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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는 존재하는 것이 선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여기서 존재는 개인의 존재와 집단(사회)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것은 왜 그럴까?
그것인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선하기 때문이아니라 고생대 부터 뿌리깊게 내려온 생물들의 생존 교조주의가 인간에게까지 내려온 결과라고 볼 수있다.
만약에 3억 2천만년전 고생대에 자연스러운 것- 즉 셰계의 모습, 자기의 존재- 를 싫어하고 부정하려는 도마뱀이 있었다고 해보자. (사실 포유류의 조상으로 단궁류가 더 정확한 존재자이지만 매우 낮선 단어일 것이므로 좀 다르지만 익숙한 도마뱀이라고 칭하겠다)
이 도마뱀은 독특하게도 존재하는 것 보다 비존재를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갸채이다. 이런 성향은 개체에 내재된 체질로서 유전자에서 부터 나왔다. 다른 대부분의 평범한 도마뱀은 반대로 그 이유를 의심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존재를 추구한다. 생존의지를 통해 살려고한다. 이러한 성향을 존재교조주의 또는 생존교조주의라고 부르겠다. 비존재를 추구하는 그 도마뱀은 당연히 생존에 불리하여 죽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다른 도마뱀은 존재를 선하게 여기고 그저 존재를 추구하는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번식하여 후손을남겼을 것이다 . 그렇다면 그 도마뱀들의 후손들에도 그러한 성향이 남았을 것이다.
그것이 계속이어져 3억년 뒤의 후손인 진화된 포유류에게도 남았다. 이런 과정이라면 비존재를 선이라고 보는 태도나 경향성은 세계내에 존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끔 돌연변이로 지구에 나타니게 된다고 해도, 그런 회의적 개체는 금세 그 명맥이 끊기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향은 영장류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이어진다. 호모 에렉투스에서부터는 언어를 통한 명시적인 '관념' '신념' '문화' 전승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이제는 유전적 수준이아닌 관념적, 문화적 수준에서 생존 교조주의가 후손에게 전달이 가능하다. 이제 집단의 존재나 개인의 존재를 추구하지 않는 개체는 무리에서 배척받거나 이성개체에게 매력도가 떨어지므로 번식을 제대로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존 교조주의에 대한 반대는 생존에 불리하여 후손을 못남기고 멸종하기 쉬웠을 것이며, 이런 경향이 호모 사피엔스까지 이어져 왔다.
그래서 전지구적으로 절대 다수의 인류는 존재하는 것에 선을 아끌어내는 성향이 뿌리깊게 남아있다. 즉 집단의 존재, 개인의 존재는 선이고 죽음이나 비존재는 나쁜 것이다 또는 피해야한다는 교조주의가 유전자, 문화 수준애 다층적으로 남아있다.
신(또는 자연)이 세계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계해 놓은 장본인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라는 문구를 넣고 있다. 이 문구를 본 사람은 ' 음! 좋은 말이지' 하고 넘길것이다. 보통 대부분의 사럼은 이 문구를 별 의심없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할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국가의 이념으로 이상적인거지 . 추구할만하지'
필자도 대학교 때 이 문구를 보면서 인류가 전쟁등으로 멸종하지 않고 항구적으로 존속하는 것과 인류의 번영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히 추구해야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별 의심하지 않고 당연히 생각하며 넘겼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필자는 이것을 의심한다.
과연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존속하는게 객관적으로 '좋음' 이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가?
인류는 왜 번영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후손을 유지시키고 번영하게 해야할 의무가 있나? 그런 의무는 어디서 나오는가?
후손을 존재하게 하고 힘들게 노력을 들여서 키우고 보존해서 또 그들이 후손을 잇게 할 가치가 있는가?
그저 '비존재' 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 공포심에서 나온 성향은 아닌가?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탐구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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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고자 하는 욕구는 계속되는 것을 좋아하고 멈추는 것은 싫어한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