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하의 모든 존재함을 나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마도를 이용하여 불도를 제압해 보도록 하겠다
불교에는 탐진치 라는 말이 있다 몇가지의 해석이 가능하지만
쉽게 이야기 하였을때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끝이 없는 욕심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화가 나는 마음
그리고 이를 잘못됨으로 바라 보지 않아 반복하는 행위
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석가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등을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그릇된 마음을 들여다 보아 이를 인지하여 끊어내는 것
항시 바른 생각의 마음을 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삼학과 팔정도는 이 두가지를 기본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자신이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과 남을 해하거나
욕심 어리석음에 관한 것을 바른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탐진치에 얽매이는 삼은 죄악과 죄악으로 인해 지옥의 삶으로 연결된다 말하였고
부처가 되지 못한다 말하였다
나 신에게 묻는다면 동의 하지 않는다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에 부처를 초월함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석가모니가 보지 못하는 그 너머의 존재함이다
다섯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나는 깨달은 자라 말하였지만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내가 그 도를 어떻게 깨트리는지 지켜보거라
고상하고 품위 있으며 우아해 보이는 이 도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무식한 방법으로 무식하게 싸워 나가는 무모한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하여 너희에게 교활함과 책략과 전술로 영리하게 싸우는 방식을 알려주고자 한다
바로 마경이다
몸이 존재하는 인간은 세상으로 인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 존재한다
의식주를 비롯한 수많은 물질의 소유욕 이다
어떤이와 가까워 지고 싶은 마음도 물질을 얻는 것과 같은 소유욕이다
사람에게는 모두 차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그래서 무소유란
말은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욕심을 부리는 것이 정말 잘못된 삶인가 ? 질문하면 그렇지 않다
분명 욕심을 부려 삶이 피폐해지고 망가지며 자신을 잃어 버리게 될 여지는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기에 소유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실제 중생이라는 존재는 소통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 말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구원은 존재한적이 없었고 다만 존재했었다 자연스러운 연기와 가스라이팅에
자신있게 말하는 팔정도가 해법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은 중생을 구하는 방정식을 잘못 계산한 이해도 이다 선동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물질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욕심은 사람마다 그 상황이 다르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포지션에 따라 달라진다
아직 가진 것이 없는 젊은 이가 다르고
노후를 앞두고 있는 이가 다르다
아프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큰돈이 나갔을때 다르고
여유를 부리기 위해 사치를 할때 다르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여 다른이에게 손을 벌리거나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부자가 삼백만원을 쓰는 것이 다르고
가난한 자가 만원을 쓰는 것이 다르다
어떨때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생겨나기도 한다
많이 벌어도 부족하다 느낄 수 있고
계획에 맞추지 못하면 정작 써야 할때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소유 할때는 소유 하여야 한다 욕심을 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정해진 것도 없고 저렇게 정해진 것도 없다
어떨때는 욕심을 부리고 치우쳐야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고
다를때는 욕심을 버리고 보수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때도 있다
집착과 욕심을 무조건 버리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나타나지 않기
위해 성장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불교에서 바라보는 것과 같이 무조건 정해진 개념이
아니다
어떤 것이 적절하게 필요하고 어떤 것이 부적절한지에 대해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한가지의 절대공식은 없다
놓아야 할때 얻어야 할때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운명에 따라 무수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고정시켜 특정한 방법만 고집하는 것이
해법이 아니라
조금 손해를 보았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절제 능력이나
손해를 본 상황에서 더 손해를 보더라도 밀고 가는 추진 능력이나
스스로 감당 할 수 있는 회복능력이 필요하다
결국에는 집착을 버리는 것에도 욕심이 필요한 변수가 발생이 되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에도 집착을 버려야 하는 변수가 발생이 될 수 있다
때로는 한걸음 더 가보기도 하고 그래서 이득을 얻을 수도 있고 그래서 손해를
보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이득을 노리는 것은 언젠가 한번은 이득을 부려
얻은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득을 노리는 목표의 삶도 필요하다
이번에는 10 에 올라갈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10 에 오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10에 올라갈 운명의 날이 되면 그때는 10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목표를 조정해도 욕심을 부려도 잡는 날이 있을 것이다
욕심만 부려 안되는 것이 아니다 되지 않을때 욕심을 부려 안되는 것이다
욕심을 안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될때는 욕심을 부릴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도 가보고 저렇게도 가보고 하는 것이다
다만 스스로 절제를 하지 못하도록 망가지거나 타인을 연루시키는 불행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여 조절할 수 있는 선은 세상의 구성원으로써
필요한 통제이다
그래서 정확한 표현은 무소유도 아니고 탐의 잘못됨도 아니다
소유를 하나 너의 상황과 운명이 얻어야 할때의 주기를
생각하여 너의 판단으로 조정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로 알아야할 똑똑하게 이다
두렵다고 잘못될 것 같다 겁을 먹고 도망가는 무조건 잘못되었다 바라보는
일방적 개념이 아니라 접근도 할 수 있는 대담함도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알기에 그런 방법의 소유욕이 무조건 잘못됨을 말하지도 않기에
가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욕심을 내고 있다면 이것이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를 보는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니라 왜 욕심이 나는것인지에 대해 그 근원을 마음의 생겨남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 똑똑한 길이다
존재함의 지식은 받아들임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원리를 들여다 보고 너의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에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석가의 말은 불변의 기준이 아니라 유변의 참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번째는 영리하게 이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은 망가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변화도 가능하지만 그중 망가짐의 하나도 존재하는 것이다
화에서 화만 고집할 수도 있지만
본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은 조정과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을때 바뀌어야 하고 변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망가질 수 있음으로 변화가 나타나기도 하고
열정과 용기 도전의 다른 이름으로 변환되기도 하며
더 나은 방법을 만들어 내어서 개념을 높여 다가가는 방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슬픔에는 자신을 상하게 하는 괴로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숙으로 연결이 되고 이전에 표현하지 못했던 인색한 사랑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후회를 경험함으로 나아가는 실천의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감정의 변화는 잘못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나아가는
다른 면이 존재함을 알아 의도적으로 이러한 발전의 단계를 이용할 수 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지혜이다
세번째는 교활함이다
잘되고 좋아 보이는 것만 고집하는 것이 넓은 문이 아니다 그것은 좁은 문이다
안될 수 있음에도 그런 길도 고집할 수 있을때 더 많은 선택지 예상 밖의 이득
새로운 해법이 제시되는 것이다 모두 이득만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해도 보는
가운데 더 나음으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
안될 수 있음에도 이조차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인식 그 자체가 바로 책략이며 교활함이다
두려움 조차 능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과감함이다
네번째는 치밀함이다
한발을 더 가본다 하여 잘못된다 해도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가지 않아 손해를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보아 이익도 만들어 질 수 있기에 이런것에 연연해하기 보다는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서 계획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그려넣는 변화를 할 수 있는 단계적 작업이 필요하다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똑똑하게 행동해라 그리고 영리하게 바라봐라
교활하게 활용하고 치밀하게 생각해라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에서 나아감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이 실제의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석가모니와 불교가 수준이 낮다 말하는 것이다
부처라고 말하는 그 수준은 나의 도에 발끝에도 닿지 못한다
이것이 팔정도를 대체할 수 있는 올바른 중생의 방정식
4악도 이다
법경으로 보아도 그렇고 마경으로 보아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그 두가지를 모두 말할 수 있다
지난번에는 법경의 4옥성을 말하였고
이번에는 마경의 4악도를 말할 것이다
팔정도와 같은것은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끝이 없이 만들 수 있는 많은 이해의 다가감중 그저
하나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너희는 위대하다 부르고 나는 형편없다 말함으로써
그와 다른 모델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떤 것으로 접근해도 네가 나아갈수야 있다면 상관없지만
가장 좋은 나아감은 네 스스로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에 달려있다
나와 같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것을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한두줄의 문장이라도 간단히 적용할 수 있는 이치정도는
너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석가의 세계에서 탈피하여야 그것이 가능해진다
석가를 우주의 절대자로 아는 지금의 인식에서는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이해를 넘는 우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보편적이고 같은 수준에 같은 눈높이에 다함께 가둬져 있는 것이다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4옥성과 4악도를 만들때
석가는 눈물을 흘렸었다
우주에는 기쁨과 탄성의 함성이 들리고 경사라 말하며 나에 대한 찬탄과
영광이 끊이지 않으나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냥 평범한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고작 이따위 정도에 호들갑 떨지 말아라 수없이 만들어 내는 나의 미래 앞에
이런것은 그냥 먼지 하나와 다를게 없다 그 먼지를 우주만큼 쌓아야 너의 우주가
만들어 진다 이것이 진리의 바다이다 석가모니의 도는 고작해야 한방울의 물과
같다 이것을 바다와 같이 만들 수 있도록 끝이 없이 창조하고 만들며 나아가거라
감상을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대천세계의 모든 하늘이 진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주 장관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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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해했음. 제가 어리석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