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40권 중 23권 내용>


------열반과 대열반의 차이-------

 

그때 부처님께서는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을 찬탄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어떤 보살이든지 생각하는 총지[念摠持]를 얻어야 네가 묻는 바와 같이 물을 것이다. 선남자야,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바다가 있고 큰 바다가 있으며, 강과 큰 강이 있으며, 산과 큰 산과 땅과, 사람과 대인과, 하늘과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과, 도(道)와 큰 도가 있다고 하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열반도 있고 대열반도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열반이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마치 굶주린 사람이 밥을 조금만 먹어도 안락하다고 하는 것처럼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고 하며, 병이 나으면 안락하다고 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어떤 사람이 공포를 느끼다가 의지할 데를 얻으면 안락을 얻었다고 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고 하며, 가난하던 사람이 7보를 얻으면 안락을 얻었다고 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고 하며, 사람이 뼈를 보고 탐욕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락을 얻으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열반들은 대열반이라고 이름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기갈(飢渴) 때문이며 병 때문이며 두려움 때문이며 가난 때문이며 탐착(貪着) 때문이니, 열반이라고 하며 대열반은 아닌 것이다.

 

선남자야, 범부나 성문들이 혹 세속을 원인으로 하거나 혹 성인의 도를 원인으로 하여 욕계의 속박을 끊으면 안락함을 얻는다. 이런 안락은 열반이라 고 하며 대열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초선의 속박을 끊거나 나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속박을 끊으면 안락함을 얻는다. 이런 안락은 열반이라고 하며 대열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도로 번뇌를 내거나 습기(習氣)가 있는 까닭이다.

 

어떤 것을 번뇌의 습기라고 하는가? 성문이나 연각은 번뇌의 습기가 있다. 이른바 나의 몸이다, 나의 옷이다, 내가 간다, 내가 온다, 내가 말한다, 내가 듣는다, 여러 부처님 여래께서는 열반에 들었다, 열반의 성품은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다만 항상하고 깨끗함만 있다고 하는 등 이것을 번뇌의 습기라고 한다.

 

부처님과 교법과 스님들은 차별한 모양이 있고, 여래는 필경의 열반에 드시며, 성문이나 연각이나 부처님께서 얻는 열반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한다. 이런 뜻으로 2승이 얻는 열반은 대열반이 아니다. 왜냐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는 까닭이다.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야 대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곳에서 여러 강물을 받아들이는 데가 있으면 큰 바다라고 하듯이,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이나 여러 부처님 여래께서 들어가시는 데를 대열반이라 이름하며, 4선정(禪定)ㆍ3삼매(三昧)ㆍ8배사(背捨)ㆍ8승처(勝處)ㆍ10일체처(一切處) 따위의 한량없는 선한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대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강이 있는데 첫째가는 향상(香象)으로도 바닥에 닿지 못한다면 큰 강이라고 하듯이 성문ㆍ연각이나 10주 보살까지가 불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열반이라고 하며 대열반은 아닌데, 만일 불성을 분명하게 본다면 대열반이라고 이름한다. 이 대열반은 큰 코끼리왕이라야 바닥을 밟을 수 있는데, 큰 코끼리왕은 부처님을 말한다. 선남자야, 마하나가(摩訶那伽)나 발건타(鉢犍陁) 대역사들이 오랜 세월을 걸어도 올라갈 수 없는 것을 큰 산이라고 하듯이, 성문ㆍ연각이나 보살인 마하나가나 대역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라야 대열반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소왕(小王)이 있는 데는 작은 성이라 하고, 전륜왕이 있는 데는 큰 성이라고 하듯이, 성문이나 연각이 8만ㆍ6만ㆍ4만ㆍ2만ㆍ1만 겁 동안 머무는 데는 열반이라 하고, 위없는 법주(法主)인 성왕(聖王)이 머무는 데라야 대반열반(大般涅槃)이라 이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반열반(大般涅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네 가지 군대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중생이라고 이름할 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3악도의 번뇌와 나쁜 업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지 않고, 그 속에서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면 이 사람은 대열반을 얻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모를 공양하며 사문이나 바라문을 공경하고 선한 법을 닦으며 말이 진실하여 속이지 않으며, 나쁜 것을 참고 가난한 이를 도와주면 대장부라고 이름할 것이다. 보살도 그러하여 대자비가 있어 모든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여러 중생을 부모같이 여기며, 나고 죽는 바다에서 중생들을 건지고, 중생들에게 한결같은 실상의 도를 보여 준다면 그런 이는 대반열반이라 이름할 것이다.

 

선남자야, 크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음[不可思議]을 말한다. 만일 헤아릴 수 없어서 중생들이 믿을 수 없으면 대반열반이라고 이름하며, 부처님이나 보살들만이 보는 것이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무슨 인연으로 대(大)라 하는가? 한량없는 인연으로써 얻을 수 있으므로 대라고 한다.

 

선남자야, 세상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얻은 것을 대라고 한다. 열반도 그러하여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얻는 것이므로 대라고 한다. 어찌하여 다시 대열반이라 이름하는가? 큰 나[大我]가 있으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열반에는 내가 없지만 크게 자재하므로 큰 나[大我]라고 한다.

 

------참나와 크게 자재함에 대해, 법신과 여래장-----

 

어떤 것을 크게 자재하다고 하는가? 여덟 가지 자재가 있으므로 나라고 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한 몸으로 여러 몸을 나타내는데, 몸의 크기가 티끌과 같아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하며, 여래의 몸은 티끌이 아니지만 자재하므로 티끌 같은 몸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고 한다.

 

둘째는 한 티끌 같은 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니, 여래의 몸은 실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것이 아니지만 걸림이 없는 까닭이며, 자재함으로써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것이다.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고 한다.

 

셋째는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몸으로 훨훨 날아서 20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세계를 지나가도 장애가 없다. 여래의 몸은 가볍고 무거움이 없지만 자재하기 때문에 가볍기도 무겁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고 한다.

 

넷째는 자재하기 때문에 자재하게 된다. 어떻게 자재한가? 여래는 한 마음이 편안히 머물러 동하지 않지만 변화하여 나타내는 한량없는 종류들로 하여금 제각기 마음이 있게 하며, 여래는 어떤 때에 한 가지 일을 짓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 마련하게 하며, 여래의 몸은 언제나 한 세계에 있지만 다른 세계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신다.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고 한다.

 

다섯째는 근(根)이 자재한 까닭이다. 어떤 것을 근이 자재하다고 하는가? 여래는 하나의 근으로 색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느끼고 촉감을 지각하고 법(法)을 알기도 하지만, 여래의 여섯 가지 근은 색을 보지도 않고, 소리를 듣지도 않고 냄새를 맡지도 맛을 느끼지도 않고 촉감을 지각하지도 않고 법을 알지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재하기 때문에 근으로 하여금 자재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고 한다.

 

여섯째는 자재한 까닭으로 온갖 법을 얻지만, 여래의 마음에는 얻었다는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얻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있는 것이라면 얻었다 고 하겠지만 실제로 있는 바가 없는데, 무엇을 얻었다고 하겠는가? 만일 여래께서 얻었다는 생각이 있다면 부처님들이 열반을 얻는다고 할 수가 없지만, 얻음이 없으므로 열반을 얻었다고 한다. 자재함으로써 온갖 법을 얻고, 모든 법을 얻었으므로 큰 나라고 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말씀이 자재하므로 여래가 한 게송의 뜻을 연설할 때에 한량없는 겁을 지내도 그 뜻을 다하지 못하니, 계행이거나 선정이거나 보시거나 지혜 따위이다. 그러나 여래는 조금도 내가 연설하고 저 사람이 듣는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한 게송이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이 네 글귀를 한 게송이라고 하므로 세상을 따라서 게송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법의 성품을 말할 곳이 없지만 자재함으로써 여래가 연설하는 것이며, 연설하므로 큰 나라고 한다.

 

여덟째는 여래가 모든 곳에 두루함이 마치 허공과 같다. 허공의 성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여래도 볼 수 없지만, 자재함으로써 모든 이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재한 것을 큰 나라고 하는 것이며, 이렇게 큰 나를 대열반이라고 이름하며, 이런 이치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마치 보배 광에 신기한 보배가 많으며, 온갖 것이 구족한 것을 큰 광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깊은 법장도 그와 같아서 여러 가지 기특한 것을 구족하여 모자람이 없으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끝이 없는 물건을 크다고 하는데, 열반이 끝이 없으므로 대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크게 즐거움이 있으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열반은 즐거움이 없지만 네 가지가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크게 즐거움에 대해------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낙이 끊어진 까닭이다. 낙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괴롭다고 하며, 괴로움이 있으면 큰 즐거움이라 하지 못하지만 즐거움이 없어졌으므로 괴로움이 없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음을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열반의 성품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다. 그러므로 열반을 크게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런 뜻으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낙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범부의 낙과 둘째는 부처님의 낙이다. 범부의 낙은 무상하여 파괴되므로 낙이 없고, 부처님께서는 항상 즐거워 변동이 없으므로 크게 즐겁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세 가지 받아들임[受]이 있으니, 괴로움[苦受]과 즐거움[樂受]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不苦不樂受]이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을 괴로움이라고 하고, 열반은 비록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과 같지만 그래도 크게 즐거움이라 하며, 크게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둘째는 크게 고요하므로[大寂靜] 크게 즐겁다고 하니, 열반의 성품은 크게 고요하다. 왜냐하면 온갖 시끄러움을 멀리 여읜 까닭에 크게 고요하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셋째는 온갖 것을 아는 까닭으로 크게 즐겁다고 한다. 온갖 것을 아는 것이 아니면 크게 즐겁다고 하지 못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온갖 것을 아시므로 크게 즐겁다 하고, 크게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

 

넷째는 몸이 무너지지 않음을 크게 즐겁다고 한다. 몸이 무너진다면 즐겁다고 할 수 없지만 여래의 몸은 금강과 같아서 무너지지 않으며, 번뇌의 몸이 아니고 무상한 몸이 아니므로 크게 즐겁다 하며, 크게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