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의 집이 경매에 나오게 되었다 

이사를 가기로 한 날 부부는 집에 불을 지르고 

숨을 거두었다 나이는 60대 였다고 한다 적지 않은 나이다 


그들을 아는 이들에 의하면 평소 자신의 삶에 희망이 없다 

주기적으로 비관을 해왔다 전해진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이집을 가질 수 없어야 한다 생각했을지 모른다 


선택은 그들의 판단이고 결과는 되돌릴 수 없으니 이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지 삶이 이대로 끝난 것인지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너희는 입고 있는 옷에 대해서 전부 안다고 생각하느냐 ? 

나는 보이는 모습으로 그 옷을 다 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얼마전에 안쪽에 깊은 구멍이 있어 보았더니 카드를 넣을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던 곳에 있었고 또 처음 살때부터 모자가 있었지만 분리를 하여 

모자가 없었던 겉옷으로 입었다는 것을 아주 늦은 시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옷을 잘 알기 위해서는 아주 세세한 디테일까지 다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잘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비관론자들이 쉽게 이야기 하는 것이 자신은 끝났다 더 나은 상황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

이미 미래가 결정되었다 말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잘 알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 모습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의 변화와 달라짐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이전의 좋은 것에만 매달려 

끝이 났다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면 쉽게 이전과 같은

재개를 꿈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변화된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이들은 많이 있다 

비관을 하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어설프게 다 안다고 보는 것은 제대로 된 비관을 말하지 않는다 

비관의 더 깊은 문에 가기도 전에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 비관의 끝에는 비관을 비관하여 나아가는 희망이 존재한다 

삶이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들은 말한다 


삶이 그냥 삶이지 다르게 말할게 뭐가 있냐고 ?

그런데 그 깊이를 들여다 보고 말을 만들 수 있음에 

네가 살수 있는 방도가 존재한다 


삶을 삶이 아니라 다르게 말하고 부르고 표현하며 세세하게 나열할 수 있음에 

너의 비관에서 바라보지 못하였던 희망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너는 비관을 하는 것이다 그냥 비관만 하는 과정속에 있는 것이다

비관을 아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과 삶을 잘 들여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여 손쉽게 삶이 힘들고 끝이 났어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수많은 업무에 시달리던 직장인이 퇴근후에 맥주한캔을 마시며 

그래 삶이 이런거지라 말하는 모습을 말할 수 있는가 ?


삼이 힘들고 괴롭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순간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작은 것이라도 기쁨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이다 


잘 찾아보아야만 너의 사랍속에 잊고 있었던 숨겨진 돈이 찾아지는 것이다 

삶이 불행하다면 작은 것에서 다가가기 손쉬운 것에서부터 재미를 만들어라 

그러면 기분이 좀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삶을 마감하는 이들도 있다 그중에는 사회 초년생들도 많다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다음이 없다 생각한 것이다 


네 보물은 네 희망은 그렇게 눈에 잘 들어오는 곳에 널려 있지 않다 그래서 보물이다 

옷사이에 있는 주머니의 끝에 끝을 가야 구겨진 지폐 한장이 손에 닿을 수도 있고 


무심코 찾아낸 지난날의 일기장과 앨범속 사진에 그때 네가 하고 싶었던 소망을 떠올릴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을 잘 들여다 보아야만 열리는 동화와 같은 세계가 존재한다 


삶이 무엇인지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면 네 스스로의 작은 기쁨을 만들어 보고 물어보아라 

이것이 기쁨이다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직 희망은 남아있는 것이다 


작은 희망을 더 많이 찾으면 불행함에도 너는 행복하다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 포기한자와 불행하였지만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자의 차이이다 


비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관을 알기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