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보셨다시피, 이 글은 나라는 인간이 나를 찾기 위해, 또 나를 이루는 것들을 알기 위해, 나로 존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동시에 아직도 사고하고 있는 과정과 감정을 잔뜩 담은 글입니다.


처음 제가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단순합니다. 부모님의 영향이었죠. 저희 부모님은 아주 상냥하십니다. 외동인 저를 위해 원하는 건 대부분 들어주시고,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챙겨주시는 것도 많습니다. 그 탓에 잔소리를 조금 하시긴 하지만…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그 상냥함과 사랑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를 가기 전에는요.


전 고등학교를 기숙사에서 다녔습니다. 평생을 함께하던 부모님 품에서 떨어져, 2주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사이가 되었죠. 부끄럽게도 적극적으로 연락하는 성격도 아닌지라 자연스레, 부모님과는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보이더군요. 부모님이 본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저라는 아들의 부모님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게 말입니다.


무서웠습니다. 정확히는, 부담스러웠습니다. 두 분의 기대를 온전히 받아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두 분이 나의 부모님으로 살아가는 만큼 나도 두 분의 아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두려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자연스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제자, 누군가의 형, 선배, 후배 등등 수많은 관계 속에 살아가면서 저는,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늘어날수록, 제 이름과 존재는 수많은 관계에 눌려 흐려지고,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처음으로, 저는 저에게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답을 내리기에는, 학창시절은 너무나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해야 할 것은 많고, 시간은 한정적이었으니까요. 잠도 줄여가며 공부를 하는 마당에, 그런 생각들을 할 틈은 없었습니다. 다만, 바뀐 것은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제 안에 무언가를 건드린 것인지, 부모님의 호의를 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호의가, 내가 부모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자꾸만 자각시키곤 했으니까요.


무언가를 사주겠다는 말도, 용돈을 주겠다는 말도 듣기 싫어졌습니다. 스스로는 사춘기가 왔다고 생각을 했지만, 아마 그때의 생각이 제 가슴속 깊이 남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상황은 회사 일을 시작하며 더 심해졌습니다. 이제는 진정으로 제 스스로 돈을 벌고,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단순히 막 성인이 된 이의 객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돌아보자면 스스로가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 몸부림과는 반대로, 저라는 인간에게는 점점 더 많은 관계들이 쌓여 갔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며, 누군가의 부하직원이나, 누군가의 사수, 상사 같은 관계들 말입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가 점점 지워질 때쯤에서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나라는 존재와 마주할 시간이 잔뜩 주어진 기회 말입니다.


제 이전 글을 읽어보셨다면,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근무지 환경이 아주 좋아서 사색할 시간이 꽤나 주어졌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아내기도 하였지요.


그 시간 속에서, 제가 저에게 물은 하나의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제 머릿속은 여러 관계들로 가득 찼습니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선배 이런 관계들이요. 여기서, 의문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럼, 그 모든 이들이 사라진다면 나는 내가 아닌 건가? 저는 이 말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오직 나 하나뿐인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나를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그 순간, 타인과의 관계가 만드는 나라는 자아를 부정했습니다. 오직 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믿는 내가 나라고 사고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 말의 의미를 얼핏,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요. 내가 나라고 믿는 것, 그렇게 사고하는 것이 수많은 관계와, 외부의 바람 속에서 나를 잃지 않도록 하는 단단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고민하고, 그리하여 내가 나라고 믿는 생각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나라는 존재로 있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 생각들은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어차피 내가 나라는 사고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관계 속에서 사라질 걱정은 들지 않았으니까요. 사람 간의 관계도 조금 더 잘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부모님의 호의도 조금이나마 덜 부담스럽게 느꼈습니다. 잘하지 못했던 거절이나 부탁의 말들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습니다.


동시에 틀리는 것을, 바뀌는 것을,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라는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다시 방향을 다잡고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깨지고 부서지고 틀리고 방황하는 것조차, 나라는 존재니까요. 그리 생각하며 조금 더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다만, 다른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정확히는, 다른 두려움이 생겨났다고 해야 옳습니다.


생각을 멈추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생각을 멈추고, 내가 나라는 사고를 하지 못하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를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피어올랐습니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 두려움 탓에 저는 계속 고민했습니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탐구하고, 사색하고 나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일전에 쓴 글인 '행복이란 무엇인가' 역시 그 과정 속에서 탄생한 글입니다.


생각하고 탐구하는 건 보통 좋은 일입니다. 실제로 저는, 그런 과정을 즐겼습니다. 다만 그것이 의무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저는, 사유하고 싶어서 사유하는 게 아니라, 사유를 하는 내가 되기 위해 사유를 할 뿐이었습니다.


그걸 알게 된 것은 재미있게도, 아주 사소한 질문 덕이었습니다.


저는 늘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제 생각들을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내가 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논쟁을 한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날도 어김없이, 제가 해오던 사고들에 대해서 다른 이의 시선으로 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저에게 아주 신선한 충격을 던지는 역설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꾸준히, 내가 나라는 사유가 존재한다면, 그걸 중심으로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외부에서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다고요. 그런데, 그날은 왜인지 모르지만 조금 달랐습니다.

 그날, 저는 저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항상 생각해야 존재하는가?

아니면, 생각이 돌아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만약 어떤 시기 동안 생각이 흐려지고, 방향 감각이 약해지고, 타인의 영향도 조금 받고, 사유가 둔해진 상태가 온다 해도, 나는 결국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은 있나?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지금까지 나로 있기 위해, 끝없이 사고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사유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유를 멈추더라도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그 명제를 새긴다면 이 고민을 잠시 멈춰도 되지 않나?


그렇게 저는, 다시금 처음 고민을 시작했던 때의 나를 바라봤습니다. 즐거워 보였습니다. 나를 찾는 길,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끝없이 질문을 이어나가고, 탐구하던 사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고하는 시간들을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이유는,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말로는…내가 하고 싶지 않다면, 쉬고 싶다면, 그런 고민과 사고를, 사유를 잠시 내려두어도 괜찮다는 의미였습니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나라는 믿음은, 사유에서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머리가 아닌, 내 심장에 각인처럼 남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그제서야 발견했을 뿐이었습니다.

그걸 인정하고 나자, 커다란 해방감이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알게 모르게, 사유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나자 숨어있던 의문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난, 왜 그 시간들이 좋았던 걸까.


당연히, 사유를 하는 것이 자아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니까 즐거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저의 자아는 제 심장에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저는… 그 압박감 속에서도 즐거웠던 걸까요.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해온 일들이, 이미 그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의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막연히 행복을 쫓았던 것도, 글을 남긴 것도, 누군가에게 휘둘리기 싫어했던 것도 전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는 과정들이 모이고 모여, 살아가는 의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 행동들은 저에게, 살아간다는 감각을 깨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글도, 그런 의미를 만드는 과정의 연장선일 테지요. 이걸 깨닫고 난 뒤 처음 든 생각이, 글을 쓰고 싶다, 였으니까요.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생각의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되었네요.


그런 지금의 저에게는 단 하나의 질문이 남았습니다. 아직 답할 수도 없고, 답해서도 안 되는 질문입니다.


너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마 죽을 때가 되어서야, 아니 어쩌면 그때에도 모를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질문에 답을 못한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습니다. 살아가며,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들은 분명, 즐거울 테니까요.


저는 고민했습니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

저는 사유했습니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


다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는 것을요.


고민도, 생각도, 사유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살아가며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들일 뿐이죠. 그래요. 그런 걸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나였으니까요.