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체성과 내 가치관에 대해 구축된 믿음이 지나쳐서 보편적인 기준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남들이 아니라고 할 때 나는 예외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엔 고집이고 합리화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 경우는 자기만에 판단기준이 있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편적인 잣대로 판단하지만 그사람은 자기를 나만의 잣대로 후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불일치적인 상황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맥락 왜곡

사람은 자기의 특성을 자기한테 유리한 맥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예의 없는 것을 솔직함으로, 사회성이 없는 것을 자기 수준이 너무 높아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것으로, 집착을 사랑으로, 감정적 미성숙을 감수성이 풍부한 것으로 보는 것 등등

솔직함, 감수성이 풍부한 것 등등으로 예시를 들면 이러한 것들은 상황과 상대의 기분에 따라 직설적이냐, 예의없냐 혹은 정이 많은가 감정적으로 미숙한가가 달라진다. 즉 그것을 판단하려면 나의 심리뿐만 아니라 타인과 상황이라는 맥락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솔직함, 감수성이 풍부함과 같은 나의 성질을 나만의 맥락으로만 긍정적인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한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도 한다. ex) A라는 친구는 수업 시간에 틈만 나면 떠들지만 B라는 친구는 조용한 정도가 지나쳐 선생님이 질문해도 입 하나 뻥긋 못한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둘 다 문제가 있다. 그러나 재밌게도 A는 자신을 사회적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기 소신을 펼친다고 생각하면서 B를 소심한 찐따라 생각하겠지만, B는 자신을 과묵하다고 생각하면서 A를 양아치라 생각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기 단점도 스스로 단점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성향뿐만 아니라 능력치와 같은 것들도 나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자기의 자존심을 방어할 수 있는 정보만 취사선택한다.
ex) 입시 공부를 못하는 것을 자신은 창의력이 넘쳐서 주입식 교육에 안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
물론 창의력과 입시공부가 요구하는 능력치가 다른건 맞지만 창의력과 입시 공부 능력은 반비례 관계가 아니라 애당초 별개의 능력이다. 창의력이 높든 낮든 입시공부 잘하는 사람은 잘한다. 창의력이 높으면서 입시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한국사회에서 빛을 못 볼 수는 있어도, 창의력이 높아서 입시공부를 못하는건 아니라는 말이다.

2.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니거나 가치관이 다른 것을 자기는 수준이 높다고 착각한다. ex) 답장할 때 "네"라 보내든 "네~"라 보내든 남들이 보기에는 취향 차이인데 나는 이모티콘을 붙이는 것은 경박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매우 크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의미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소한 가치관에서 나만의 관점으로 남을 무시하는 경향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자신이 수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장에 “ㅋㅋ” 쓰는 건 유치하고 예능 많이 보는 사람은 생각이 없고 문학은 무조건 고전만 봐야한다는 나만에 룰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취향이고 사소한 것일 뿐인데 나는 내가 생각한 나의 정체성을 끝도 없이 고양하는 것이다.

3. 나의 정체성에 맞는 행동을 한 것은 인상깊게 기억하며 정체성을 강화하지만 그에 반하는 것은 쉽게 무시한다. ex) 내가 보기에 나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다. 길거리에서 사진 찍고 SNS 하는 사람을 보고 한심하다 생각한다. 명품에는 신경도 안 쓰는 나를 보면서 역시 나는 허세가 없는 사람이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디씨에다가 "한국인들은 정말 허세와 남 눈치가 많은 민족이다"라고 쓰고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기뻐한다. 간혹 "너도 결국 디씨에서 너 수준이 높아보이려고 글 쓰는 거 아니냐?"라는 댓글이 달렸을 때, 약간 흔들리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를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자기 자존심을 충족하는 유리한 정보만 받아드리는 경향성
2. 어설프게 주워들은 몇 마디지만 나의 정체성에 맞고 나의 감성을 자극할 때
3. 어린 시절에 세뇌
4. 자기 정체성을 단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로 받아들이려 함

1~4는 복합적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이 성적이 안 나오자 주변 어른들이 입시공부는 창의력이 어쩌구하면서 위로해줬고 그것이 나한테 큰 위안과 감성을 자극해서 세뇌로 남은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성격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위선적인 사회의 폐해"라는 주제의 다큐를 매우 인상깊게 보고 자기가 하는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다. 이 사람은 사람이 자기를 떠나가는 이유를 "사람들은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개돼지여서"라고 생각할 것이고 이러한 관점은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자 이제 종합해서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나는 정직하고 꾸밈없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가졌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00이는 참 솔직하다"라는 말을 들어왔고 한국인의 위선을 비판하는 책을 많이 읽어왔다.

1. 남들이 보기에는 자신의 단점인데 자기는 장점으로 본다

-> 이 사람은 자신의 솔직함을 위선을 부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간혹가다가 "00씨는 참 솔직하시네요"라고 돌려 말하면 "역시 나는~"하면서 우월감에 빠진다.

2.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니거나 가치관이 다른 것을 자기는 수준이 높다고 착각한다

-> 이 사람은 세수하고 토너, 로션을 바르는 기초적인 세안같은 것도 안 하고, 셀카도 한 장 안 찍는 자신의 특징들을 내면이 단단하고 진실된다는 정체성으로 고양한다.

4. 나의 정체성에 맞는 행동을 한 것은 인상깊게 기억하며 정체성을 강화하지만 그에 반하는 것은 쉽게 무시한다.

-> 나는 솔직한 사람이라고 디씨에 올렸을 때 누군가가 댓글로 "착각하지 마. 넌 걍 개념이 없는 거야. 너 솔직히 말해봐. 친구 없지?"라고 비방한다. 나는 그 때 너무 화가 나서 "그 가짢은 피해망상으로 좆같은 뇌피셜을 부리지 좀 마라"라고 했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고 있는 친구라고는 게임할 때만 만나는 친구밖에 없다. 하지만 게임 친구도 어쨌든 친구니 거짓말은 안 했다 생각한다.

결국은 정보를 확증편향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신념 속으로 점점 더 깊이 고립된다. 물론 어른이 되면 남이 생각했을 때 내 생각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할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비록 자기 속내를 입밖으로 내뱉진 않지만 그 사람은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된다. 분명 논리적으로 반박은 못하는 거 같은데 말은 듣지 않는다. 대부분에 사람들은 "그냥 얘는 고집이 쌘가보다"하고 넘길 것이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이 아닌 이상 일반인이 학술 논문도 아니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기본적인 논증을 이해 못하진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해 우기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자기만에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설득이 안 된다면 일단 내 글을 보여주고, "너가 생각하는 너만의 기준이 있지 않느냐? 나는 아무리 겉보기에 그 생각이 터무니없이 보이더라도 나는 널 비난하지 않을게. 사소한 거라도 솔직히 말해봐"라고 말하면서, 자기만에 판단기준을 명시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너가 설사 내가 웃을 때 입을 너무 크게 벌리고 웃어서 경박하다고 생각해도 난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 정 내가 안 되면, 쳇지피티한테 자기만의 판단기준을 써서 대화를 해보라고 조언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득이라는 것은 단순히 논리력뿐만 아니라 인격과 화술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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