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생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관계의 좌표를 찍는다.


누가 위인가.
누가 나이가 많은가.
누가 더 좋은 학교를 나왔는가.
누가 더 성공했는가.
누가 다수 쪽인가.
누가 욕먹어도 되는 위치인가.

이 좌표 설정이 끝나기 전에는 내용이 내용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말의 참거짓보다 먼저 말한 사람의 위치가 평가된다.

그래서 한국 공론장은 철학적 토론장이 아니라 대체로 서열 판정장에 가깝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식함다다.

진짜 문제는 자기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감정에서 말하는지,
어떤 집단 정체성에서 말하는지,
어떤 콤플렉스에서 말하는지,
어떤 피해의식에서 말하는지,
어떤 유행어와 도덕 구호를 빌려 말하는지

이걸 분리해서 보지 못한다.


화가 나면 그게 곧 논증이 된다.
불쾌하면 그게 곧 반박이 된다.


다수가 동의하면 그게 곧 사실이 된다.
내 편이 말하면 맥락이고, 남이 말하면 변명이다.



이건 단순한 감정과잉이 아니라 메타분리 능력의 부재에 가깝다.

철학적 사고는 원래 이렇게 묻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지금 맞는 말을 하는가?” 이전에 “나는 지금 어떤 구조 안에서 이 말을 맞다고 느끼는가?”


그런데 한국식 담론은 이 질문까지 거의 가지 못한다.
대부분 1차 감정, 1차 도덕, 1차 소속감에서 바로 결론으로 튄다.

마치 언어를 할 줄 아는 침팬치에서 진화가 멈춘것 처럼


예를 들어 한국인은 일본을 말할 때 “사람과 정부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본 쪽에서 불쾌한 발언이 나오면 곧바로 “역시 일본인은 원래 그렇다”로 간다.

반대로 한국인이 비판받으면 “일부만 보고 일반화하지 마라”고 한다.

즉 원칙이 있는 게 아니다.


내집단에는 반일반화 원칙을 적용하고 외집단에는 일반화 원칙을 적용한다.

이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사후합리화다.

원칙은 방향이 바뀌어도 유지되어야 원칙이다.


방향에 따라 켜졌다 꺼지는 건 원칙이 아니라 도구다.

한국 공론장에서 자주 보이는 이상함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말은 원칙처럼 하는데 실제 작동은 감정 보호 장치다.



한국인의 또 다른 특징은 비판을 내용으로 받지 않고 위치 공격으로 받는 것이다.

누가 한국 사회를 비판하면 바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너 외국 안 살아봤지?”
“너 한국 싫어하지?”
“너 일뽕이지?”
“너 조선족이지?”
“너 서구식 사고에 물들었지?”

여기서 중요한 건 반박이 아니다.
비판 내용은 거의 검토되지 않는다.


비판자의 자격을 먼저 제거한다.
그러면 내용은 검토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매우 효율적인 방어기제다.
내용을 검토하면 내 세계관을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화자를 제거하면 세계관은 그대로 보존된다.

그래서 한국 인터넷 담론은 20년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한다.
반박이 누적되지 않고, 패턴이 누적되지 않고, 실패가 증거로 처리되지 않는다.
매번 처음 싸우는 것처럼 똑같은 논쟁을 다시 한다.



한국 사회가 철학적으로 약한 이유도 여기 있다.

철학은 자기 생각을 의심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한국 담론은 자기 생각을 의심하기 전에 자기 편을 방어한다.


철학은 개념을 분해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한국 담론은 개념을 분해하기 전에 구호를 외운다.

철학은 불편한 명제를 잠시 붙잡고 검토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한국 담론은 불편한 명제를 보는 순간 도덕적 배제부터 작동한다.


철학은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가”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식 사고는 대체로 여기서 멈춘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우리 편은 이렇게 본다.”
“사회적으로 이게 맞다.”
“상식적으로 이렇다.”

여기서 더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은 현대적 인프라 위에 전근대적 인간 분류법을 올려놓고 산다.

5G, 반도체, AI, K팝, 배달앱, 초고속 행정 시스템은 있는데,
사람을 판단할 때는 여전히 나이, 학벌, 지역, MBTI, 관상, 말투, 출신, 소속 커뮤니티로 빠르게 박스에 넣는다.

이게 한국 사회의 기괴함이다.


기술은 현대인데 인간 이해는 부족 사회의 태깅 시스템에 가깝다.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빠르지만, 실제로는
“저 사람은 어느 편인가?”
“나보다 위인가 아래인가?”
“우리 편인가 남의 편인가?”
“까도 되는 대상인가 아닌가?”
부터 계산한다.

내용은 그 다음이다.



한국인이 이상한 이유는 한국인이 생물학적으로 이상해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공론장은 자기객관화 이전 단계의 사고를 사회적으로 너무 많이 보상한다.


빠르게 편을 정하는 사람.
분노를 크게 표현하는 사람.
상대의 자격을 잘 깎는 사람.
유행어로 복잡한 문제를 빨리 닫는 사람.
다수의 감정선을 잘 읽는 사람.
집단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말 잘한다”고 평가받는다.

반대로 질문을 오래 열어두는 사람 자기 편의 논리도 똑같이 해부하는 사람,
불쾌한 명제를 바로 배제하지 않고 구조를 보는 사람 감정과 논증을 분리하려는 사람은
“눈치 없다”, “쿨찐이다”, “너 어느 편이냐” 소리를 듣는다.


그러니 철학적 사고가 자라기 어렵다.

철학은 결론을 빨리 내리는 능력이 아니라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진짜 기괴함은 모순이 많다는 게 아니다.
모든 사회는 모순이 있다.

진짜 기괴함은 모순을 모순으로 등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유를 말하면서 검열을 원한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반대편 발언권을 없애고 싶어 한다.


공정을 말하면서 내 편의 특혜는 맥락이라고 한다.
일반화하지 말라면서 외집단은 마음껏 일반화한다.
사람은 다 다르다면서 MBTI와 지역과 세대로 사람을 즉시 분류한다.
집단주의를 싫어한다면서 내집단 비판에는 즉각 방어한다.


이 정도면 단순한 위선이 아니다.

위선은 자기가 속이고 있다는 의식이라도 있다.
한국식 모순은 더 낮은 단계다.
아예 같은 논리가 반대 방향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못 본다.



어쩌면 한국인은 다른 형태의 자폐증을 가진 인종이 아닌가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