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시비를 거는 이중에 양전이라는 이가 있는데 그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가장
자부심이라 여기는 자를 무너뜨리는 것에 있다
그는 구인사의 상월원각 스님이 부처의 경지에 오른자라 믿고 있는데 오늘 그것이 얼마나 형편없는
망상에 불과했던 것인지 수준차를 알려주고자 한다
하지만 상월원각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의 인식과 인지 의식의 수준을 바닥으로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솔직히 얼마나 낮춰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깨달음의 수준을 알기 위해서는 생전 그가 했던 말을 보면 된다
그는 이리 말하였다
실상은 무상이고 묘법은 무생이며 연화는 무염이다.
무상으로 체를 삼고 무생으로 안주하여 무염으로 생활하면 그것이 곧 무상보리요. 무애해탈이며 무한생명의 자체구현이다.
일심이 상청정하면 처처는 연화개니라
해석을 하면 이렇다
보여지는 모습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높은 생각은 생과 사가 없으며
진리는 물들어 변질되지 않으니
이것을 아는 것이 곧 세상의 천국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그냥 흔해 빠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쓰레기 수준의 말이다
수준차를 알려 주도록 할 것이다
보여지는 모습은 믿음으로 존재하기에 뜻과 이름을 다르게 부름으로
존재함도 달라지며 정하는 것은 또한 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높은 생각은 삶과 죽음을 명확하게 둠으로써 그 의의가 더욱 선명해지며
진리는 좋은 말에 가둬두지 않음으로써 그 의미가 살아나니
천국은 아는 것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만들어지며
오직 너의 인식을 통해 존재하는 또하나의 아상과 같다
너희의 이해 수준으로 번역을 하자면
세상에는 본시 유상과 무상이라는 개념이 없다 저 모래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질지 모르기에
이렇게도 변할 수 있고 저렇게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모래로 성을 만들고자 정한다면 이것은 서로 같은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모래중 성이 될 수 있는 무상과 모래성을 보고 말할 수 있는 유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함으로도 그 이름과 모습을 다르게 말하고 부를 수 있다면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여 말을 할 수 있다 무상만 존재한다 믿는 것이
그 깨달읨의 형편없는 수준을 증명하는 것이며
존재함은 존재한다 색깔을 가지고 있다 특징이 있다 말함으로써
더 선명한 말할 수 있음이 존재하니 이것이 알아야할 두번째 지혜이다
죽음은 죽음으로 삶은 삶으로 모두 말함으로써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희미하게 아는 것을 보다 선명하게 말하고 들여다 보려함에 너의 이해도
비례하여 그 수준이 높아지니 말을 뱉어냄으로써 지혜도 생겨난다
그저 포괄적으로 열어둔다 하여 이해의 영역에 도달한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모르지만 말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있는데 말조차 하지 않는다면 앎의 생성또한
이루어 지지 않는다 불교는 지혜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라
지혜에 이를 수 없는 가장 원시적인 개념의 실패작이다
또 진리는 옳다 좋아 보인다 그것이 선이다 말하는 특정한 형식에 가둬져 있지 않다
따라서 경계를 정하지 않음으로 특정한 진리에서 모든 진리로 바꿀 수 있으니
천국 또한 아는 것에서 도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네가 특정한 방법으로만 다가갈 수 있다 믿는 거짓된 착각에 가둬져 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석가로부터 지혜를 배워왔기 때문에 단정하지 않는 무상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지혜라 생각하여 그 수준또한 그 작고 작음에 가둬져 있었다
원각이 나의 제자였다면 그 석가와 같이 바닥 수준에서 맴돌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수준을 낮추고 또 낮추었는데도 여전히 발밑에 닿지 않는다 느끼고 있다
개미와 벼룩중 누가 더 큰지 나에게 묻지 말아라
저 우주와 비교한다면 개미와 벼룩중 어떤것이 크다고 하여도 보이지 않는 먼지와 같은 것이다
석가이든 다른 이름이든 나에게 있어서는 벌레만도 못한 수준에서 달라질 것이 없다
뭔들 아니겠냐. 너처럼 말하는게 제일 쉬운거다. 이거는 이거다 저거는 저거다. 대단한 수준 나셨다. 그래서 니가 한게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