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성판타지란 '개인한테 성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취향에 결부된 독특한 상상',이다. 성판타지는 개인에 무의식에 따라 고유한 상징적 혹은 비유적 의미를 가지는 대상이나 행위를 통해 나타나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하나의 생명체다. 성판타지는 나쁜 게 아니다. 다만 그것이 타인과에 감정적 연결이 아니라, 일방향적으로 그 사람의 감정을 착취하거나 착취받아 쾌락을 얻으려고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흔히 이상성욕을 가진 사람의 성판타지를 분석하고, 이들이 어떻게 더 퇴폐적인 이상성욕에 빠지는 지 고찰한다. 그리고 그 이상성욕을 왜 고쳐야하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 지 해결책을 고찰해볼 것이다.

2. 본론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상징을 구체적인 사물이 어떤 추상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에만 쓰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위자의 의도, 관찰자와의 관계, 사회적인 관습 등에 전체적인 맥락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눈을 마주치고 웃는 것은 '나한테 호감이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성판타지도 상징으로 이뤄져있다. 임의의 누군가에 성판타지에서 나오는 대상물들에 상징적 의미는 다른 누군가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축척된 사회문화적 편견이나 관습, 유전적인 특성 등에 따라 사회적 구성원들이 비슷한 관념을 가질 수 있고, 그렇기에 어떠한 행위가 상징하는 것이 어느정도 비슷할 수는 있다. 대표적으로 '남성기 삽입'이 있다. 남성기를 삽입하는 것이나 당하는 것은 관계 시 포지션일 뿐 실제로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관계에서 능동/수동적인 쪽이 정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통념상 남성기를 삽입하는 것의 상징을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것으로 느낀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원시시대부터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쎘고 그렇기에 성교할 때 보통 유리한 자세를 가졌기에 남자에 포지션이 더 능동적이고 강압적인 것으로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뉜 능동성과 수동성은 집단적으로 공유된 카르마가 되어 강화된 결과 가학과 피학 욕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S&M이 그것이다. 이러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인간은 동물적 유기체로서 욕망(가학과 피학)에 따라, 남한테 혹은 남에 의해 극한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행사받고 싶은 욕망을 품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것은 개개인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취향에 결부된 독특한 환상(쉽게 말해 성판타지)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환상이 자위를 통한 절정의 쾌락과 맞물려 환상은 끊임없이 강화되고, 부풀고, 재창조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남한테 극한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에 존재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남한테 극한의 어떤 <느낌>과 <감정>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쾌감을 통해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사회적인 형질로 강화된 것이 수치심 플레이다. 이들은 더 큰 수치를 주거나 받을 수록 더 큰 지배력을 얻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상성욕을 가진 사람의 성판타지가 가지는 상징성은 보통 '순수함 모독', '인격 말살', '쾌감을 통해 지배 혹은 복종'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상대방과 감정적인 상호작용을 나누는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가하고 받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을 한다면 그 사람한테 수치심을 줬을 때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감정적으로 서로 교류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한다. 하지만 이상성욕적 판타지에서는 공감이란 것이 배제되고, 상대방의 감정은 그저 자신의 쾌감을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상성욕을 담은 가학적인 포르노가 현대에 범람하여 이상성욕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사람과의 감정적 교류가 없으면 쉽게 권태에 빠진다. 다시 말해, 이상성욕자들은 권태에 훨씬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상성욕은 처음에는 기괴하지만, 인간한테 쾌락이라는 보상에 익숙하게 만들어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감정적인 교류와 멀어져서 반복되는 현자타임에 지친 사람들은 점점 자극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렇게 이상성욕자들의 성판타지는 끊임없이 확장된다. 그런데 자위를 통한 절정의 쾌감의 순간에 얼마나 <더 크게 수치를 주거나 받을 수 있는 성판타지>를 고안하려 애쓰든간에 '성행위하면서 느낄 수 있는 절정의 쾌감의 느낌'은 그렇게 <가변적이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크게 수치를 줄 수 있는 성판타지를 고안할 수록 그만큼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착각하고, 그에따라 성판타지는 퇴폐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로써 결국 사람은 현실과 괴리된 성판타지의 파국적 상징 체계에 갇힌다.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쾌락 유도 장치로 보기 시작하면, 윤리 감각과 공감 능력이 마비되고 실제로 내면이 건강하지 못해진다.

또한 실제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이상성욕자들은 보통 마음이 지치기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기이한것을 캐보기 시작한다. <꼴리는 것이나 꼴리는 행위>를 찾는다는 명분하에 수없이 많은 야동을 찾으면서 만족을 못하면서 괴로워한다. 왜냐면 이상성욕자들은 그 특성상 성판타지가 의미하는 상징이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자신에 성판타지에 상징에 맞는 야동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현실상에서 그것을 이루는 것이다.

만약 이상성욕이 있는 누군가가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 성공했다고 하자. 그는 권력자가 되었다. 그럼 그 권력자는 자기가 이룬 것에 만족하고 멈출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가 여기까지 달려왔던 삶의 동력은 그러한 욕망이였고 그것을 현실에서 이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 가학적 포르노에 물들 경우 그것은 현실적으로 이루기엔 도덕적으로 지탄받거나 사회적으로 금기되는 것이 많다. 게다가 만약 그 권력자가 강간물 등을 보는 이상성욕자일 경우 그 파급력은 더 심각해진다. 그러나 반복되는 권태와 쾌락을 얻고 싶어하고자 하는 마음에 점점 <양심을 지켜야한다는 마음가짐>마저 너덜너덜해지게 되고, 이에따라 당하는 상대에 의사와는 상관없이 오직 자기만에 욕망에 층위에서만 행동하게 된다. 욕심이 결국 죄를 부르는 것이다. 가끔 권력자들의 기괴한 변태짓이 언론에 나오는데 내가 말한 관점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이상성욕이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것이라면 자신의 성판타지를 수정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먼저 자신한테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모든 행위를 잠시동안 쾌감에 빠지지만 말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행동패턴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명확히 의식화할 경우 행동패턴을 변화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성판타지가 가지는 상징성은 보통 '순수함 모독', '인격 말살', '쾌감을 통해 지배 혹은 복종'이다. 요즘은 참 좋은 시대다. 쳇지피티한테 자기의 성판타지를 적어서 분석해달라고 해보면 해준다.

그렇게 자신의 이상성욕의 상징성을 파악했으면 자신이 성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관점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성욕은 단순히 지배-피지배 관계로만 이해되는게 아니다. 누군가와 성적으로 결합하고 싶다는 건 단순히 성적인 자극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그 사람과의 정신적 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사람과 원초적인 욕망을 함께하며 신체를 뒤섞고, 같이 쾌락을 느낄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있다는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상성욕의 회복도 감정교류에 있다. 만약 자기가 상대가 받는 수치심에 크기만큼 흥분했다면, 그런 플레이가 합의된 것이라는 조건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사람과 내가 감정교류를 한다는 판타지를 만든다. 내가 어떤 야동배우에 내 판타지를 대입했으면, 그것이 합의된 것이고 성행위가 끝났을 때 같이 감정교류와 사랑을 나누는 상상을 많이 하면 실제로 그런 감정교류를 나누는 것에도 흥분할 수 있다.

바른 성애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생각을 끊임없이 바르게 먹는 것도 수행이다. 내면의 상처를 치료하고 꾸준히 주변 사람을 사랑하려 마음먹고 남자와 여자가 상호평등적인 관계로 삽입하는 야동만 봐야 한다. 이상성욕이 있는 사람도 정상적으로 삽입하는 섹스에 흥분하지 않는게 아니다. 다른 야동 보지 말고 이것만 의식적으로 생각해라. 사람은 의식적인 행동과 생각이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어 오랫동안 자제하고 감정적인 교류를 꾸준히 주변과 나누면 이상성욕이 실제로 옅어진다.

3. 결론

정말 심각한 이상성욕이 있는 사람은 이 글이 꼰대같이 느껴질 것이다. 딱 하나만 묻겠다. 지금 행복한가? 그 길은 틀렸다. 인간은 관계와 감정 교류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쉬운 길은 당장 그런 야동을 찾는 것이다. 그 길은 쉽지만 분명 끊임없이 권태와 현자타임이 함께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길은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간과의 감정교류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고 삶에 감사하며 자존감이 높아진다. 부디 후회없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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