 가책•죄책감은 ‘정서 반응’이고 수치심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뇌 자체가 추가적인 자책을 위험요소로 판단한다.
2-3. 용서와 미움에 대한 새로운 관점
흔히들 사연을 이야기하는 방송에서 가끔 "정말 그 사람이 죽일듯이 밉습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야할까요?"라는 글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 질문의 맥락으로 봤을 때, 용서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용서라는 단어는 내가 그 일로 괴롭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걸로 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강제로 가해자를 용서했다. 생각해보자. 현실적으로 몇 년, 많으면 몇 십 년 지난 일을 가해자한테 찾아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 자체가 쉬운게 아니다. 첫째로 내가 그 일로 몇 년이 지나도 상처받고 괴롭다는 거 자체가, "너가 나를 크게 뒤흔들었다"는 뜻인데, 이걸 가해자한테 보이는 것 자체가 나의 나약함을 들어내는 거 같아서 수치스러울 것이고, 둘째로 설사 만난다해도 어쩌피 가해자는 "이 세끼, 왜 이렇게 쪼잖하게 굴어?"란 반응으로 뻔뻔하게 나올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어쩌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을 가지고 사과를 받을 수도, 책임을 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사연자의 "어떻게 용서할까요?"라는 질문은 "어떻게하면 그 사람 생각을 하는 것을 멈추고 내가 받은 수치심에 휘둘리지 않을까요?"이란 뜻이다. 물론 보통 '더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내가 받은 수치심에 더 휘둘리지 않는 것'은 엄연히 말하면 구별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이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치심에 휘둘리는 상태에서 그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경우 "용서했다"라는 말은 용서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잊어버렸다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계속해서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나도 용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더이상 수치심이 들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죽이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나는데, "난 괜찮아, 난 용서했어" 같은 소리하는 것은 사실 쿨한 사람인 것마냥 굴려는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애착감을 느끼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장 하지 말아야할 것이 "난 웰케 나약한가?"라며 자기를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내면이 피폐하고 외로우면,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날 지배하고 억울하게 당했던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 이거는 그 사람이 강하고, 약하고와 전혀 관계없이 사람한테 내장된 함수코드다. 사람들과의 애착으로 새로운 경험들을 하다보면, 나의 관심사도 점점 과거와 멀어져서 "잊어버린다". 그러고 나서 가끔 그 상처가 떠오를 때, "용서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삶에서 애착이 부재해 내 삶이 권태와 상처로 가득차 있다면, 자기는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면을 바꿔야한다느니, 용서해야한다느니, 강해지라느니 이런 말들은 하나도 쓸모 없는 조언이고, "좋은 사람과 애착을 맺어야 한다"는 조언이 가장 명확하면서 어려운 답이다.
이러한 관점은 모든 인간관계에 다 적용된다. 자기 부모를 용서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부모는 말한다. "솔직히 나도 잘못했지만, 나도 다들 하는만큼 했지, 특별히 크게 잘못한게 없다고".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분노하면서 자기가 겪었던 서운한 일들을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 서운한 일이 본질적인 원인인 것일까? 부모의 말이 맞다는 전제하에 정말로 핵심 원인은, 아들이 살면서 다른 친구들과의 정상적인 애착관계를 맺지 못해 상처를 덮어줄 다른 좋은 경험을 못해봤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을 이해 못하고 "쟤, 웰케 유별나게 굴지"라고 해봐야 논의는 전혀 진전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워한다'를 <애착 부재로 인해 상처를 잊어버릴 좋은 경험을 하지 못해, 자존감 상처를 회복할 수 없는 신호>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3. 결론 및 의의
이상으로 많은 사회에서 규범화되는 도덕 덕목을 지키는 것에는 '도덕적으로 살고자하는 의지'만 작용하는 것이 아닌, 환경·관계·애착의 종합적 산물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사람은 혼자서는
<수치심을 피하기 위한 방어 반응>과 <애착관계의 부재로 인한 양심의 가책•죄책감 마비와 권태>가 낳는 죄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고, 내면의 피폐함을 회복하고 현재의 관계로 과거를 무력화하는 것이 상처를 벗어나는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는 이러한 사실에 무지한 체, 도덕 규범을 강조하는 측면의 교육만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도덕을 혐오의 방패막으로 사용하게 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도덕 교육에는 규범을 강조하는 것뿐만이 아닌, 바람직한 사회성을 키우는 것이 함께해야하며 그것을 제시한데에서 본고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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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잘 읽었다. 글다운 글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