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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질문해 보면 알수 있으므로 AI에게 질문한것은 제외 합니다.

일부만 요약하면, 팔리어를 다른언어의 문자로 표기한 것.

중국/미국인이 한글을 제대로 배워서 중국어/영어를 한글로 표기한거라고 보면 됩니다.

중국어 (我去学校 / Wǒ qù xuéxiào)

→ "워 취 쉐샤오"

영어 (I go to school)

→ "아이 고우 투 스쿨" 뭐 이런것이죠.



아래 내용은 부정적인 내용만 요약한 것입니다.


나무위키

석가모니는 인도 북동부 마가다 지방에서 쓰던 '마가다어'를 모어로 사용했다. 오랜 세월 상좌부 불교계에서는 팔리어가 바로 마가다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마가다어와 팔리어 둘 다 프라크리트[2]이고, 상좌부 불교 자료들 중에도 팔리어를 '마가다어'라고 칭한 기록이 있다.[3] 그러나 아소카 왕의 석주 등 여러 명문에 남긴 옛 인도의 지방 프라크리트어 자료와 비교하건대, 마가다어는 마가다 왕국이 있던 인도 북동부 지방에서 사용한 데 반해, 팔리어의 원형이 된 언어는 인도의 중서부, 아마도 현대의 마하라슈트라주 서쪽 지방 일대에서 사용된 듯하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팔리어'와 완전히 동일한 프라크리트어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소카가 글로 남긴 프라크리트는 각 지방어의 특색을 보여주지만 이들 중 팔리어의 어법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없다.


팔리어에서는 고전 산스크리트어보다도 더 예스러운 언어적 특징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전 산스크리트어도 베다보다는 후대에 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한 팔리어는 대체로 인도 중서부 지역 프라크리트의 특징이 많이 나타나긴 하지만, 또한 동부 방언의 특징이 일부지만 포함되었다. 이런 이유로 사람에 따라서는 '팔리어는 고대 인도에서 실제언어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부파 불교의 불경은 팔리어나 다른 프라크리트어 방언으로 전승되다가 훗날 산스크리트어도 끝내 같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대에 부파 불교에서 설일체유부 등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 계열이나 다른 프라크리트어들을 사용하던 계열의 맥이 끊기고 팔리어를 사용하던 분별설부만 살아남아 결국 팔리어는 상좌부 불교의 확고부동한 성전어로 자리 잡았다.


팔리어로 된 불경의 인지도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의 인지도보다 낮은 듯 하지만 최근에는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팔리어 경전과 논서가 국내에 번역되고 점차 문법서와 사전도 나오는 등 과거보다는 많이 알려졌다.



위키백과

팔리어(पाळि)는 인도아리아어군의 프라크리트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팔리어는 성전어(聖典語)라는 뜻이다.


팔리어는 고유 문자가 없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문자로 기록되었다.

표기와 보존

팔리어는 고유 문자가 없어서, 남방 불교 전파 과정에서 싱할라어, 미얀마어, 태국어, 크메르어 등으로 기록되었고, 근대에는 로마자 표기도 널리 사용됩니다. 또한 미얀마 승단의 팔리어 송경 율조 연구처럼, 팔리어는 성조·율조가 의미에 영향을 주는 특성이 있어 경전 독송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위키백과 한국어


기본적으로 사어화된 언어이지만, 불교 승려들 사이에서 종교적으로 사용되며, 현대 문명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도 번역되고 있다.


팔리는 성전(聖典)이라는 의미로, 팔리어 불경 주석서(Aṭṭhakathā)에 팔리 삼장(Tipiṭaka) 즉 원전을 의미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한다.

삼장에는 팔리라는 말이 없으므로, 주석서가 쓰인 5~6세기경에 처음 쓰인 말로 추측한다.


팔리가 언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18세기말에 쓰여진 쭐라방사(Culla-vaṃsa 또는 Cūḷa-vaṃsa, 小史)의 코테 왕국(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왕국) 빠락까마바후(Parakkamabāhu, 싱할라어: Parâkramabâhu) 4세(1410?~1467)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다. 태국 등지에 상좌부 불교가 전파된 12~13세기 경부터 언어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 것으로 추측한다.

이전 불교 문헌에서는 마가다어(Magadhi, Māgadha-nirutti, Māgadhika-bhāsā) 또는 근본어(Mūla-bhāsā, 根本語) 등으로 언급되었다.


팔리어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져있지 않다. 마가다어설, 공용어설, 코살라어설, 아르다마가다어설, 칼링가어설, 마가다어와 피사챠어 혼합설, 피사챠어설, 웃제니어설, 인도 서부의 다른 언어라는 설 등이 있다.[7]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던 언어로 보는 관점도 있다.

가장 전통적인 해석은 마가다국의 마가다어였다는 설이다. 그런데 팔리어는 프라크리트 문학의 마가다어와 공통적인 언어 특성도 있지만 또 다른 점도 많다.


팔리어가 현재까지 사용되고 프라크리트어 중에서도 풍부한 자료가 남은 것은 불교 경전이 팔리어로 기록되어있기 때문이다.


붓다가 팔리어로 설법을 한 것이 그대로 남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기원전 3세기경 현재의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져 싱할라어로 기록하기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그래서 팔리어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이 나왔으며, 마찬가지로 붓다가 어떤 말로 설법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불교 경전은 이후 부파불교 시대를 지나며 팔리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도 기록되었다. 프라크리트어로 쓰여진 《담마빠다》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마하바스투(산스크리트어: Mahāvastu, 大事)》가 남아있다.




다시 좀더 요약하면

위키백과

팔리어는 고유 문자가 없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문자로 기록

기본적으로 사어화된 언어

팔리 삼장(Tipiṭaka) 즉 원전을 의미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한다.

삼장에는 팔리라는 말이 없으므로, 주석서가 쓰인 5~6세기경에 처음 쓰인 말로 추측

팔리가 언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18세기말에 쓰여진 쭐라방사(Culla-vaṃsa 또는 Cūḷa-vaṃsa, 小史)의 코테 왕국(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왕국) 빠락까마바후(Parakkamabāhu, 싱할라어: Parâkramabâhu) 4세(1410?~1467) 기사에서 처음 등장

팔리어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져있지 않다

기원전 3세기경 현재의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져 싱할라어로 기록하기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팔리어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이 나왔으며, 마찬가지로 붓다가 어떤 말로 설법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나무위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팔리어'와 완전히 동일한 프라크리트어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소카가 글로 남긴 프라크리트는 각 지방어의 특색을 보여주지만 이들 중 팔리어의 어법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없다.

팔리어는 대체로 인도 중서부 지역 프라크리트의 특징이 많이 나타나긴 하지만, 또한 동부 방언의 특징이 일부지만 포함되었다. 이런 이유로 사람에 따라서는 '팔리어는 고대 인도에서 실제언어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제가 헷깔렸던 부분


팔리어는 고유 문자가 없기 때문 <--> 불교 경전이 팔리어로 기록되어있기 때문


-->팔리어 언어는 있었으나 문자가 남아았지 않기에, 그 팔리어를 스리랑카 공용어인 싱할라 문자로 음차하여 기록 한것이라고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